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빛 미니멀리즘의 시대, 분화하는 페스티벌 


무지개빛 미니멀리즘의 시대, 분화하는 페스티벌


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할까? 우리가 무수한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놀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터다. 논다는 것은 그만큼 필수불가결한 행위고, 노는 것 없이는 노동도 존재하기 어렵다. 잘 놀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인생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인간은 놀기 좋아하고, 모여서 노는 것은 더욱 좋아한다. 사람이 모여 노는 행위는 통상적으로 ‘축제’라는 보통명사의 범주로 묶인다. 우리 모두에게 디오니소스의 피가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놀았나?


노는 것의 행위와 의미는 시대적 상황과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왔다. 다만 그 변화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만이 불변일 뿐. 일단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민족이 어떻게 놀았는지부터 살펴보자.


‘동방 예의지국’,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 따위의 수식어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정말 ‘잘’ 놀았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위지(魏志)에 나오는 동이전 예전(東夷傳 濊傳)의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 고대국가 동예에서는 매해 가을 추수철이 되면 무천(舞天) 행사를 열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린 뒤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 


이는 동예의 농경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 사람들은 먹을 것이 풍족한 시기를 맞아 노동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축제에 몰입할 수 있었다. 추수를 기념한 축제는 세계 여러 민족들이 흔히 갖고 있는 풍습이지만, 무천의 경우처럼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우며 노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예에 무천이 있다면 비슷한 시기 부여에는 영고(迎鼓)가 존재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 부여조(夫餘條)의 기록을 살펴보면 부여에서는 섣달(음력 12월)에 사람들이 모여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무천과 달리 영고에서는 수렵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평소 엄격한 국법과 달리 이 시기만큼은 죄수를 석방하는 등 국가 차원의 자비가 베풀어진다. 구성원 간 유대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권력자의 권위 강화를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특기할 사항은 영고의 기간이 기본 석 달 이상이라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00일 가량을 먹고 마시며 노는 축제가 있었던가? 정열의 나라 브라질의 리우 페스티벌이 보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영고는 무려 6배의 기간을 노는 데 투자한다.


[Photo: CNN Travel]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이 같은 축제의 풍습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근면성실’이 최고의 미덕이자 금과옥조가 된 현대 사회에서 무천과 영고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어쩌면 자본주의 때문일 수 있다고 봐요. 모든 게 황금만능주의로 흐르다보니 삶의 즐거움을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자리 잡은 거죠. 사실 아주 예전에는 지금처럼 월급이 아니라 일당이나 주급으로 삯을 줬어요. 일주일을 일하고 100만원을 받았다고 하면 그걸 다 쓸 때까지 일을 나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길거리엔 노는 사람들이 흔했는데, 자본주의가 도래한 이후부터 그들을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죠. 급기야는 사상이 불량한 사람으로 몰아 감옥에 잡아넣고 강제 노역을 시키기도 했어요. 그래서 중세 때보다 더 못 노는 인간형이 바로 자본주의형 인간이 된 거죠.” 

(김경윤·인문학 박사)


[Photo : tripsavvy]


밀레니엄에 싹튼 Rock의 향연, 모두가 열광했던 그때


현대에 들어 노는 문화가 크게 위축된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그 민족성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스케일은 작아졌지만 열정 자체는 질기게 살아남았다. 


시작은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하에 저항의 움직임이 팽창했고, 이는 자유에의 갈망과 맞닿으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록음악이 급격히 소비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깨부술 듯한 강한 사운드,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그렇게 새로운 천년이자 21세기를 목전에 둔 90년대가 찾아왔다. 해외 유명 록 뮤지션들의 음악에 열광하던 세대들은 그들의 연주와 목소리를 눈앞에서 직접 듣고 즐기고자 하는 열망을 분출했고, 99년 그 첫발을 떼게 된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인천광역시 송도에서 이틀간의 공연 일정이 잡혔고 딥 퍼플을 비롯해 드림 시어터,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등 당대의 쟁쟁한 록 뮤지션들이 섭외됐다. 국내 록 매니아들의 기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록 페스티벌의 상징과도 같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야심찬 계획과 엄청난 기대감을 무심한 하늘이 저버렸다. 전에 없던 기록적인 강우가 쏟아지면서 첫날 공연 팀의 절반 이상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둘째 날은 아예 취소되며 한 팀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6년 동안 명맥이 끊겼다가 2006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부활에 성공했다. 제이슨 므라즈, 블랙 아이드 피스, 스노우 패트롤 등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기로 하면서 다시금 불이 붙었다. 


밸리 록 페스티벌


[Photo : 밸리록페스티벌]


펜타포트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록 페스티벌은 ‘밸리 록 페스티벌’이다. 펜타포트의 뮤지션 섭외를 맡았던 ‘옐로나인’이 2009년 독립해 만든 페스티벌로, 경기도 이천시 지산 리조트에서 처음 열렸다. 그 유명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시작이다.


