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가 꿈꾸는 유통 신세계 


‘신세계’가 꿈꾸는 유통 신세계


지난 1월,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은 ‘깜짝 발표’를 단행했다. 대규모 투자 유치와 온라인 사업 전담 회사를 인수하여 이커머스 분야의 1위를 달성하고, 5년 후인 2023년에는 이 분야의 매출을 현재의 5배 수준인 10조원까지 키워 신세계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정 부회장의 포부에 걸맞게, 일각에서는 신세계가 ‘한국의 아마존’을 꿈꾼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신세계 그룹의 행보는 가히 주목할만하다.


1963년, ‘신세계 백화점’으로 출범한 기업 ‘신세계’는 수 많은 ‘최초’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1967년 당시에는 보기 드문 ‘바겐세일’이라는 백화점 단위의 대형 프로모션을 진행하였고, 69년에는 최초로 신용카드를 도입하여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1990년대 초반까지 백화점과 전통시장으로 양분화 되어 있던 대형 리테일 시장에 ‘이마트’를 국내 최초로 런칭(1993년, 창동점)함으로써 ‘대형 마트’라는 새로운 유통 시대를 열어갔다.


이러한 신세계의 혁신과 변화는 요즘 더욱 더 피부에 와닿고 있다. 2014년, 이마트몰과 신세계몰을 통합한 ‘SSG닷컴’의 런칭은 물론, 2016년에는 쇼핑 테마파크인 ‘스타필드 하남’을 성공시켜, 이후 코엑스와 고양시까지 진출하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런칭하자마자 화제를 모았던 SSG 티저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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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금처럼 저성장이 고착화된 ‘뉴노멀’ 시대에 이런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실제로 백화점, 마트를 포함한 신세계의 주된 유통 채널은 2010년대 이후 고전을 겪고 있는데,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다. 실제로 인터넷의 발달과 1인 가구 급증으로 소비 트렌드는 기존 유통 채널에서 멀어지고, 성장이 둔화하던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각각 2013년, 2014년을 기점으로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변화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기로에 유통업체들은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신세계는 ‘고객에 대한 이해’와 ‘발상의 전환’이라는 ‘기본’과 ‘혁신’을 통해 위기를 타개해나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엔터테인먼트 복합몰 ‘스타필드’와 값싸고 질 좋은 상품에 집중한 ‘노 브랜드(No brand)’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타필드, 도시를 벗어나다


“고객의 니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스타필드 1호점을 하남에 오픈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처럼 막대한 자본을 들여 건설한 유통 채널은 충분한 배후 수요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백화점은 대도시의 도심과 부도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트의 경우 두터운 소비층이 거주하는 대규모 주거 상권에 자리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천만 명의 잠재 소비자가 거주하는 서울을 등지고 하남에 거대 쇼핑몰을 오픈하겠다고 한 신세계의 계획에 누구나 한 번쯤은 고개를 갸우뚱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를 뒤집고, ‘스타필드 하남’은 개장 첫 100일 동안 무려 740만 명의 방문객을 모았다. 그리고 오픈 3년차를 맞은 지금도 주말이면 주차장이 만차가 될 정도로 인파가 몰리고 있으며, 뒤 이어 개장한 ‘스타필드 코엑스’와 ‘스타필드 고양’ 역시 많은 이들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되었다.


축구장 70개를 모아놓은 크기의 쇼핑 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





쇼핑몰이 아니라 테마파크이다 

디지털로 쇼핑의 헤게모니가 넘어가,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는 것에 극도의 신중함을 기울이는 이 시점에, 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초대형 쇼핑몰을 열었을까? 신세계는 그 답을 고객에게서 찾았다.


온라인을 통해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실제로 피부에 와 닿는 쇼핑 경험을 원한다. 디지털이 ‘거래’ 자체는 대체할 수 있지만, 직접 둘러보고 체험할 수 있는 소비까지 대체할 수 없다고 신세계는 보았다. 실제로 단순히 저렴한 상품을 충분히 비치하고 있는 것만으로 오프라인 상점이 온라인 몰의 편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가격 매력도를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신세계는 온라인 구매로 채워지지 않는 고객의 욕구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스타필드’라는 엔터테인먼트 복합몰 브랜드가 그것을 채울 수 있도록 세밀하게 기획하였다.


