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메디치 '아트마케팅', 브랜드 예술을 만나다 


현대판 메디치, ‘아트 마케팅’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작품을 남기는 인간의 생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후대에 남아 감동을 전하니", 수긍이 가는 말이다.


피렌체의 거리를 걸으면, 정말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의 향기가 느껴진다. 테크놀로지가 고도로 발달한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도 암흑의 중세를 막 내리게 한 르네상스의 숨결이 느껴진다. 하지만 피렌체에 르네상스시기를 이끌고 예술과 학문이 넘실댈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메디치가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의 워렌 버핏과 마윈을 뛰어넘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는 하지만, 400년이 넘는 시간 속에 그들이 쌓은 부는 흩어져버렸고, 이제 피렌체의 장구한 예술품만 남아 후원인의 뜻을 기억할 뿐이다.

 

가문은 유한했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어쩌면 메디치가 사람들도 오래갈 수 없는 ‘부(富)’의 한계를 깨닫고, 보다 영속적인 것에 투자함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영원히 각인 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예술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열정도 있었겠지만 가문의 사회적인 지위를 상승시키고 정치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매우 성공적이었다.




왜 ‘아트 마케팅’인가?


오늘날, 우리는 현대판 메디치가를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예술에 후원하며 자신의 브랜드와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新 메디치가들은 ‘아트 마케팅’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브랜드를 예술과 같은 품격 있고 영원한 것으로 격상시키려 한다.


이러한 ‘아트 마케팅’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주목받게 된 것은 소득 증가에 따른 새로운 소비 성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흔히 소득 2만 불 시대가 오면 특정 포도주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외제차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사라진다고 한다. 또한 재즈 장르가 대중적으로 각광 받고, 관광 중심의 해외여행이 휴양 중심으로 바뀌는 것도 이 시점인데, 이는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성숙한 사회가 문화와 예술을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소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에, 연세대학교 김진영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격의 시대>에서 이렇게 밝혔다.


 “양(量)의 시대에서 질(質)을 거쳐 격(格)으로 갈수록 무형의 요소를 요구한다. 양의 시대에는 수량이, 질의 시대에는 시각이 중시되던 것이, 격의 시대에는 무형의 요소인 안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소비의 트렌드가 다다익선이던 ‘물질적 속성’에서 점차 ‘무형의 속성’으로 넘어가면서 상품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감성적 편익이 중요하게 되었다. ‘아트 마케팅’이 일반화 되었다는 것은 ‘예술’이 감성 편익의 일부로 차용될 수 있을 만큼 소비자들이 예술을 소비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브랜드와 예술작품의 접목"


기업브랜드에 예술이미지를 입히다

‘아트 마케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2007년 LG 전자의 평면형 TV ‘엑스캔버스’ 광고에 등장한 ‘태양의 서커스, 퀴담’. 당시 서커스하면 난쟁이 단원과 동물들이 출연하는 ‘동춘 서커스’를 떠올렸던 사람들에게 ‘퀴담’은 남다른 스케일과 화려한 색감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신선한 공연이었다. 


LG 전자는 이 공연을 후원하고 자사 브랜드에 노출시킴으로써 ‘엑스캔버스’의 격을 높였다. 광고를 통해 새로운 평면 TV가 '태양의 서커스, 퀴담' 단원들의 디테일한 동작과 서커스가 품고 있는 다양한 색채를 그대로 재연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엑스캔버스’가 명품 가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렇게 브랜드와 상품을 예술 작품과 직접 연관시키는 예는 그 뒤로도 수 없이 차용되었는데, 또 다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아모레퍼시픽의 한방 브랜드 ‘설화수’를 꼽을 수 있다. ‘설화수’는 여타 화장품 브랜드와 달리 광고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한국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소구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발신하고 있는데,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는 ‘코리안 아트 콜라보레이션(Korean Art Collaboration)’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전통문화 아름다움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테마로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이이남, 이종석 등 전통 화가, 장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을 디지털 배너나 제품 디자인에 표현하여 브랜드 이미지와 융합하고 있다. 


[Photo :  설화수]

 

"현대판 메디치 - 문화, 예술 후원"



고객의 소비패턴을 파악하고, 

금전적 혜택을 문화적 혜택으로 돌려주다

한편, 광고와 상품에 직접 예술을 노출시키는것 외에도 예술활동에 직접 투자함으로서 브랜드의 격을 높이기도 한다.

