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에 플러스 아닌, 필수가 된 인문학 


기업 경영에 플러스 아닌, 필수가 된 인문학


 

여전히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의 취업은 녹록지 않지만, 서점에 가면 인문학에 빠져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만큼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꺼지지 않고 있다.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흔히 ‘문사철(文史哲)’이라 일컬어지는 문학, 역사, 철학으로부터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개인을 넘어 경영 일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문학, 경영의 영역에 파고들다

‘왜 인문학이 경영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해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이 무엇을 추구하는 학문인지 정의가 필요할 듯하다. 인문학의 영국식 영어표현인 Humanities라는 말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즉,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놓고 인간의 특성과 욕망을 탐구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탕을 만드는 공부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경영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부의 팽창은 노동자의 삶보다는 이윤 추구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소외 현상을 불러왔다. ‘효율성’이라는 기치 아래 사업장의 시설들은 인간의 편의와 본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많은 기준은 무시되어 왔다. 


또한, 급격한 기술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은 더 우수하고, 더 빠르고, 더 고급스러운 것만 추구했을 뿐, 사용자의 이용 편의는 후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곤 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생산자의 위치에서나 소비자의 위치에서나 주체적인 입장에 서 있지 못했다.



기업경영, 인문학으로 달라지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러한 시각들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특정 사회 현상은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을 맺고 있는 사회 환경이 변화를 일으키면서 나타나게 되는데, 경영에서 인문학이 중요해지는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문화 상품을 소비하게 되었다. 가계 소비 구조에서 생필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지고 서비스와 콘텐츠 수요가 늘어나면서, 문화 산업이 크게 성장하였고, 이 문화 산업의 핵심이 되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신화와 고전 등을 포함한 인문학은 출판,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의 자원으로 활용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둘째, 소비의 가치가 ‘성능’이 아닌 ‘편의성’으로 변화했다. 현대에 이르러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많은 소비재화들이 Commodity화 되었는데, 성능이 거의 비슷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심미안적으로 더 뛰어나고, 사용하기에 편한 제품을 소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고객 연구에 더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 중심에서는 ‘고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인문학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서 기업문화 개발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이직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직원들의 사기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과거 역사적 사례와 신화 등 인문학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한편, 혁신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인문학을 활용하여 직원들의 창의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경영 내의 인문학을 탄생하게 한 세 가지 사회적 배경과 어울리는 사례를 선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1. 콘텐츠의 힘은 예술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픽사


<토이스토리>, <카>, <몬스터 주식회사>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픽사는 1996년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픽사 대학(Pixar University)’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 사장이던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이 직원 대상 데생 클래스를 연 것이 발단이 되어 지금은 100여 개의 예술 강좌를 갖춘 ‘예술 대학’으로 진화하였다. (물론 입학과 졸업, 정형화된 평가는 없으며,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사내 교육 기관이다)



모든 직원은 창작자의 가능성을 갖고있다

픽사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몇몇 우수 직원에 의존하여 스토리를 개발하지 않는다. 제작팀에서 충분히 아이디어를 뭉치고 시너지를 발휘하여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는 전 직원이 예술적 영감을 가져야 한다는 가치 아래 운영되는 픽사 대학의 목적과도 부합한다.


이를 위해, 픽사 대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여하는 직원들은 물론, 엔지니어, 마케터, 요리사, 행정팀 직원 등 다양한 직군의 직원들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열어두었다. 개설된 강좌 역시 조각, 회화, 연기, 명상, 댄스, 발레, 영화 제작, 디자인, 색상 이론 등 예술 활동 전 범위에 걸쳐 갖춰져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픽사의 임직원들은 이를 다채롭게 융합, 응용하여 작품에 적용할 수 있다.


협업과 팀워크을 배우는 학교 

픽사 대학의 순기능은 직원들이 일터에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강좌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수업 시간에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평하며 효과적으로 팀워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운다. 흔히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트웍에 대한 비평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경향이 발견되는데, 픽사의 직원들은 이러한 수업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개선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혀 나간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의 목적과 맞닿아 있으며, 픽사 대학이 가르치는 중요한 무형의 자산 중 하나이다.



 2. 기계는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다, 애플


 2011년, 구글이 인문학 전공자 5000여 명을 뽑는다고 하였을 때, 구글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세계적 혁신 기업 애플은 이런 행보에 동참하지 않았다. 삼성이나 유니레버처럼 사내에서 임직원 대상으로 진행하는 별도의 인문학 프로그램도 애플만큼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애플이 인문학적 관점에서 우수 기업으로 꼽히는 것은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혁신 상품이 출시되는 과정 때문일 것이다.


