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일본 리테일의 변신 


저성장 시대에 적응하려는 일본 리테일의 변신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의 산업은 일본이 밟아왔던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해왔다. 이는 전략적으로 일본의 앞선 사례를 벤치마크 한 것도 있겠지만, 일본의 사회, 문화적 구조가 우리와 비슷했던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제 성장기에 일본에서 처음 시작된 해외 패키지여행은 한국으로 옮겨와 대성공을 거뒀고, 80년대 일본 거품 성장기에 성행했던 가라오케와 ‘방 문화’와 같은 산업들도 90년대 한국 거품 경제 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그렇게 한국은 일본과 10~20년가량의 시차를 두고 주목받는 산업이 뜨고 지는 현상을 보였다.


사실 일본이 걷고 있는 길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현재의 일본의 모습을 보고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이유다. 특히 한국은 지난날,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분야를 발전시켰고, 수출 중심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시켰다. 또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최근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는 80년대 이후 일본의 사회, 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한국이 직면한 현실과 닮아있다. 


 


글로벌 경쟁 환경 변화로 개발도상국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거 Sony와 Panasonic이 처했던 위기를 삼성과 LG가 똑같이 겪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대국들의 경제력이 상승함에 따라 수출주도형 산업 포트폴리오에 드리운 리스크 역시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외부 동인과 더불어 인구 구조의 변화는 일본의 내수 시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1990년 즈음 이미 합계 출산율 1.5명, 기대 수명 80세를 넘긴 일본은 지금 높은 부양률과 소비 감소, 그리고 그에 따른 저성장과 자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잃어버린 30년’이 가져온 그간의 진통은 이제 일본인들의 생활과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고, 최근 급격한 인구 변화와 함께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비 행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일본인들은 더이상 예전처럼 소비하지 않는다. 극심한 고령화와 비혼으로 소비 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의 소비 성향은 점차 실속을 추구하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 일본인들의 특기할만한 소비 성향의 특징은 아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가성비와 편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심화하였다

일본의 백화점 시장은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선진국들의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고령화와 저출산, 비혼 등의 급격한 증가 속에서 ‘1코노미(1인 경제권)’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며 과시적인 소비성향이 줄어들고, 가격과 품질 모두를 만족시키는 실속형 소비 경향이 두드러졌다. 제로에 가까운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음에도 편의점과 드럭스토어 채널이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1코노미’를 향유하는 소비자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직관적이고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하여, 판매직원과의 교감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중소형, 무점포 리테일의 전성기를 열었다. 


둘째, ‘소비 다이어트’ 현상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모노 하나레’라는 미니멀리즘 소비 양식이 자리 잡았다. 상품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느꼈던 호황기의 소비자와 달리, 오늘날 새로운 소비자들은 공유, 대여, 재사용 등의 영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고도 성장기를 경험한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들은 상품에 대한 욕망이 덜하고, 디지털과 함께 유입된 ‘공유경제’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게다가 불황 속에서 생겨난 ‘스고모리 소비’(‘둥지 소비’로 풀이되며, 상품 가격도 비싸고 교통비와 외식비까지 지출하는 오프라인 소비를 최소화하는 온라인 쇼핑 행태) 트렌드까지 가세하여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최신 일본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는 두 리테일 전문점 ‘돈키호테(상)’, ‘무인양품(하)’



[Photo: 돈키호테, 무인양품 홈페이지]



인구학, 경제학적 흐름에 따른 소비 행태 변화는 일본 유통 시장에 새로운 업태를 등장시키고 있다


‘세븐일레븐’과 ‘니토리’

편의점 업계를 대표하는 ‘세븐일레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주거환경과 가장 밀접한 편의점은 고령층이 급속히 증가하는 현실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바쁜 현대인을 대상으로 최대한 빨리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었던 것이 초창기 편의점들의 목적이었다면, 오늘날의 편의점들은 편의성에 기반을 둔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한 공공요금 수납과 택배 서비스는 물론, 이제 대형 쓰레기를 반출하거나 전구 교체 등의 간단한 용역까지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층을 위하여 휠체어 사용에 특화된 매장 레이아웃을 개발하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집 밖에 나오기 꺼리는 고객을 위해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배송하는 ‘세븐 밀’ 서비스도 확대 시행하는 등 달라진 고객층의 니즈에 맞추어 편의점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배달용 미니카를 보유한 일본의 세븐일레븐 매장


 [Photo: www.nippon.com]


한편, 일본 로컬 가구 기업 ‘니토리’는 ‘이케아’와 같은 트렌디한 북유럽식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자, ‘일본 거주문화에 최적화된 합리적인’ 가구를 표방하며 니치 마켓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DIY 인테리어 구현이 쉽지 않은 소형 아파트에 사는 비혼의 1인 가구나, 자녀 계획이 없는 ‘딩크족’들 위해 ‘니토리’는 작고 가벼운 슈퍼 싱글 침대나 노인층이 사용하기 쉽도록 기능을 압축한 가구류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고객이 수입이 넉넉지 않은 젊은 직장인이거나 은퇴한 노인층인 것을 감안하여, 상품 가격과 배송비 역시 수입 브랜드보다 월등히 낮게 책정한 것도 저성장 시대 일본 고객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일본에 위치한 ‘니토리’ 매장


