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그곳의 사람까지 리모델링한다, '어셈블(Assemble)' 


공간 그리고 그곳의 사람까지 리모델링한다.

18명의 터너상 수상자 'Assemble'


“우리들 그 누구도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예술도 그렇게 반응해야 하고 우리도 계속 변화해야 한다.”

<Assemble 멤버, 루이스 슐츠>


'이전에 없던 것'이라는 목표 아래 ‘새로움’을 치열한 경쟁 마냥 앞다투어 쌓아 올리기 바빴던 시대도 이제는 저물어 가는 듯하다.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하며 성공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실생활과 접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것들에 눈을 돌리고 어떻게 질을 향상시킬지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는 말은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이끄는 싱크탱크 연구소 AMO(Architecture for Metropolitan Office)의 대표 레이니어 드 그라프의 입에서 나왔다. 


전 세계와 현시대의 이슈, ‘재생’


그라프의 말처럼, 호화로운 초고층 건축물과 온갖 대형 프로젝트로 개발되던 도시들은 경제부흥기가 끝나고 포화 상태가 되었고, 빈 공간을 찾기 어렵게 됐다. 무분별한 도시개발 후, 그 뒷면엔 관리와 유지의 범위 안에 속하지 못하거나,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퇴화한 도시의 공간이 사람들의 무관심과 먼지 속에 그대로 낡아 묻혀있었다. 최근 이러한 기존의 곳들을 살려내고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재생’이 전 세계가 고민하고, 또 추구하는 현시대의 이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유럽에서 가장 명망 있는 동시에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은 2015년에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이들에게 터너상을 안겨주었다. '아니쉬 카푸어'나 '데미안 허스트' 같은 예술가들이 받았던 터너상을 건축과 디자인 분야 작가가, 심지어 18명이 그룹인 어셈블(Assemble)이 수상했다는 사실은 당시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가디언지는 ‘구술 시인(an oral poet)에게 맨부커상을 안긴 것과 마찬가지로 테이트가 범주의 오류를 범했다는 의견도 있다’라는 기사를 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미술계를 시끄럽게 만든 어셈블의 수상작은 무엇이고, 무엇이든 예술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테이트 브리튼은 어떤 이유로 도시재생팀에게 상을 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지역사회를 생각하는 유기적 그룹 ‘Assemble’


런던 기반으로 예술, 건축, 디자인 전 영역에 걸쳐 활동하는 그룹 어셈블은 장소의 유형이나 성격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사회적 맥락과 참신하게 결합하는 것이 주특기다. 18명의 팀원 중 14명이 건축을, 나머지는 디자인이나 역사를 전공했으며, 모두가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도시 개발에 관한 프로세스를 진행할 때면 언제나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논의하며 또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그들은 이미 연구 프로젝트, 주택 건설, 워크숍, 임시 무대, 갤러리, 공공장소, 사무실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를 6년간 100여 개 가까이 수행했다. 지역사회와 연결된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는 어셈블은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주민들이 참가자와 협업자의 역할을 모두 성취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례 1. Granby Four Streets


어셈블에게 터너상을 안겨준 건 철거위기에 놓였던 리버풀의 노후 공공 주택단지를 개조하는 프로젝트 ‘그랜비 포 스트리츠 (Granby Four Streets)’다. 


 

한때 생기와 활력이 넘치던 세계적인 항구도시 리버풀의 번화가 그랜비 스트릿은 다양한 인종의 개성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대량 실업과 가난에 1981년 폭동까지 일어난 후, 정부 측은 재개발을 위해 대대적으로 주택을 구매했다. 그랜비 스트릿의 주요 네 개 거리를 제외한 나머지 구역의 집들이 모두 철거되었고 주민의 대부분이 떠났지만, 이 지역을 지키고 있던 주민들은 지속해서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캠페인과 자발적인 도시 관리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후에 ‘Granby Four Streets Community Land Trust’라는 주민토지신탁을 결성하는데, 바로 이 단체가 어셈블에게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의뢰하면서 그랜비의 마법 같은 재생이 시작된다. 어셈블은 피폐해진 동네에 예술을 접목해 새로운 고용기회를 창출하고, 주민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 형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들이 그렸던 큰 그림은 ‘그랜비를 창의적 행동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동네로 바꾸는 것’이었다. 



공간의 주인인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재생 과정

어셈블은 도시재생 변화의 주인공은 주민이라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주민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워크샵을 개설해 그들의 의견과 방향성을 존중했고, 주민과 함께 여러 채의 낡은 집을 수리하고, 어떤 빈집에는 지붕을 걷어낸 자리에 식물을 가득 채운 정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주민들을 위한 동네 시장을 만들어 마을에 상업 시설 특유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주민들의 자립적인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모델 적용

어셈블은 단순한 공간 리모델링에서 프로젝트를 끝내지 않았다. 주민들을 작업장에 고용해 훈련시키거나, 공사잔해와 폐건축자재로 재활용 물품 및 공예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립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과정으로 사회적 행동을 유도했다. 주민들은 톱밥으로 만든 손잡이를 만들기도 하고, 돌로 만든 북 스토퍼를 만들기도 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품 홍보와 판매 플랫폼으로 삼았고, 오프라인에도 그랜비 워크숍이라는 판매 통로를 만들었다. 모두 손으로 만드는 공정을 거쳐 제각각인 제품의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은 또다시 지역 주민의 고용과 훈련 사업에 투자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모든 작업은 지역주민과의 파트너십으로 진행했다. 


