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 북 페어, UNLIMITED EDITION (UE) 


UNLIMITED EDITION (UE)

Seoul Art Book Fair


예술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거나 꼭 가봤을 행사가 있다. 작은 독립출판물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예술 시장이자, 창작과 예술의 현 지점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행사. 2009년에 시작된 서울 아트북페어는 ‘UNLIMITED EDITION 10’라는 타이틀로 올해 10번째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1인 혹은 소규모 그룹이 기획부터 제작, 인쇄, 제본을 모두 도맡는 자가출판 형식의 독립출판은 이윤 창출보다는 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UNLIMITED EDITION(언리미티드 에디션, 이하 UE)은 일 년에 한 번, 독립출판 제작자들이 자신들의 출판물을 들고 2~3일의 짧은 기간 동안 소비자와 대면하는 기회이자 시장이다. 물론 찾아오는 사람이 단순 소비자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독립출판과 아트북의 양상 및 창작 예술의 현 위치를 알 수 있는 곳이기에, UE가 열릴 때 즈음이면 일정을 조율해서라도 가려는 예술계 종사자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UE1 Photo : UNLIMITED EDITION]



UE의 시작은 간소하다면 간소했다. 연희동의 독립서점 유어마인드(Your Mind)가 UE의 전체적인 틀을 짜고, 독립출판사 스무 팀 내외가 서교동 인더페이퍼 갤러리 지하에서 첫 UE를 연 것이 2009년이었다. UE1(뒤에 붙는 숫자는 회차를 의미한다) 때 900명에 그쳤던 방문객은 지난해 195팀이 참여한 UE9에서 18,200명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초반에 유어마인드와 참가팀들이 두 팔 걷어 열악한 공간과 집기로나마 판을 마련했다면, 최근에는 일민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 주최를 맡고, 서울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네이버 책문화, Aesop, 산돌구름 등 여러 기관과 브랜드의 후원을 받게 된 것 역시 UE의 성장력을 입증한다.


십여 년의 기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UE의 독립출판 콘텐츠는 무엇일까. 대중을 타깃으로 대형 출판사들이 찍어내는 출판물과는 종이와 잉크라는 형태만 같을 뿐, 그 위에 새겨진 콘텐츠는 판이하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지적 가치, 가치관, 사회 문제를 텍스트로 담아내거나, 내가 좋아하고 누군가도 좋아해 주길 바라는 소소한 무언가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내기도 한다.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책을 도화지 삼아 그래픽, 드로잉, 사진을 새기는 것도 방법이다.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작가’ 외에도 그래픽 디자이너, 미술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건축가, 인디 뮤지션 등 다방면의 예술 종사자를 포함한다. 어쩌면 아트북페어에서 북을 뺀 아트페어라 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이렇듯 윗선에서 내려오는 규제나 제재 없이 온전히 작가의 의도대로 제작되는 독립출판물은 콘텐츠의 경계나 유형을 예상할 수 없다. 대량/추가 발행이 어려운 탓에 출판물에 대한 소장가치 역시 크다. 예술, 개성, 희소성을 가진 독립출판물을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창작가가 UE의 부스에서 자신의 출판물을 직접 홍보하고 질문에 답하는 UE는 기나긴 대기 줄을 감수하고서라도 오고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페어다. 


독특한 콘텐츠를 가졌지만, 독립출판사 특유의 유연치 못한 재정 상황 탓에 기획안에 그치는 경우도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이를 위해 참가팀의 프로젝트를 모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 소개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펀딩에 성공한 프로젝트는 페어 현장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중에는 목표액 미달로 안타깝게 발행이 무산된 프로젝트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타깃 자체가 소수인 데다 적극적인 발행력, 공격적 마케팅을 다루기 어려운 독립출판사들에게 크라우드 펀딩은 기획의 실현이 가능한 중요한 기회다.



UE는 출판물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자의 목소리와 방향을 전달하는 통로를 마련했다. 그중 인기를 끌었던 부대 행사 <포스터 온리>전은 UE 방문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욕망과 잘 맞물린 이벤트라 할 수 있다. 고차원적인 문화예술 교육을 받고 자라오면서 작품에 대한 안목과 취향은 상향되는 반면, 금전적 여력은 해가 갈수록 바닥 치는 밀레니얼 세대는 작품 소유에 대한 욕망을 끊임없이 갖고 있다. <포스터 온리>전은 40여 명의 창작가가 만든 다양한 시각적 취향의 포스터를 판매함으로써, 주머니가 여의찮은 이들이 적은 돈으로 미적 감각과 취향을 온전히 즐기며 욕구를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 한 장의 진품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일반적인 미술작품이 아니라, 몇십 장이건 계속해서 재출력하더라도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포스터는 얇은 종이에 출력된 상태 그 자체로 예술품임을 공고히 한다. 


이 외에도 그해의 주요 제작자, 작업, 활동에 관한 각종 대담, 해외 참가팀이 직접 전해주는 해외 아트북 현황, 업계 종사자들이 UE 현장에서 돋보인 출판물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UE 리뷰, 사전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은 출판계와 예술계 종사자의 갈증을 해소함과 동시에 업계의 내적 원동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사실 해마다 UE의 장소는 바뀌어왔다. 쿤스트할레, 무대륙, NEMO, 일민미술관 등을 거쳐 작년과 올해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으로 정해졌다. 대다수 미디어에서 다뤘듯 페어의 계속된 장소 이동은 금전적인 문제가 크게 기인한 것으로 여겨지며, 때론 불안정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물론 해마다 다른 장소의 지리적 상황과 구조를 고려해 판을 짜고 철수하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자. UE처럼 이미지, 콘텐츠, 지적 가치, 문화, 예술을 다루는 페어의 경우 뚜렷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장소에서 열리는지 또한 페어의 포지셔닝과 아이덴티티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 UE가 열린 장소들은 UE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며,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지금껏 열린 다양한 장소들은 UE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포지셔닝하면서도 각 지역의 ‘잠재적 예술 소비자’들을 자극한다. 여의찮은 금전적 상황을 오히려 영리한 마케팅으로 활용한 예로 해석될 수 있다. 



독립출판물이 소수의 취향을 대변한다는 과거의 말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아트북페어의 성장에서 볼 수 있듯, 독립출판물은 이제 하나의 독보적인 문화로 자리한 채 자신들의 씬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극소수 매니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독립출판의 영역에 관심을 두고 소비하기를 원한다. 그 과정에 있어 서울아트북페어라는 타이틀을 가진 UE는 독립출판업계가 사람들의 관심과 즉흥적인 반응을 흡수하며 성장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하고, 창작가들이 출판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 열릴 UE10은 어떤 모습으로 더 많은 대중을 만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으니, 10월 20일을 위해 미리 시간을 비워두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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