2009년 1회부터 오아시스, 위저, 베이스먼트 잭스 등 화려한 라인업을 선보였다. 여기에 크라잉넛, 델리 스파이스,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국내 유명 뮤지션들도 대거 참여하면서 단 한 번의 개최로 엄청난 존재감을 떨쳤다.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우린 어떻게 바뀌었나


하지만 펜타포트는 2009년 메인 스폰서와 결별하게 되면서 재정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해외 유수 뮤지션들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 파급력 자체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다만 ‘국내 1호 록 페스티벌’이라는 상징성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가격으로 고정적인 참여 인원은 유지되고 있다.


밸리 록 페스티벌 역시 지산에서 경기도 안산, 다시 지산으로 장소를 오가며 혼선을 빚었고, 폭행 등 갖가지 사건이 잇따르면서 권위가 상당히 추락하고 말았다. 이 결과 올해는 개최 자체가 불발됐다.


이처럼 ‘1세대’ 록 페스티벌이 보여준 흥망성쇠의 사이클은 그리 길지 못했다. 이는 상당히 다양한 이유와 배경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은 개인주의의 고도화에서 비롯됐다. 우리 생활의 중심이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옮아감에 따라 수요와 욕구가 다양해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추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온라인 문화의 변화 '커뮤니티에서 개인으로'

PC통신과 인터넷 보급 초기에는 소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개인들은 각자의 ID를 갖고 있었지만 각각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특정 이슈나 흥미가 같은 이들이 모여 규모를 갖춰야 파급력이 생겨나는 시기였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담론의 장은 다음(daum) 같은 포털에서 제공하는 ‘카페’와 디시 인사이드 등의 전문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하지만 싸이월드의 등장과 함께 ‘미니홈피’라는 개인 공간이 마련됐다. 교류와 소통은 변함없이 이뤄졌지만 무대가 ‘광장’에서 ‘골방’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장기집권’은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과거 넓은 공간에 모여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이제 SNS와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소비하게 됐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뮤지션의 음악을 듣기 위해 스탠딩 무대로 달려가는 대신 방 안에서 터치 몇 번으로 해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도래하다

그렇게 다양해진 수요는 필연적으로 공급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수요와 공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시장이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록 페스티벌이 몰락에 가까운 하락을 겪으며 내준 공간에는 EDM을 비롯해 아이돌 뮤직, 영화음악, 언플러그드 뮤직 등 장르음악들이 대거 들어섰다. 


[Photo : ULTRA KOREA]


그 중 선두주자는 EDM 관련 페스티벌이다.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과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벤츠 스타디움’, ‘스펙트럼 댄스뮤직 페스티벌’, ‘월드 클럽 돔’ 등이 경쟁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들은 수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을 빠르게 잠식해나가며 록 페스티벌의 흔적마저 지우는 모습이다.


[Photo : Kandy Kandy]


10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아이돌 뮤직의 경우 ‘코리아뮤직 페스티벌’과 ‘아이돌콘’을 비롯해 크고 작은 무대에 아이돌 그룹이 오르고 있다. 2005년부터 열리고 있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꾸준히 인지도를 높이며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전자음을 배제한 언플러그드 뮤직 역시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섬’ 등을 통해 매니아층을 넓혀가고 있다.


다양성과 콜라보레이션…‘생존의 법칙’ 찾아낸 페스티벌


이처럼 장르음악에 대한 대중의 선호가 이어지면서 장르간 융합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앞서 거론한 ‘밸리 록 페스티벌’이 ‘지산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며 예술과의 접촉면을 늘리려 시도했던 것이 그 시초다.


음악에 연극·무용·영상·시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공연을 내세운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전국의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 등도 음악과 예술을 접목한 대표적인 축제다.


해외 사례도 있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역시 기존의 록 페스티벌이 대중의 외면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다양한 문화 행사를 추가하면서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페스티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도 기민하다. 위에서 열거한 페스티벌은 대부분 특정 지자체가 주최 혹은 주관을 맡고 있다. 페스티벌의 성과에 따라 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고 홍보 효과가 출렁이는 시대다. 이 때문에 전반적으로 문화예술 예산이 늘어나고 집행 자율성이 커지는 추세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중의 수요가 넓어지고 욕구가 커지는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첨단 기술 역시 발맞춰 발전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다만 이 같은 다양성의 시대가 ‘더 재미있게 노는 삶’을 보장하는지 여부는 아직까진 회의적이다. 개별 문화가 건강하게 공존하는 데서 오는 다양함이라기보단 단순히 유행의 주기가 짧아짐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서다. 다시 말해, 문화를 향유하는 대신 소비해버리고 금세 다른 것을 찾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뷔페에서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신이 꼽는 맛집 리스트에 뷔페를 올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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