[Photo: fashionsnap]


마지막으로 살펴볼 ‘조조타운’은

 ‘가성비’, ‘편의성’, ‘소비 다이어트’ 니즈를 가진 

젊은 세대를 공략하여 성공한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의류업계의 이단아, ‘조조타운(ZOZO TOWN)’

조조타운은 일본의 인터넷 기업 ‘스타트 투데이’가 2004년 오픈한 의류 플랫폼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닷컴 붐이 일기 시작한 9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성장하였다. (2017년 일본 내 이커머스 분야 매출 3위) 하지만 유독 패션 분야만은 이커머스로 넘어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이는 신중한 일본인들의 심리와 맞물려 ‘옷은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조조타운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며 상품 구매와 공유를 할 수 있는 전반적인 온라인 생태계를 구축했다.


온라인으로 의류를 구매한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구매한 옷의 색감이나 핏이 판매자가 올려놓은 이미지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조조타운’은 이러한 판매자-소비자 간 불신 문제를 해결하고자 ‘WEAR’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런칭하였다. ‘WEAR’는 해당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직접 착용해보고 촬영한 사진을 올려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구매 의사가 있는 소비자들이 실제 후기와 착용 모습을 보고 결정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WEAR’라는 오픈 플랫폼과 달리 실제 ‘조조타운’이 차용하는 사업 운영 방식은 어느 정도 폐쇄성을 띤다. 상당수의 패션 이커머스가 공급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오픈마켓’의 성격을 띠는 반면, ‘조조타운’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80%는 ‘조조타운’이 위탁 판매하고 있다. 즉, ‘조조타운’은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의류 공급자를 찾아 자신들의 물류 창고에 입고시키고, 판매된 상품에 대해 위탁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조조타운’에 입점하는 상품의 진입장벽을 높여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합한 성공 전략이었다.


실제 ‘조조타운’이 운영하는 물류창고 ‘조조베이스(ZOZOBASE)’의 한 곳은 도쿄돔 2개 이상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렇게 통합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조조타운’의 소비자는 복수의 브랜드에서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한 번의 배송비만 지급하여 배송에 따른 부가 지출을 아낄 수 있다.



‘조조타운(상)’과 ‘WEAR(하)’ 홈페이지/앱 화면


[Photo: www.ebiz-japan.com]


이와 더불어, ‘조조타운’은 공유경제 트렌드에 발맞추어 ‘조조유즈드(ZOZOUSED)’ 서비스를 통해 중고거래도 지원하고 있다. 흔히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직접 신용거래로 이루어지는 보통의 중고판매와 달리, ‘조조타운’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구매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상품의 퀄리티를 보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조타운’의 모든 서비스는 ‘믿을 수 있다’는 기본 베이스 아래 ‘싸고, 품질 좋고, 만족스럽다.’는 평을 얻고 있다.


‘조조타운’의 전략은 단순하다. 타겟 고객의 니즈에 파고들어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더 이상 내수 시장의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현대 일본 사회의 특성상, 시장 확장이 아닌 ‘타겟 고객의 마음속에 방점을 찍는’ 전략은 비단 ‘조조타운’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일본 사회에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이에 따른 노동력의 감소와 소비 위축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과거 호황기와 같이 다수의 브랜드에서 비슷한 상품을 여러 번 구매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상품을 가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 한 곳에서 현명하게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 성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세븐일레븐’과 ‘니토리’의 전략도 마찬가지다. 인구와 경제 변화에 따라 타겟 고객을 재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일본의 리테일은 ‘동면’ 트렌드에 맞추어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앞서 밝혔지만, 한국의 경제와 인구 변화는 여러모로 일본의 십수 년 전과 많이 닮았다. 특히 인구라는 것은 전쟁이나 대규모 전염병 발생과 같이 극히 예외적인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 단시간 내에 변치 않는 ‘상수’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의 사회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당분간 어느 정도 유효한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실제로 노령화와 저출산, 그에 따른 저성장과 소비행태의 변화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기업들이 앞서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과제는 어쩌면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 참고사이트


‘정해진 미래’, 조영태, 북스톤(2016)


‘조조타운’에 대한 기사(이비즈재팬, 패션넷코리아)

Japanese e commerce: selling fashion online

일본 최대 패션 커머스, 조조타운(ZOZO TOWN)


‘세븐일레븐’에 대한 영문기사

Convenience Stores Going to Customers’ Doors: New Food Delivery Services Targeting Seniors


일본 패션업계 변화에 대한 기사(매일경제)

[글로벌 트렌드] 日 패션업계 판흔든 '프리마 아프리'


소비 침체 극복한 일본 성장 기업에 대한 기사(중앙일보)

[소비 침체 극복한 일본의 성장 기업] 코스모스약품·조조타운 … 불황이 뭔데? 


 ‘스고모리’, ‘모노하나레’ 등 새로운 소비현상에 대한 기사(아시아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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