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코워킹 스페이스 



이제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라 불러주오

"프리랜서 천국 베를린의 코워킹 스페이스"


BERLIN, 거리마다 문화예술의 창조적 정신으로 넘쳐나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 힙(hip)한 도시로 손꼽힌다. ‘아티스트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 최근 들어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StartUp Hub)’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독일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의 이름을 따와 ‘스타트업 아우토반’이라고도 불릴 정도다. 지난 4년간 1300여개의 스타트업이 베를린에서 탄생했다. 20시간마다 1개의 온라인 회사가 설립되는 셈이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창업 붐이 불면서 베를린에도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했다. 더욱이 영국이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베를린이 차기 스타트업 도시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5년에는 스타트업 총 투자금액 21억 5000만 유로로 런던(17억 7000만 유로)를 처음으로 제쳤다. 타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방대한 문화적 인프라, 유럽 전역으로 쉽게 통하는 지역적 입지, 자유롭고 개방적인 매력적인 도시 이미지, 높은 영어사용률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리 세대가 일하는 방식, 디지털 노마드


"21세기가 찾아 오면 뛰어난 기능의 전자기기로 무장한 부유 계급은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보다 생산적인 환경을 갖춘 곳을 선점하기 위해 유목의 길을 나설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새로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하는 유목민(nomad)이 될 것이다." 

– 자크 아탈리, <21세기 사전> 中

벤처 창업가, 디자이너, IT 전문가, 일러스트레이터, 개발자,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 전문성을 가진 프리랜서들이 베를린을 찾는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들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아탈리’가 1997년 자신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처음 소개한 ‘디지털 노마드’란 용어는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의 합성어로 휴대폰,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 등 첨단 기기를 활용하여 시간과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오늘날의 세대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유럽의 카페와 달리 Wi-Fi 막대 세 개가 또렷한 베를린 한 카페를 찾아 창 밖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다.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는 협업이 이루어지다

청년이 몰리자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다. 말 그대로 같이(Co) 일하는(Working) 공간(Space)인 코워킹 스페이스는 서로 다른 소속의 전문가 혹은 프리랜서들이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나누는 협업 공간을 뜻한다. 2005년 베를린 중심지 미테(Mitte)에서 가장 큰 카페인 ‘St.Oberholz’가 처음으로 Wi-Fi를 무료 개방한 이후, 2009년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에 5층 규모의 ‘Betahaus’가 오픈하면서 베를린 곳곳에 코워킹 스페이스가 생겼다. 베를린에만 현재 70여개가 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존재한다. 



‘WHERE’ 보다는 ‘WHO’, ‘SPACE’보다는 ‘PEOPLE’


사례를 살펴보기에 앞서 생각해보자. 코워킹 스페이스가 사용자들에 주는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갖춰진 일반적인 사무실(Office)과 아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카페(Café)와는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이들 코워킹 스페이스들은 어떤 이야기와 철학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까? The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why people thrive in co-working spaces’라는 분석 기사의 한 구절이 좋은 답변이 될 것 같다.


(코워커들은)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과의 커넥션은 집에서 자유롭게 일하거나 혹은 평범한 사무실이 아닌, 공용 공간에서 일을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큰 이유이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저마다의 분위기를 가지며, 각 공간을 운영하는 매니저들은 멤버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코워킹 공간은 카페와 다르다

커뮤니티, 소속감, 커넥션 그리고 차별화된 경험. 코워킹 스페이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공간이면서도 개개인의 니즈에 맞춰진 ‘사람 중심의 공간’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까 혼자 일하는 독립성과 자유로움을 누리면서도, 함께 일하면서 얻는 소속감의 가치를 얻는 것이다.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피드백을 얻고 사업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워크샵과 강의, 멘토링과 투자자 연결 서비스, 이벤트와 네트워킹 활동을 통한 인맥 형성 등 사교적 기능을 제공한다. 임대료, 인터넷 서비스, 업무에 필요한 전문 장비 등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사실 공간의 인테리어나 시설의 편리함 등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선택하는데 핵심적인 요인이 될 수 없다. 모든 공간이 자유롭고 편안한 업무 공간을 조성해 놓아 기본 이상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코워킹 스페이스는 공통적으로 공간보다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들이 늘어날수록 코워킹 스페이스의 컨셉이 세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5개의 베를린 코워킹 스페이스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인사이트를 얻어보자.