방문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타필드’는 단순히 다양한 브랜드들을 나열해 놓은 공간이 아니다. 굳이 쇼핑목적이 아니더라도 가족단위의 고객들이 편하게 교외를 찾아 시간을 보내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테마파크’에 가깝다. 실제로 스타필드가 모객하는 앵커 테넌트들은 H&M이나 유니클로와 같은 대형 SPA 브랜드가 아닌 아쿠아필드, 스포츠몬스터, 플레이타임, 토이킹덤과 같은 가족 친화적인 매장들과 ‘별마당 도서관’과 같은 문화 시설들이다.


그렇게 스타필드는 단순히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고객이 아니라, 놀러오듯 방문하는 고객들을 맞았다. 축구장 70개 크기의 넓은 공간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단순히 상품 판매가 아니라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는 체험 매장으로 기능한다. 서울 시내 대형 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BMW’나 ‘할리데이비슨’ 매장에서 시승을 해볼 수 있고, 심지어 ‘노루표 페인트’ 매장에서는 실제 벽지에 페인트를 칠해보면서 발색을 확인해볼 수 있다. 즉, 제한된 공간 안에 동선을 효율화시켜 최대한 많은 매장을 넣은 도심의 몰에서와 달리 스타필드 하남점은 다소 여유로운 공간 안에 브랜드가 표현할 수 있는 스토리를 넣어 고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여 플래그십스토어 기능을 할 수 있게 설계했다. 고객들 역시 공간적인 답답함과 시간적 여유에 쫓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몰링을 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체류 시간이 길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스타필드 하남점에 위치한 노루표 페인트 컬러 스튜디오(출처: 노루표 페인트 홈페이지)



Enjoy "Different!"


이는, 알고리즘과 멤버쉽으로 정의된 이커머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고객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온라인 리테일러들은 페이지뷰에 따라 최적화된 맞춤 정보를 제안하고, 구매 히스토리에 따라 제품을 추천하며, 재구매를 유도하고, 장기적인 충성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멤버쉽과 같은 로열티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반면, 스타필드는 고객이 ‘그저 즐겁게 머무를 수 있게 만드는 것’만으로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 구축을 시도한다.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아닌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 친구와 함께 방문하는 테마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즐거운 방문 경험이 지속적인 재방문과 구매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런 확신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오픈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스타필드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고객은 결코 자기가 필요한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디지털 쇼핑으로 가격과 편의성의 니즈는 채웠지만, 그리고 도심 가까이에 유명 브랜드들을 갖춘 대형 쇼핑몰은 즐비하지만, 그래도 신세계는 저변에 깔려있던 고객의 잠재 욕구에 주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를 뒤집고, ‘스타필드 하남’은 개장 첫 100일 동안 무려 740만 명의 방문객을 모았다. 그리고 오픈 3년차를 맞은 지금도 주말이면 주차장이 만차가 될 정도로 인파가 몰리고 있으며, 뒤 이어 개장한 ‘스타필드 코엑스’와 ‘스타필드 고양’ 역시 많은 이들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되었다.


스포츠 몬스터



노브랜드, 당연한 명제를 증명해낸 역발상


‘PB(Private Brand)’라고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형마트에서 유통 마진을 줄여 더 싼 가격에 출시한 싸구려 브랜드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사실 PB 상품은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춰 탄생한 브랜드였다.


