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멘토링 CSR: 민간단체의 진로 교육 


사회적 멘토링 CSR: 민간단체의 진로 교육


10여 년 전쯤, 유럽여행 중에 영국 청소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16~17살이었던 그들은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school을 마치고, 대학 진학 예비 과정인 A-level을 수강 중이라고 했다. 대학에 진학할 뜻이 없는 친구들은 직업전문학교에 진학하여 18살이 되면 사회에 진출하고, 자신들은 희망하는 대학과 전공에 진학하기 위해 관련 기본 과목들을 수강하며 진로를 탐색 중이라고 했다.


 그 중 Amy라는 여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중에 ‘National Geographic’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라던 그녀는 대학에서 관련된 전공을 공부하기 위해 지리학과 사진학, 그리고 저널리즘 등의 기초 과목을 A-level에서 수강하고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덧붙여, 영국의 많은 대학이 재학 중 1년은 인턴쉽으로 학점을 인정받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즉, 영국 청년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2년(A-level), 대학 진학 후에 1년 정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하며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GAP YEAR



반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졸업까지 커리큘럼에 쉴 새 없이 따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입시 준비에 치어, 스펙 경쟁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전공과 진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채 많은 수의 고교생들이 대학생이 되고, 그 대학생들이 사회인이 된다.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처럼 제도권 교육이 젊은이에게 진로를 찾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교육 당국의 절실한 현실 인식 없이는 단기간의 개선이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의 진로 교육은 대부분 현장 실무에 기반을 둔 민간 조직에 의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민간 진로 교육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매뉴얼이 아닌 인간 고유의 능력’이 필수적인 직업군에서 많이 나타난다.

흔히 ‘전문직’이라고 하면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공인된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직업 세계에는 전문직 외에 숙련도에 따라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직종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직종들은 대개 창의력에 기반한 지속적인 능력 개발과 커리어 습득을 요구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영업이나 사무직에 비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건축, 광고, 언론, 마케팅 분야에서 진로 교육은 더 활발하게 나타난다.

 


둘째, ‘특정 기업’에 봉사하는 것이 아닌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한다.

많은 수의 기업에서 ‘인턴쉽’을 운영하여 청년에게 직업 체험의 장을 열어둔다. 사실 많은 경우의 인턴쉽은 정식 채용을 위한 선행 절차거나,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에 불과하여 향후 해당 회사에 입사를 목표로 할 경우에만 유의미하다. 따라서 인턴쉽으로 직업을 이해하고 실무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기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로탐색 목적의 직업교육은 재단 또는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하거나, 기업에서 진행하지만 사무공간과 별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례1) 마케팅 실무의 중심: 프래그머티스트



 ‘프래그머티스트’ 홈페이지: http://pragmatist.kr


‘프래그머티스트’는 2007년, 현직 마케팅 실무진이 뜻을 모아 설립한 대학생 대상 마케팅 교육 프로그램이다. ‘프래그머티스트’의 창립자들은 마케팅을 꿈꾸는 대학생에게 현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실제 사례를 공유하면서 멘토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대학생들은 현장에서 고민하는 마케팅 이슈를 함께 고민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연습을 통해 마케팅 실무 능력을 배양한다.


기수제로 운영하는 ‘프래그머티스트’는, 매 년 두 차례, 10~20명을 선발하여 각 6개월씩 커리큘럼을 진행하고 있다. ‘프래그머티스트’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격주마다 마케터가 부여하는 주제로 치열하게 고민하여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4회 현업 강의와 1회의 독서토론에 출석해야 한다. 매우 빡빡한 스케줄과 엄격한 학사관리 때문에 학업과 병행하는 것이 어려워, ‘프래그머티스트’는 휴학생만 지원서를 받고 있다. 


‘프래그머티스트’는 자신들의 경쟁력으로 인맥 네트워크를 꼽는다. 마케팅의 영역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담당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광고와 PR, 경영전략, PT와 협상스킬, 유통 전략 등 다양한 현업 지식과 실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프래그머티스트’의 운영진은 자신들이 쌓아온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실무진을 초빙하고 있다. 


실제로 ‘프래그머티스트’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브랜드 매니저뿐 아니라, 인문학 교수, 광고기획자, 경영전략 컨설턴트, 이벤트 플래너 등 다양한 분야의 실무진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프래그머티스트’를 수료한 선배들이 졸업 후 관련 분야에 진출하여 후배들에게 자신이 받은 혜택을 되돌려주고 있는데, 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견고한 강사진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프래그머티스트’의 파워를 보여준다.



사례2) 예비 광고인의 산실, TBWA 주니어 보드


 



TBWA 주니어보드: http://www.tbwakorea.com/#lsi62ci6b0q


 ‘프래그머티스트’가 기업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진로 교육이라면, ‘TBWA 주니어 보드’는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진로 탐색 교육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광고업은 다른 일반 사무직에 비해 예술적 감각과 창의적 사고를 요하기 때문에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선호하는 직종 중 하나다. 세계적 크리에이티브 명가로 손꼽히는 TBWA의 한국 자회사 TBWA Korea는 이러한 대학생들의 관심에 부응하여 2000년대 초반부터 ‘주니어 보드’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에게 광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여느 광고회사의 인턴쉽과 달리 ‘주니어 보드’는 사무실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주니어 보드’ 참여 대학생들은 TBWA 현업 실무진의 강의를 정기적으로 수강하면서, 간헐적으로 주어지는 개인 과제와 함께 매월 부여되는 프리젠테이션 과제를 팀 별로 수행한다. 


