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마을을 꿈꾸며: 서울의 역사를 담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 


건강한 마을을 꿈꾸며: 서울의 역사를 담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앞마당. 옛건물들을 활용한 전시관들이 한눈에 보인다

[Photo : J]



돈의문 마을에서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길목. 조그마한 전시공간들이 눈에 띈다. 얼핏 보기에도 예술색이 짙은 전시들을 살펴보니 아무 맥락 없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전시 명을 인터넷에 검색해봤지만 별 소득이 없다. 뒤늦게 이곳이 서울의 근현대 역사를 품은 돈의문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돈의문은 서울을 감싸는 4개의 문 중 하나인 서대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양에 도착한 사람들의 설렘을 맞아주던 거대한 출입구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문 주변에 형성된 돈의문 마을은 그 자리에 남아 서울 서쪽의 시간을 고스란히 기록해왔다. 좁디좁은 골목을 메우던 한옥과 일본식 주택들, 1960년대부터 신문사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먹자골목, 지금은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여관, 그리고 이젠 아파트 단지 이름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 ‘마을.’ 돈의문 마을이 보관한 추억은 묵직한 따스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짐을 덜어주었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그 덕분에 방문객들은 서울의 옛 모습을 애정할 수 있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골목

[Photo : J]


2016년 6월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재명명했다. 근린공원이 될 뻔한 역사의 보고를 무분별한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으로부터 지키려 한 서울시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기 전 진행된 재개발 과정에서 마을의 먹자골목을 지키던 원주민 대부분이 퇴거당하고 4~5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던 상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랜 세월을 기록해온 주택들마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신자재로 다시 지어지면서 시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2017년 8월 우여곡절 끝에 마을이 완공되었고 시민들의 비판을 받아들인 서울시는 여전히 마을을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오픈 1년을 앞둔 지금, 대형 트렌드인 젠트리피케이션을 역행하며 하나의 마을을 소중히 일구려 노력한 주최 측의 의도는 아직 살아있을까. 새로운 입주자들이 만들어낸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여전히 ‘마을’일까?



공공전시관: 새로운 소통의 장


 

기억의 기록방식을 붓터치, 재봉틀의 수와 소리로 표현하는 아티스트의 팜플렛 

[Photo : J]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자봉지가 세련된 파우치로 재탄생한다

[Photo : J]


서대문역과 강북삼성병원을 지나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투명한 유리 벽으로 된 2평 남짓한 전시관들인데 각 전시의 메시지가 강렬해서 구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이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마중물이다. 


공공전시관은 상설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2~3주 간격으로 아티스트가 바뀐다. 다큐멘터리 사진, 에코 디자인 작품, 라이브 공연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이 한창인데 대부분의 전시는 대중적이고 트렌디하지 않았다. 대신 추상적이고 파격적인 전시들이 주를 이뤘는데 개인의 감정과 사회의 이슈를 탐구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처음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스쳤던 전시는 예술 활동을 하는데 돈이 없어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6월 중순까지 진행됐던 ‘스며-들다.’라는 전시는 기억의 기록방식을 재봉틀의 수와 소리로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재봉틀에 앉아 작업하는 순간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자봉지를 파우치로 탈바꿈한 전시도 있다. 각 작품에 Trash, Treasure라는 영어단어를 배합했는데, 우리가 천하게 생각하는 것과 귀하게 여겨 탐하는 것이 결국 한 끗 차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목 제품이 가득한 Fake Carpenter’s Coffee는 신개념 창작공간이다

[Photo : J]


전시관 중 가장 끝에 위치한 Fake Carpenter’s Coffee도 주목할 만한 곳이다. 전시관 및 가게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가짜 목수들이 버려진 가구를 업사이클링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커피를 즐기며 새 생명을 얻은 가구를 구경할 수 있고 투박하지만 세련된 원목 도마를 집으로 데려올 수도 있다. 가짜 목수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체험 수업이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Photo : J]

  

보는 사람이 사유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Photo : J]