국내기업의 대표적 사례는 현대카드의 ‘슈퍼 콘서트’를 꼽을 수 있다. 현대카드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독창적인 서체 개발과 노출되는 비주얼의 톤앤매너를 균일하게 맞춘 ‘디자인 경영’의 선도 기업이다. 


금융업을 하는 카드회사가 해외의 유명 팝스타와 록 밴드를 중심으로 일 년에 서너 차례 대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슈퍼시리즈’를 처음에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의아하게 생각했다. 빌리 조엘, 스팅, 레이디 가가, 마룬 파이브, 그리고 지난 4월 내한한 콜드플레이까지 총 22번의 슈퍼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 ‘슈퍼콘서트’의 기획 이면에는 고객들의 소비패턴 변화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4년,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 ‘맘마미아’의 대성공 이후, 중산층을 중심으로 고가의 공연 관람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지만, 대형 가수의 콘서트와 공연은 부담 없이 즐기기에 여전히 비쌌다. 이에 현대카드는 카드 회원들에게 줄 수 있는 금전적 혜택을 예술 장르와 결합시켜 현대카드의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와 고객 만족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 


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 외에도 ‘컬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세계 정상급이라고 하기엔 지명도가 다소 낮은 해외의 팝 스타들을 초청하여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며칠 전 화제가 되었던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이 이 ‘컬처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또한, 국내외 유명 미술관과 제휴는 물론 디자인, 음악, 여행 관련 테마 도서관 운영을 통해 예술과 문화 분야의 다양한 혜택을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Photo : 현대카드]


브랜드가 곧 예술이다

이와 비슷한 해외 사례는 샤넬의 다양한 캠페인이 돋보인다. 샤넬은 후원을 넘어 자신의 브랜드를 예술로 승화시킨 다양한 전시를 직접 기획하는데, 2008년과 2012년에 세계 유명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한 ‘샤넬 모바일 아트(Chanel Mobile Art)’전과 ‘더 리틀 블랙 재킷(The Little Black Jacket)’전이 가장 화제가 되었다. 특히 더 리틀 블랙 재킷’은 샤넬 재킷을 착용한 명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시한 것으로 샤넬 브랜드의 정체성과 예술성을 잘 살린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아트 마케팅의 성공 조건, 그리고 미래


'아트 마케팅'을 추진하는 기업의 공통점은 ‘CEO의 강력한 의지’와 ‘내부 구성원들의 이해’를 꼽을 수 있다. ‘아트 마케팅’은 한 두 번의 판촉성 행사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오랫동안 추진해야 그것이 브랜드 자산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 마케팅’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직 내에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CEO의 의지 또한 필요하다. 많은 기업이 아트 마케팅뿐 아니라 내부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문화 생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문필가와 예술가를 사내 교육강사로 활용하여 조직 내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를 배양하고, 직원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장려한다고 한다. 최근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사내에 인문학 강사나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아트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각광 받는 마케팅의 장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고객들의 눈높이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브랜드들이 다양한 예술 장르들과 콜라보레이션의 기회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제조업 분야에 불고있는 ‘맞춤형 소량 생산’ 트렌드의 바람을 타고, 다양한 고객들의 감각적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 마케터들은 더 많은 예술적인 소양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예술은 진화하는 브랜드라면 누구나 꿈꾸는 지향점이다. 롱런한 브랜드들은 영속하기 위해 스스로 ‘예술’이 되는 방법을 택한다.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은 대대로 이어온 공방의 장인과 전통 자체를 예술화한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예술’은 모든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이다. 예술을 길고, 고전은 결코 녹슬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의 예술에 대한 갈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아직까지 아트 마케팅이 활발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이 충분한 소비시장을 갖추게 되면 아트 마케팅 사례는 전세계 더 많은 곳에서 목격될 것이다. 향후 현대판 메디치 가문들이 펼치는 아트 마케팅의 화려한 향연을 기대해 본다.



참고 사이트


르네상스 문화 예술에 대한 메디치 가문의 역할 


해외의 메세나 활동 사례 PDF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문화 마케팅•디자인 혁신을 통해 본 현대카드의 기발한 ‘마케팅 매직’ (서울경제)


예술을 파트너로 기업-문화 윈윈 (동아 비즈니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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