- 가치있는 일을 함께할 사람들의 모임 (Common good)

- 창작자를 위한 맞춤공간 (Convenience)

- 집단지성을 공유 (Collaborate)

- 카페같은 아늑한 공간 (Coffee & Comfort)

- 창조적 환경과 커뮤니티 기반 (Community)



[Common good] 코워킹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다, IMPACT HUB

홈페이지 : berlin.impacthub.net


임팩트 허브는 큰 가치를 이야기한다. 인류가 미래에 당면한 문제들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지만 함께 한다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문화, 세대, 조직을 초월하여 협업할 수 있는 협업 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17개의 글로벌 현안들이 웹사이트에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빈곤퇴치, 건강, 성 평등, 신재생 에너지, 안정적인 업무환경과 경제 성장, 지속 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빈부격차의 감소, 환경보호 등이다. 


심지어 이들이 제시하는 기준 3가지에 부합해야 Impact Hub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Personal Fit (개인적으로 사회적 혁신에 열정이 있는가? 사업가 정신과 협업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두 번째, Project fit (운영하고자 하는 사업의 성격이 지속 가능한 혁신과 연관이 있는가?), Ecosystem fit (임팩트 허브의 커뮤니티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의사가 있는가?) 이다. 기준에 충족했다면 하루 이용권인 Mini(10유로/한달 기준)부터 5일권인 Full-Time (195유로/한달 기준), 7일 이용권(295유로/한달 기준) 등의 다양한 멤버십으로 가입할 수 있다.

 



[Convenience] Maker들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창작 연구소, FAB LAB

홈페이지 : fablab.berlin


팹랩은 Fabrication Laboratory의 준말로 제조연구실이라는 뜻이다. 이 곳에서는 3D프린터, 레이저컷팅,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 무언가를 만들어(Make) 내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장비들을 이용할 수 있는 창작가들(Maker)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이자 오픈 스튜디오다. 개인 창작자가 보유하기 어려운 각종 공구과 장비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용방법에 대한 워크샵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목공 작업, 바느질 작업, 금속 가공 작업과 같은 전통 기술과 컴퓨터 디자인, 3D 프린팅과 같은 최신 기술까지 다룰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전통과 미래가 어우러지며 혁신적인 작업물들이 탄생한다. 2013년 원룸 스튜디오로 시작한 팹랩은 몇 년간 빠르게 성장하여 베를린에서 가장 이름있는 메이커 허브다. 멤버십은 사용 가능한 장비의 가지 수에 따라 3가지(3D print club, Basic, Plus)로 구분되며 가장 저렴한 3D Club의 경우 10유로(한달 기준), 모든 장비를 커버하는 Plus 멤버십의 경우 150유로(한달 기준) 정도다.




  [Collaborate] 돈이 아닌 콘텐츠로 지불하다, BLOGFABRIK

홈페이지 : blogfabrik.de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에 위치한 블로그파브릭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업무 공간이자 100여명의 크리에이터가 소속된 커뮤니티다. 소셜 콘텐츠 전략가, 카피라이터, 작가, 칼럼니스트, 저널리스트, 블로거, 포토그래퍼, 인스타그래머, 비디오그래퍼 등을 위한 특화된 코워킹 스페이스다. 


이곳의 특이한 점은 콘텐츠로 공간 이용료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콘텐츠들은 온라인 매거진은 블로그파브릭이 운영하는 ‘DAILYBREADMAG’에 게재된다. 사용자는 돈 대신 직접 만든 콘텐츠로 이용료를 대신하고 블로그파브릭은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로 온라인 매거진을 운영하는 Win-Win 구조다. 유니크한 컨셉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용자에 맞춘 지불 방법(멤버십)까지 차별화한 사례다. 


