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네 놀이터,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놀이를 즐기다 


독일 동네 놀이터,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놀이를 즐기다


독일에 와서 정착할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동네 놀이터가 계속 눈에 밟혔다. 흥미롭게도 발길이 닿는 동선에서 발견한 네, 다섯 곳 놀이터는 제각각 다른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공통으로 흙과 모래를 바닥에 수북이 깔렸고, 목재 놀이시설은 다소 거칠어 보일 정도로 주변에서 구한 나무들을 대강 자르고 조여 세운 듯한 자연스러운 만듦새가 돋보였다. 놀이터마다 크고 작은 동물 조형물이 벤치와 함께 세워져 있어서 하나의 테마를 보이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어리지 않았지만, 더 가까이에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다. 



너무 안전한 한국 놀이터, 그만큼 즐길거리가 줄어들다

물론 독일의 놀이터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기억하던 한국 놀이터와 확연히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중앙에는 매끄러운 미끄럼틀을 가진 커다란 배, 성, 요새 따위의 플라스틱 구조물이 놓이고 시소, 그네 등이 그 주변에 설치되는 전형적인 놀이터. 미끄럼틀, 시소, 그네, 모래밭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놀이터는 1950년대 미국이 규격화시킨 양식을 비슷하게 표준화한 것으로 현재까지 계속 쓰인다. 


그사이 우리네 놀이터에 변화가 있었다면, 모래밭을 우레탄 바닥으로 대체하고 소위 정글짐, 구름사다리로 불리던 철조 놀이기구가 자취를 감춘 것 정도일 것이다. 건물로 포화된 도시 안에서 놀이터 역시 아파트 건설을 위한 규제에 따라가게 되고, 한편으로는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문화가 적용된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서글픈 것은 마찬가지다. 



엄밀히 따지면 처음부터 놀이터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이 놀다가 사고를 겪는 일이 잦아졌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따로 구역을 설정한 것이 그 시작이다. 즉, 어린이가 있을 수 있는 ‘위험하지 않은 공간’을 마련한 것이지, 어린이의 유희를 깊이 숙고하며 만든 공간은 아니었던 거다.


건축가, 혹은 어른의 눈으로 기획된 놀이터가 외려 부모의 편의에 관심을 가질 뿐 자주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외면하는 것은 비단 오늘날의 현상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골목과 마당, 흙모래를 만지며 놀 수 있던 열린 장소가 사라지는 시대에서 이제 아이들은 어디서 뛰어놀아야 하는 것일까? 점차 축소되는 아이들의 즐거움을 어른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필 수 있을까? 지금의 놀이터는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다 

“어린이가 있는 곳 어디나 놀이터다. 어린이는 언제, 어디서든, 모든 것을 가지고 논다.”

놀이터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unter Beltzig)




독일 놀이터디자이너 귄터 벨치히 웹사이트: http://www.beltzig-playdesign.de


독일의 저명한 놀이터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unter Beltzig)는 어린이의 놀이와 그에 걸맞은 환경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40여 년간 어린이를 관찰하고 그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왔음에도 그는 우리가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고 해서 어린이를 이해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겸손함을 유지한다. 그래서일까, 그가 설계한 놀이터들은 우리 눈에 우려스럽거나 의아스럽다. 


예컨대 몇 개의 돌벽으로 이루어진 놀이터, 언덕 아래 묻힌 콘크리트 배수관이 전부인 놀이터, 2~3m 이상의 높이로 설치된 나무 구름다리를 가진 놀이터 등 다소 위험해 보이거나 어디서 어떻게 놀아야 할지 친절히 안내되지 않는 장소들이 바로 그의 작업이다.


