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홀리데이즈' 인 필라델피아 


해피 홀리데이즈 인 필라델피아


경계가 없는 시간에 시작과 끝을 정하고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듯하다. 만일 시간에 경계 없이 그저 하루를 더해가며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 제법 지루하고 무겁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한 해’라는 시간의 경계 때문에 삶을 조금 더 가볍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묵은 것은 털어낼 수 있고, 털어낸 자리에는 새로운 시작을 들일 수 있으니까. 




해피 홀리데이즈(Happy Holidays)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내가 사는 필라델피아 이 작은 도시가 들뜨기 시작한다. 추수감사절을 시작으로 홀리데이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덕분에 잘 알려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거쳐 크리스마스 그리고 자연스레 신정(New Year's Day)로 이어지는 이 기간을 사람들은 홀리데이 시즌(Holiday Season)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주간부터 헤어질 때 주고받는 인사가 즐거운 연휴 기간을 맞으라는 인사로 바뀌기 시작한다. “좋은 하루 보내(Have a good one)” 대신 “해피 홀리데이즈(Happy Holidays),”


해피 홀리데이즈라는 표현은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를 대체하기 위해 197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인사다.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모든 사람을 위해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트리, 가족의 의미를 기념하는 문화이다

홀리데이 시즌을 시작하는 진기한 풍경 중 하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용 나무를 차 위에 얹고 달리는 자동차들이다. 시즌이 시작되면 마을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판매하는 팜(Farm)들이 열린다. 팜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나무를 비롯해 크리스마스 리스(Wreath)나 집의 외부 장식을 위한 나뭇가지 등을 판매한다. 사람들은 팜에서 구입한 나무를 자동차 위에 매달아 운반한다. 소형차에 속하는 작은 자동차들 위에도 차체만큼 커다란 트리를 얹어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운반된 트리들은 거실 한 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 트리 장식을 집 바깥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창가 쪽에 둔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가정이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둔다. 평소 밤이면 굳게 닫혔던 창문들이 홀리데이 시즌만 되면 활짝 열린 채 세상을 밝힌다. 집집마다 외부 장식과 어우러진 개성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하는 것도 이맘때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이다. 


      


트리 장식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거는 오너먼트(Ornament, 장식품)이다. 크기도 색깔도 다양한 오너먼트들을 구경하다 보면 미국 사람들의 인식 속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가족적인 행사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해를 기념하기 위한 연도가 적힌 오너먼트, 특별한 가족 행사를 적은 오너먼트, 아이의 얼굴을 넣을 수 있는 액자 오너먼트, 그 해 태어난 아기의 손도장을 찍어 만든 오너먼트 등 가족의 의미를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오너먼트들이 트리를 채운다. 



트리 밑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이름이 적힌 선물들이 놓인다. 선물은 일반적으로 트리가 꾸며진 시점(12월 초)부터 놓이기 시작해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트리 아래를 가득 채운다. 트리 아래 놓인 선물들은 절대 혼자 풀어선 안 된다. 크리스마스 전에 풀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궁금해도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가족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모여 풀어봐야 한다. 마치 우리가 설 명절 아침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떡국을 먹는 것처럼, 이것 역시 가족이 함께 공유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가족적인 크리스마스 문화 때문에 이 시즌을 위한 파자마를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눈, 산타, 루돌프 등 다양한 모양의 크리스마스 패밀리 파자마를 쇼핑하는 것도 이 시즌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구경거리다. 

 


주변을 돌아보며,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시작된 홀리데이 시즌 쇼핑은 크리스마스 전후로 절정에 이른다. 할인 폭이 갈수록 커질 뿐 아니라, 가족 및 지인들을 위한 홀리데이 시즌 타깃 제품들이 진열장을 가득 채운다. 마치 추석을 준비할 때 우리나라 백화점이나 마트, 소셜커머스 사이트들이 추석 선물용 기획 제품을 가득 들여놓는 것처럼. 


실제로 일 년 중 크리스마스 때만큼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마땅한 시점도 없다. 미국에서 선생님들을 비롯해 친구, 이웃 등 평소 고마웠던 이들에게 소중한 마음을 전하기 가장 알맞을 때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크리스마스가 연인이나 친구 등 선택적인 관계에 국한되어 보내는 공휴일인 반면,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을 기반으로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 전반을 둘러보는 공휴일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 맞이한 세 번의 크리스마스 

'오늘은 모두 하던일을 멈추고 가족과 함께해요'


올해로 나는 미국에서의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첫해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두 번째 해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병원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그리고 세 번째 해, 올해 나는 지인들에게 선물할 60여 개의 핸드메이드 소이 캔들을 만들고 50여 장의 카드를 썼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카드를 적어본 것도, 동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선물을 나눠 본 것도 처음이다. 60여 명에게 나눌 선물을 준비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 장씩 카드를 적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웠던 순간이 오롯이 떠올라 내내 감사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전까지 여러 사람에게 마음을 나누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페들러스 빌리지(Peddler’s Village)로 향했다. 페들러스 빌리지는 홀리데이 시즌 크리스마스 전등 장식으로 유명한 곳인데, 매년 11월 말 트리 점등식을 한다. 크리스마스와 관련해 워낙 유명한 곳이라 나름 즐거운 구경거리를 예상하며 찾아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모든 상점이 닫혀 있었고, 불 꺼진 길가엔 사람도 없었다. 명절이면 어디든 사람들로 꽉 들어찬 풍경에 익숙했던 나는 이곳에서의 텅 빈 크리스마스가 매우 낯설었다. 쇼핑몰도, 음식점들도, 심지어 식료품을 파는 슈퍼마켓도 마찬가지였다. 대낮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텅 빈 건물들과 주차장이 매우 어색했다. 


대체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로 간 걸까? 궁금증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집 안으로 선물을 옮기는 사람들이 보였고, 집집마다 서너 대의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다. 순간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늘 당연하던 우리나라의 명절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날이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란 사실에 타협이 없는 이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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