‘브랜딩’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강력한 마케팅 키워드였다. ‘브랜드’라는 개념이 처음 대중화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에는 브랜드가 믿을만한 품질을 보증하는 상표였지만, 마케팅이 점차 고도화 되면서 품질보다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이 ‘브랜딩’의 핵심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성장이 점차 둔화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고객들은 점차 브랜드가 아닌 상품의 ‘가성비’를 따지게 되었고, 이러한 배경하에 대형 마트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품을 한 번 더 걷어 낸 유통 업체들의 자체 ‘PB’ 상품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PB 상품은 가격 최적화에 너무 소구한 나머지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이마트의 PB 의류 브랜드 DAIZ의 경우도 ‘집에서 아무거나 걸쳐 입을 때 입는 옷’ 정도의 포지셔닝을 가지게 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더군다나, 이커머스가 활성화 되면서 더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상품들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면서 마트에서 판매되는 PB 브랜드들의 위상은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신세계 이마트의 고민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상품을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을까

PB 브랜드를 런칭할 때와 같은 질문이었지만 이마트의 접근법은 달랐다. 과거 PB 상품들이 ‘유통’ 과정에서의 혁신을 노려 저가를 추구했다면, 이마트는 ‘상품 개발’ 단계에서의 혁신을 추구했다. 이마트는 먼저, 고객과 시장의 변화를 다시 한번 주목했다.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로 굳건했던 4인 가족 체제가 붕괴되고 있었고, 마트에 찾아오는 고객층이 필요한 것들도 그에 따라 변해갔다.


앞서 언급한대로 PB 상품의 한계는 ‘싸구려’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예컨대, PB 의류 제품을 입고 거리로 나갈 수 없는 이유는 이 극복할 수 없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장에는 다양한 상품군이 존재하고, 브랜드가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카테고리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반대로 브랜드가 중요하지 않은 이른바 ‘저관여’ 상품들도 있었다. 가족의 형태가 세분화되어 다양한 종류의 소형 가구가 등장하고, 또 거기에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트렌드까지 가세하면서 품질 좋고 저렴한 저관여 상품 니즈는 시장 내에 이미 팽배해 있었다. 이마트의 ‘노 브랜드(No brand)’는 바로 이 점을 파고 들었다.


 

[Photo: 이마트24 홈페이지]


‘노 브랜드’는 고객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많은 브랜드들이 경쟁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부가적인 기능을 더하며 고객의 핵심 니즈에서 점차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브랜드들의 노력과는 달리 비스킷, 쿠키, 휴지 등의 저관여 상품들은 고객이 기대하는 핵심 속성 하나만 뛰어나다면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고객이 진정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가장 심플한 방법으로 풀어낸 덕분에, ‘노 브랜드’는 특별한 마케팅 투자 없이도 이마트에서 성공적인 2세대 PB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유통 공룡 신세계의 진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신년 ‘깜짝 발표’처럼 신세계 그룹은 이제 온라인을 성장 동력 삼아 거대한 유통 신세계를 만들어갈 태세를 갖추고 있다. ‘로켓 배송’으로 화제를 모았던 쿠팡의 경쟁우위를, 신세계는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를 건립하는 등의 투자를 통해 따라잡고 있다.


“한국의 ‘아마존’이 되겠다.”


신세계의 이러한 포부는 마냥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존’이 O2O 유통과 빅데이터, AI의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처럼, 신세계 역시 ‘슈퍼샵’과 ‘S마인드’ 개발을 통해 점점 미래의 유통에 다가가고 있다. 물론, 대형 마트와 백화점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기업이기 때문에 태생부터 디지털인 ‘아마존’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아마존’이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M&A를 통해 전통적인 유통 경로에 접근하고 있는 것처럼, 신세계는 이미 구축한 오프라인 자산을 통해 ‘아마존’과는 반대방향의 혁신을 이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늘 변화하고, 고객의 니즈를 둘러싼 유통 환경 역시 달라진다. 고객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기본기와, 다르게 접근하려는 혁신성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라면, 어떠한 신세계가 다가오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빠르게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창립 이래로 유통의 새 바람을 일으킨 신세계 그룹이 이러한 변화의 파도에 어떤 모습으로 편승하고, 또 어떻게 고객 만족을 실현하게 될지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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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스타필드 하남’의 성공 사례에 대한 DBR 기고문(2017년 2월호)


‘이마트 노브랜드’의 성공 사례에 대한 DBR 기고문(2017년 1월호)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의 포부를 다룬 중앙일보 기사(2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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