전형적인 업무 공유 공간이라기 보다는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그룹에 가깝다. 커뮤니티가 된 모든 창작자들 서로가 알아가고 협업할 수 있는 편안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미션이다. 디지털 콘텐츠와 관련된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출판하는 방법 등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크리에이터들의 성장을 돕는다. 

  



[Coffee&Comfort] 훌륭한 커피, 창조적 에너지, 클래식한 공간, SANKT OBERHOLZ

홈페이지 : sanktoberholz.de


유럽의 프리랜서 온라인 플랫폼 ‘Twago’가 매년 실시하는 베를린 코워킹 스페이스 랭킹 리스트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하는 장크트 오버홀츠는 베를리너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카페이자 코워킹 스페이스다. (글로벌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가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엔티크한 공간에서 풍겨져 오는 클래식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특히나 인상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각자의 모니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무바닥에 얽혀있는 전선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베를린 중심지 미테(Mitte)에 위치한 이 곳은 2005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free Wi-Fi 서비스를 제공한 카페다. 커피 한잔만 주문하면 빵빵한 와이파이와 넓은 테이블을 훌륭한 라테 한 잔을 마시며 이용할 수 있다.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심지어 스타벅스도 7시면 영업을 종료한다) 독일의 여타 상점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잠 12시, 요일에 따라서는 새벽2시까지 영업한다. 3~5층은 소규모 회사를 위한 사무실 공간, 미팅룸, 컨퍼런스룸 등이 있다. 현재는 근처에 2곳이 새로 오픈하여 3곳에서 운영된다. 원데이 티켓(15유로) 혹은 하프데이티켓(10유로)을 구매하면 더 빠른 와이파이와 함께 프린터기를 이용할 수 있으며, 카페테리아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Community] 음악 창작에 대한 모든 것, NOIZE FABRIK

홈페이지 : noizefabrik.com


노이제 파브릭은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들을 위한 공간과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코워킹 스페이스, 레코딩 스튜디오, 각종 행사가 열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 곳의 쿨한 점들 중 하나는 아티스트들이 직접 음악을 레코딩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함께 배우고, 협력하고, 창조하는 환경과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필드 전문가를 초청하여 기술과 마케팅 방법 등을 강의하는 워크샵이, 매주 금요일에는 라이브세션이 열린다. 코워킹 스페이스 멤버십과 스튜디오 이용 가능한 멤버십으로 크게 나뉜다. One Day Pass(10유로), Full time (99,99유로/한달 기준), 모든 공간 이용이 가능한 Full Access Member (129,99유로/한달 기준) 




한국에서도 코워킹 스페이스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코워킹 스페이스 업체인 위워크가 한국에 진출하여 현재 강남과 을지로에 2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고, 이어 현대카드가 스튜디오 블랙을 론칭해 위워크 강남점 옆에서 영업 중이다. 지역 곳곳에는 소규모 협업 공간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고 한다. 


과거 스타트업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관 주도의 협업 공간들이 국내 코워킹 스페이스의 다수를 이뤘던 것에서 벗어나 점점 민간 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의 코워킹 스페이스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갑다. 그러나 대부분이 '공간 제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공간마다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물론 코워킹 스페이스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공간이겠지만, 한국의 코워킹 스페이스 시장이 커지고 더욱 많은 공간이 생겨난 이후에는 공간이 아닌 차별화된 이야기와 가치가 곧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선진 사례인 위워크에서 다양한 네트워킹 활동을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어쩐지 성공한 프리랜서 혹은 유망한 스타트업 기업이 아니라면 다가가기 어려운 심리적 장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차별화된 가치와 개성을 자랑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작가, 음악가 등 늘 창조적인 영감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문화예술인들만의 코워킹스페이스는 어떨까? 이미 한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로만 존재하는 크리에이터들의 꿈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공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참고사이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Why People Thrive in Coworking Spaces


베를린 코워킹 스페이스 랭킹(twago) 'Berlin Coworking Spaces'


해외 코워킹 전문 매거진 'The Members : How, When & Why Do They Work in Coworking Spaces?'


Kotra 해외시장뉴스, ‘브렉시트, 유럽 스타트업 지형도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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