광고인들에게는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광고를 성공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프리젠테이션 능력이 필수적이다. TBWA ‘주니어 보드’의 모든 과제들이 프리젠테이션으로 완결되는 것은 광고회사의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덧붙여, TBWA는 몇 년 전부터 ‘망치’라는 프리젠테이션 프로젝트를 ‘주니어 보드’ 정식 커리큘럼에 포함하여 진행하고 있다.


‘망치’는 ‘주니어 보드’ 참여 대학생들이 활동 기간 동안 TBWA에 재직 중인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 대한 주제로 스피치를 준비하는 프로젝트다. 각각의 참여 학생들은 수백 명의 청중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7분에 압축시켜 효과적으로 전달해내야 한다. 작년에 7회를 맞은 이 프로젝트는 ‘주니어 보드’ 27기 학생들이 세종대학교 강당에 모인 4백 여명의 청중 앞에서 성공리에 발표를 마쳤다. 


2017년 TBWA 주니어보드 ‘망치7’ 홍보 포스터


[Photo: TBWA 공식 페이스북]


사실 ‘망치’ 프로젝트는 그 동안 광고인들과 일부 컨설턴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설득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최근 ‘인문학 강연’ 붐을 타고 널리 퍼지게 된 사회 현상과 연결된다. TBWA는 ‘망치’를 통해 지금까지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전달되었던 TBWA의 메시지를 대중에게까지 확장시켰다. 또한, 실업과 같은 청년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찾고, 그 목소리를 청중들 앞에 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TBWA의 광고인 교육은 특별하다고 하겠다.


 


사례3) 건축으로 사회를 이롭게: 정림건축문화재단


 정림건축문화재단 홈페이지: http://www.junglim.org


[Photo: 정림건축문화재단]


‘정림건축문화재단’은 건축사무소 ‘정림건축’이 사회공헌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다. 이 재단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건축을 통한 공동체 활성화를 미디어, 교육, 포럼, 전시, 공동체 연구, 출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걸맞게,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예비 마케터와 예비 광고인 양성을 목적으로한 이전 사례들과 달리, 일반인의 ‘건축’에 대한 소양 향상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실제 재단이 운영하는 ‘건축학교’ 프로그램은 실제로 유치원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히, 고교생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프로그램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는 건축물에 대해 토의하고 실습하며, 학생들 스스로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건축상을 그려나가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다소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는 ‘건축’이라는 주제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고, 중고생들은 ‘건축’ 관련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할 수 있다.


정림건축문화재단 ‘건축학교’ 수업모습

左: 초등생 대상 ‘새싹꿈 과정’ / 中: 성인 대상 ‘토요일 11시’ / 右: 중고생 대상 ‘푸른꿈 과정’


[Photo: 정림건축문화재단 건축학교 인스타그램]



건축에 대한 친화력을 높이고, 꿈을 심어주는 청소년 대상 ‘건축학교’와 달리, ‘토요일 11시’와 ‘스스로 작업실’ 프로그램은 일반인 대상이다. 건축이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스스로 작업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주거 공간을 직접 설계해보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좋은 집이 가져야 할 현실적인 조건을 습득해 나간다. 


또한, ‘토요일 11시’는 건축가와 포럼이 주를 이루는데, 현대인들이 주거와 관련하여 마주치는 부동산 이슈들에 대해 토론해 보고,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어떠한 대안들이 미래의 주거로서 나타나게 될 지 생각해 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정림건축문화재단’의 교육 프로그램은 복잡한 설계도면과 역학구조에 대한 설명 없이,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실용적 커리큘럼으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학교 밖 다양한 분야 멘토의 활약과 진로교육 활성화 기대 


지금까지 살펴본 민간에 의한 진로 교육 사례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실제 이러한 경험이 청년 취업과 연계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활동들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민간단체나 참여하는 청년들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먼저, 참여하는 청년들에게는 현업에 근무하는 멘토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로 탐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산학협력이 이루어지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관심있는 분야의 선배들을 만나 고급 정보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게 기업 또는 민간단체 주도로 진행되는 진로 프로그램들은 청년들에게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특정 분야를 탐색해보고 진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기업체를 포함한 민간단체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CSR’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직업 교육은 기업 또는 단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시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최고의 사회공헌활동이다. 서두에 밝혔던 것과 같이, 이러한 직업 교육은 대개 일반 사무직이 아닌 마케팅, 광고, 언론, 건축 등 어느 정도 인간의 감성과 창의성에 기댄 ‘특화된 직종’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 커리어를 가졌다는 나름의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자신들의 직업을 선망하는 젊은이들은 그 존재와 열정만으로 큰 자극이 된다. 자신을 동경하는 젊은이들 앞에서 어느 정도 폼을 잡으며 도움을 주는 일은 절대 귀찮은 잔업이 아니며, 그런 식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사회적인 의미로 확장하는 것은 매우 보람찬 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새로운 시대를 맞아, 민간을 통한 직업 교육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늘어나는 스타트업 붐을 타고 스타트업에서 요구하는 자질을 속성으로 교육하고, 인력이 필요한 스타트업에 청년들을 매칭시켜주는 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비해 우리네 교육 제도는 너무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적성에 따라 사회에 부응하는 인적 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 밖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이 앞으로 더욱 필요하게 되리라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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