어셈블이 위의 수익구조 모델과 지역사회 재생 프로젝트로 터너상을 수상한 뒤, 새로운 구조가 하나 더 생겼다. 워크숍 제품을 전시하는 쇼룸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실제로 제품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지역주민들의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프로세스를 만든 것. 또한, 빅토리아 시대의 공중목욕탕을 개조한 골드스미스 대학교 아트 스튜디오와 연결된 건물을 골드스미스 아트 갤러리로 만드는 작업 의뢰를 받아 진행 중이다. 



"어셈블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프로젝트 두 가지를 더 소개한다."


사례 2. The Cineroleum

 

영국에 버려진 주유소가 4천여 개나 있다는 문제점에서 시작된 시네롤리움(Cineroleum) 프로젝트. 어셈블이라는 그룹이 탄생한 계기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는, 2010년에 클러큰웰(Clerkenwell)의 버려진 주유소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재생, 활용, 저비용으로 만들어낸 거리의 영화관

영화관으로 리모델링시 사용한 재료는 값싼 산업재와 무료로 기증받은 자재였다. 나무 발판으로 좌석을 만들고, 영화관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방음 커튼은 일일이 손으로 재봉선을 꿰매 만들었다. 백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현장에서 만들어진 시네롤리움은 철저하게 상업화된 대기업의 영화관과 달리, 오래된 역사에서나 볼 법한 팝콘 머신과 미니 바를 갖추고 클래식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사람들에게 특별한 영화 경험을 선물한다. 브로드웨이 마냥 바쁘게 움직이는 차와 행인들로 가득한 1차선 도로에서 커튼을 내리는 순간 현실과 격리되어 상상력과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을 관람객에게 선물하는 마법 같은 프로젝트가 아닐까. 


사례 3. Yardhouse

 


스트랫퍼드(Stratford)의 제당소 건물을 예술가의 창조적인 코워킹 플레이스로 재탄생시킨 야드하우스 프로젝트. 야드하우스 안의 모든 스튜디오는 파티션 없이 개방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지만, 입주한 예술가 개인이 원한다면 유닛을 결합하는 등 자유롭게 자신 주변의 공간을 바꿀 수 있다.  


  


절연 패널과 목재 프레임 등 가격 대비 경제성이 뛰어난 자재만을 활용해 신축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291/m²의 건설 비용을 자랑한다. 외관의 컬러 타일은 현장에서 직접 제작한 콘크리트 타일로, 야드하우스 주변의 공공 필드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어준다. 



사람을 위한, 주민을 위한, 도시를 위한 어셈블

어셈블의 행보는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하며, 지역사회와 도시 재생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단순히 기존의 건축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화와 예술, 새 삶의 기회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주민들이 스스로 공간 위에서 생산활동과 창조적인 작업(어셈블의 표현에 따르면, ‘DIY 정신’이다.), 자립적인 교육을 하도록 만들고, 마을 재생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 어셈블의 프로젝트는 사람을 위한다는 건축과 디자인의 본질적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 영역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도시 재생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공간에서 삶을 살아갈 주민들, 그들의 지속가능성을 실현시킨 것이다. 

 

‘Folly For A Flyover’ [Photo: Assemble]


또한, 최근 현대 사회에서 많은 잡음을 불러오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도시계획, 재건, 개발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현대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지만 외면 받는 저편의 지역사회에 예술, 건축, 디자인의 세 가지 영역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용해 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 전에 없던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작동시켰다는 사실이 18명의 품에 터너상을 안겨준 것 아닐까. 


한국의 도시재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


한국에서도 건축가와 도시 재생가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서울이나 해외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지역적 특성을 살려 지역사회를 위한 건축활동을 하거나, 더 무언가를 새로 짓고 만들기보다는 과거의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낙후된 지역과 시설을 현대에 맞게 재생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Photo : 플랫폼창동61]


문화적,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서울 동북부의 창동/상계 지역에 대규모 음악 공연장과 복합유통센터, 문화단지를 들여 새로운 중심지로 재생시킨다는 ‘플랫폼창동61’을 비롯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연계된 도시재생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된 공간에 적합한 지속가능성을 함께할 수 있는 구심적 역할의 커뮤니티가 부재한다면 자생적인 도시재생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국가의 운영을 필요로 하게 된다. 번듯한 산업단지와 재건축만 남는 보여주기식의 도시 재생은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도시 재생으로 이어진다. 새로 태어난 도시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그곳에서 살아갈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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