애플, 기계에 유저인터페이스 개념을 도입하다

20세기 후반에 널리 보급된 퍼스널 컴퓨터는 인간이 기계의 언어를 익혀서 컴퓨터가 연산을 처리를 돕도록 하였기 때문에 인터페이스가 사용자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현재의 30대 이상이 배웠을 GW-Basic이나 C언어 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애플은 80년대에 이미 매킨토시 컴퓨터에 Graphic User Interface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고안된 그래픽(아이콘)을 클릭하여 프로그램이 실행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는 작은 화면에 표시된 앱을 직접 손가락으로 터치하여 실행하며, 더 나아가 기계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문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애플의 인문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에는 그리스 철학도, 르네상스도, 도스토옙스키도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인문학의 본질, 혁신을 만들다. "왜?"라고 질문하기

인문학의 본질은 이미 선현들이 훑고 지나간 고전들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체계화되고, 진리로 굳어진 것이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는 인문학의 바다인 셈이다. 애플은 이미 축적된 인문학적 지식을 직접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혁신 상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스티브 잡스의 질문은 “왜 사람이 기계에 맞추어야 하는가?”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더욱 편하게 기계와 소통할 방법을 연구하며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욕망과 반응 메커니즘에 대해 깊이 성찰하였고, 그 결과 아이폰과 같은 상품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사실, 혁신 상품은 이러한 통찰력이 없으면 만들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기업은 소비자에게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큰 비용을 들여 고객조사에 나섰지만 혁신 상품은 쉽게 나오지 않았는데, 소비자 역시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터치패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소비자가, 디지털 컨버전스나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결합한 휴대폰을 먼저 상상하고 제안할리 없지 않은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통찰로 인해 다수의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혁신을 제시하는 접근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3. 신화와 역사로 결속된 기업문화, 아모레퍼시픽


2000년대 후반, 아모레퍼시픽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사명을 ‘태평양’에서 ‘아모레퍼시픽’으로 변경하고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유통질서 급변에 따라 국내사업 정비에 들어갔다. 이렇게 변화가 많은 시기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인 뿌리를 다져 구성원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오늘날 많은 기업은 숫자로 측정된 미래 비전과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구성원을 독려하고 함께 갈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오히려 기업 문화의 기원을 찾아 구성원 결속을 도모하고 이 과정에서 신화와 역사라는 인문학적 방법을 다수 차용하였다.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으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스토리에 집중했다. 일제시대 창업자의 어머니가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사업의 기원, 해방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창업자의 열정, 해외 선진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애쓰던 모습, 그리고 전쟁미망인들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방문판매 스토리까지 많은 사료를 수집하여 창업 스토리를 신화화 하고, 구성원들에게 자랑스런 회사의 역사가 있었음을 전파하였다. 


최근 ‘스토리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박물관을 개관한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시기부터 모아온 모든 사료를 전시하여 임직원과 외부 고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60년대 화장품 연구실을 재현해 놓은 것은 물론, 창업 후 출시한 제품들과 유니폼, 사보, 카탈로그, 사무실 현판 등 회사가 걸어온 모든 증거를 전시하여 스토리가든에 방문한 임직원들에게 70년의 역사를 가진 회사의 일원으로서 자긍심을 불러일으킨다.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가든 홈페이지에서 캡처


고전, 역사, 철학으로 지혜를 나누다

저명한 인문학 강사들을 초청하여 임원 대상 강의를 하고, 그 내용을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그 범위는 자연과학, 종교학, 철학, 고전문학, 인류학, 역사학, 미술 등 다양하다. 또한,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은 회사의 전략과 시장 환경에 대해 과거 역사 이야기를 빗대어 직원들과 소통하곤 한다.


특히, 다양성이 존재하는 기업문화와 글로벌 확산, 혁신이 절실한 지금, 이에 걸맞은 역사적 소재들은 직원들에게 영감을 불어 일으킨다. 최근에는 다양한 민족을 수용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청나라의 이야기와, 현실에 안주하여 몰락한 중세 베네치아와 스페인, 그리고 대륙 봉쇄에 맞서 바다로 나가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유럽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이 된 영국의 이야기들이 사내 매체를 통해 전달하였다.


지금까지 문화콘텐츠 개발, 고객의 욕망 탐구, 기업문화 정립에 관한 사례를 통해 인문학의 경영 활용 방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인문학은 그 효과를 정량적인 방법으로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경영인이 인문학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고, 또 필요성을 느낀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이 기업 경영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는 인내도 필요하다. 인문학은 단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빨리 습득할 수 없을뿐더러, 다른 학문 분야와 경영, 기술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무르익는 과정과 시간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직원들이 인문학적 소양과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최고 경영층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사내 교육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질수록 고객의 욕구가 다양해질수록, 문화 콘텐츠와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예측하고,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이면의 숨은 욕망을 찾으려 할 것이며, 더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아 여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도서관 책장에 묵혀져 있던 재미난 이야기와 오래된 지혜들이 기업활동을 통해 우리 삶 속에 더 많이 들어올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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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인문학이 경영을 바꾼다. (삼성경제연구소, 2011년 8월)


인문/기술 융합에 기반한 기업혁신 사례분석 및 활성화 방안(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5)


기업경영 인문학으로 날개를 펴다(CEO, 2016년 4월)


사내 예술교육 고갈되지않는 창의성의 원천(매일경제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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