그는 놀이기구가 없는 이 놀이터를 가장 좋은 놀이터라 평했다. 어른의 눈에는 난감할 따름이지만, 이러한 환경이 아이들이 알아서 상상하며 놀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Photo: beltzig-playdesign]



<콘크리트 배수관 놀이터>

는 한국의 놀이터를 두고 “감옥 같다” 평한 적이 있다. 뙤약볕에 쉽게 뜨거워지는 플라스틱 재질의 놀이기구, 부족한 그늘, 동행한 부모에게 항상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 등이 그 이유다. 실제로 그가 설계한 놀이터는 바위, 조약돌, 나무 등을 주로 이용하고 자연과 친숙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는 공간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Photo: beltzig-playdesign]


<구름다리 놀이터>

높이가 아찔해 보이는 이 놀이터는 놀랍게도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장애를 가진 아동을 위한 별도의 놀이터는 필요 없으며, 장애를 가진 아이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라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흥미로운 곳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놀이는 어린이가 삶을 배우는 실제적인 방식이며, 노는 것이 아이들의 본성이다. 진짜 놀이는 아이들의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 어른이 디자인한 잠수함, 배, 우주선 등 화려한 모양을 가진 놀이터는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아이들은 자신들이 놀 장소, 좀 더 어렵고 힘들게 노는 법을 찾는다. 아이들은 상상력을 펼쳐 어른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간 안에 구역을 설정하고 나름의 방식대로 활용한다. 그렇기에 어른들 눈을 피해 자기 결정권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공간, 숨거나 뛰는 등 다양한 물리적 움직임이 가능한 공간을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사람은 놀면서 배운다


“아이들은 그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팅커링스쿨(Tinkering School) 설립자 게버 털리(Gever Tulley)



팅커링스쿨(Tinkering School)을 설립한 게버 털리(Gever Tulley)는 2007년 TED 강연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5가지의 위험’을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위험은 각각 불 다루기, 주머니 칼 가지기, 창 던지기, 가전제품 분해하기, 디지털 지적 재산권 법 위반하기, 운전하기(!)였다. 그러나 그는 각각의 활동들이 어떻게 아이들의 학습과 성장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했고, 이후 50가지의 위험 목록이 담긴 책까지 냈다. 


팅커링 스쿨 수업 사진 



도전적인 교장 선생님이 있는 팅커링스쿨은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보면서 아이들이 공구를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여름 캠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근거지로 현재는 6살부터 고등학생까지 대상으로 보통 여름방학이나 주말 등 학교 외 시간을 활용해 운영되고 있다. 교사는 안전수칙과 공구 사용법을 알려줄 뿐이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실제로 망치, 드릴, 전기톱 등 다양한 도구들을 직접 사용해보면서 해결하는 것이 학교의 기본방침이다. 


물론, 과정 중에 멍이 들거나 찔리고 긁히고 피 흘리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아이들이 허용된 위험들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는 게 팅커링스쿨의 신념이다. 팅커링스쿨은 미국의 아동 보호 정책이 어이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에서 출발했다. 


즉,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범위를 필요 이상 좁히는 분위기가 아이들이 뭔가 배울 자연스러운 기회를 박탈시킨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어디서든 기꺼이 가장 위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마는데, 이때 어른이 해야 할 것은 하지마라 혹은 가만있으라는 지시가 아니다. 아이에게 적절한 이유와 원리를 인지시킨 후에, 상황을 제어하고 스스로 조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기꺼이 내버려 두는 것이다. 


놀이가 교육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아마 그때는 보호자 없이도 혼자 밖에 잘만 나갔을 것이다. 나가기만 하면 늘 친구를 만났던 것 같은데, 사실 그건 모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졌기 때문이다. 모래밭은 바닥에 선 하나 긋지 않았어도 소꿉놀이를 할 때면 신발장, 부엌, 침실 따위로 나누어졌고, 친구와 이야기를 지어내는 대로 그곳에서 해야 하는 규칙이 생겨났다. 


매일 흙을 빚고 함정을 판 덕분에 손톱 밑은 항상 검었다. 누가 놀다가 다치면 같이 걱정해주거나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공간 지각, 인간관계, 역할과 질서 등 기초적인 행동 규범이 모두 놀이터에 있었고 나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놀면서 모두 익혔다. 제약 없는 놀이야말로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있어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그 놀이경험이 집약된 현장이 바로 놀이터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놀이터는 더이상 아이들의 욕구를 대충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도시는 공간을 점점 더 밀도 높게 사용해야 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한층 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바뀌길 바라는 것은 시설로서의 놀이터만은 아닐 것이다. 학원과 숙제에 매여 있어야 하는 시간과 아이들이 맘껏 놀도록 놓아주지 못하는 불안한 부모의 마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늘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변함이 없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이들을 옥죄는 시대와 주변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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