폐업한 여관에 문화숙박업을 시작하다. 서울 80년 세월을 품은 문화예술공간 <보안여관>

Author : 프럼에이 / Date : 2016.10.31 16:37 / Category : THINK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서울 80년 세월을 품은 공간"


경복궁 서쪽 서울 종로구 통의동, 체부동, 효자동, 청운동, 궁정동 등 15개 동 일대 '서촌'은 예로부터 서민의 삶터로서, 양반 동네로 한옥이 가득한 북촌과 달리 서민형 벽돌집, 일제강점기 건물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서촌은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는데요. 조선 시대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이 벗들과 노닌 곳이자 '오감도'의 이상이 표현한 막다른 골목의 실제 배경이며,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 윤동주, 이중섭, 서정주, 이중섭 등 수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지역입니다.  ·


최근 이색 갤러리와 카페, 영화사 등 문화예술인들이 자리 잡으면서 땅값이 치솟고 있는 '서촌'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주목받는 곳이 있습니다. 경복궁 담벼락 맞은편에 위치해 주변의 화려한 건물들과 달리 옛 모습을 간직하며 담담하고 비밀스럽게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는 공간. 바로, 80년 서울의 시간을 품은 여관,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입니다.



서울은 도시를 지우려 하지만 보안여관은 기억을 남기려 한다.


서촌 예술가들의 사랑방 


<보안여관>은 1930년대 지어진 2층짜리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서정주와 이중섭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하숙하고 작품활동을 하며, 소주 한잔에 인생과 예술을 나누던 공간입니다. 1930년대 한국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도 보안여관에서 장기 하숙하던 서정주 시인과 김동리 소설가, 김달진 시인이 함께 만든 것인데요. 7·80년대 까지만 해도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젊은 예술가들과 여독을 푸는 나그네들로 북적북적했던 여관이,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서 2004년 폐업하게 됩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생활밀착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Artspace Boan 1942"


철거될 위기에 처한 보안여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문화예술 프로젝트 그룹 '메타로그'입니다. '메타로그'는 새로운 문화예술 운동을 펼친 공간을 찾기 위해, 상업화된 삼청동과 인사동을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서촌을 물색하고 있었는데요. 많은 예술인과 사람들이 거쳐 간 역사적 공간이자 한국 근현대사를 오롯이 품어낸 '보안여관'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 공간을 매입하고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과거의 기억에 현재를 입힌다. 


공간의 가치를 알아본 메타로그는 '건물이 자란다'라는 가치관으로 외관과 내부를 유지한 채 옛것 위에 현대적 이야기를 쌓고 있습니다. 폭우로 한쪽 벽이 무너지기도 하고, 왜 이런 노른자 땅을 놀리고 있냐는 주변의 핀잔도 있었는데요. 새로짓는 것에 익숙한 서울에서 문화예술 작가들과 합심하여 보안여관의 기억을 보존하고, 공간에 담긴 이야기와 정체성을 발굴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문화 숙박업을 시작하다. 


사실, 메타로그는 2004년 보안여관 인수 당시 건물이 너무 낡아 전부 허물고 새로 건축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안여관을 스쳐 간 많은 기억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외관과 내부 골조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보조공사만 진행하며 2007년부터 젊은작가들의 실험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생활 속 익숙한 여관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갤러리 문턱이 낮아지고 노인, 어린이들도 쉽게 들어와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는데요. 폐업한 여관에 문화예술로 다시 손님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촌의 매력을 한껏 높여주고 있습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보안여관은 '관계지향형', '생활밀착형' 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실험공간은 물론, 예술가들이 서로 얘기하며 교류할 수 있도록 마당에 막걸리에 와인까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장터'도 있습니다. 또한, 매년 5~6개의 개인전과 서울시 주최하는 전시회,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여관방에 모여 앉아 '짜장면 심야 전시 토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보안여관>이 기억을 남기는 방법 "문화예술"


통의동 한적한 길을 걷다 흰색 아크릴판에 <보안여관>이라는 쓰인 낡은 간판을 마주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이 듭니다. 80년 세월이 느껴지는 붉은 색 벽돌의 여관 외부를 뒤로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 바닥의 삐걱 소리에 마음이 졸여지는데요.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낮은 천장의 좁은 복도 양옆에는 1호, 2호, 3호... 객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신문지로 바른 벽에는 못 자국, 그을림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고, 흙으로 쌓은 벽은 곳곳이 파여 있습니다. 일본식 천장 '덴죠' 철거 후 드러난 낡은 서까래와 전선은 어지럽게 엉키고 설켜있습니다. 


[Photo : 후지피플 - Melting Planet]


2009년 <휘경, 사라지는 풍경> 


<휘경, 사라지는 풍경>은 2009년 휘경동, 이문동 공공프로젝트 "어디 사시나요?"와 맥락을 같이 한 전시로, 70년대 지어진 빨간 벽돌집 골목길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사는 도시에 무분별하게 안식처가 헐리고, 옛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작가들이 '과연 사람들이 꿈꾸는 집은 어떤 것일까?' 를 고민한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2015년 <메이드 인 서울>


<메이드 인 서울>은 막강한 자본의 수직적 관계로 점철된 서울 안에서 다채로운 삶의 생산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회입니다. 서울 각각 장소의 기운과 사연을 품고 있는 조각을 전시한, <사소한 기념비>, 동대문 시장 봉제사들에 대한 이야기 <동대문 오리지널>, 서울 담벼락 여기저기 붙어있는 전단에서 영감을 받은 <서울벌목꾼>, 보안여관 내부에 공방을 설치하고, 서울에 사는 아무개씨의 생활 물건을 3D 프린터로 제작 판매한 <서울과학사> 4팀의 협업 전시회였습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2015년 <중성적 시대> 


<중성적 시대>는 30대, 40대, 50대를 지내는 각각 예술가들이 시간과 시대에 대한 각자의 사유 과정을 펼치는 전시형 프로젝트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떤 범주로 나뉘어 있는 시대에 살지 않고 '중성적 시대'에 살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2014, 2015, 2016 <루나 포토페스티벌 전시공간>


<루나 포토페스티벌>은 서울의 가을 밤 아래 사진영상과 음악, 퍼포먼스, 무용공연 등이 어우러지는 사진페스티벌입니다. 보안여관 옆 공터에서 참여프로그램이 펼쳐지고, 보안여관 내부 구석구석에서 사진전을 진행합니다.  


[Photo : Boan 1942 홈페이지]


현재, 보안여관은 <2016 서울 사진축제 해외작가 특별전> 전시장으로 선정되어, 11월9일부터 11월 22일까지 도시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의 심리적 감성을 담은 프랑스 작가들의 감각적 시선이 관객들을 찾아갑니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서울 한복판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사람의 숨결과 역사가 군데군데 남겨져 있는 곳입니다. 그들의 정처 없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보안여관'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이유기도 하겠죠. 앞으로도 통의동 보안여관은 문화생산 아지트로서 빠르게 변하는 서울에서 그 모습 변치 않고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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