대로변을 따라 이어진 공공전시관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온 서대문여관이 있다. 이젠 ‘서대문여관아트페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작은 방, 부족한 지원, 제한된 자원과 환경이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의 온기를 나누고 앞으로를 도모하는 아트페어”를 목표로 올해 처음 시작되었다. 1평 남짓한 좁고 낡은 여관방과 자신들의 처지에 동질감을 느낀 2명의 아티스트들이 구상한 이 아트페어는 현재 예술디자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세븐픽쳐스’에서 운영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7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여관방마다 작가의 특색있는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엄마와 아이가 그림책을 함께 볼 수 있는 ‘두근두근 그림책 연구소,’ 식문화와 인문학 콘텐츠를 연구하고 다양한 강좌를 개최하는 마을방송국 ㈜요리인류 (이욱정 PD님이 대표로 계신다.) 등이 마을을 산책하는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전시는 박물관의 개념을 확장하고 돈의문 마을에 새로운 정체성을 불어넣었다.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이 만나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곳으로 그 쓰임이 변모한 것이다. 전시 기회를 얻지 못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예술가들은 역사적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얻는다. 관람객들은 단순히 미적으로 아름답고 SNS에 올려 조회 수를 높일 수 있는 작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성을 받아들이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들을 가운데 놓고 예술가와 관람객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 이 또한 21세기에 실존 가능한 마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릴 스친다.



돈의문 전시관: 돈의문의 역사를 아카이빙하다.



[Photo : J]


공공전시관을 지나 마을의 앞마당에 도착하면 3개의 전시관이 있다. 각 전시관의 명칭은 ‘아지오,’ ‘한정,’ ‘유적전시실’이다. 

돈의문 마을의 역사가 사라진 공간이란 비판을 받은 후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주요 전시는 모두 마을과 그 일대의 이야기로 꾸려졌다. 전시관들 또한 일전에 유명했던 식당인 ‘카페 아지오’와 ‘한정’의 건물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들어서자마자 레스토랑 벽면을 장식했을 것 같은 예쁜 타일이 붙어있는 아지오 전시관에선 조선 시대와 개항 이후 돈의문 일대의 역사를 다룬다. 전시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을 그린 경기감영도를 4분 50초 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 풍속도에는 돈의문 바깥에 살았던 평민들의 삶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전시관에 있는 사료들을 통해 조선 시대부터 돈의문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의문이 경기 일대를 관찰하는 정부 기관인 경기감영 근처에 있어 군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이었으며 조선 시대 가장 중요한 군사도로 및 외교도로였던 의주로가 연결되어 있었기에 교역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Photo : J]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동안 돈의문은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이유로 철거된다. 일본 태자의 방한을 앞두고 철거된 것이 첫 번째 이유였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전차가 들어서면서 급증한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돈의문과 함께 사라진 경희궁의 흔적은 유적전시실에 보존되어 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터일 뿐이지만 건축가들은 이 또한 소중히 여겨 하나의 전시실에 보존하고 있었다.


아지오 전시관 2층에는 최근 사라진 교남동과 새문안지대, 즉 최근까지 있었던 돈의문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뉴타운 건설을 위한 철거가 시작되던 2013년, 한 건축사무소는 사라질 동네의 모습이 안타까워 돈의문 근방에 있는 마을 중 교남동과 새문안동네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철거되는 속도가 조사 속도를 훨씬 앞서던 중 서울시가 조사기록작업과 가옥들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고, 결국 현존하는 건물들을 복원재생하는 프로젝트로 목적과 방침이 바뀌게 된다.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 건축가들의 인터뷰가 담긴 짧은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들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까지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현재 돈의문박물관 마을에선 복원된 한옥, 양옥, 일식가옥 등 총 3개의 주택 양식을 볼 수 있다.


아지오 전시관의 전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돈의문 마을의 시작과 철거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주는 유익한 전시였다. 또한 전시 내용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희소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도록을 찾았지만 2019년이 되어서야 만나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들린 전시관은 그 당시 유명했던 한정식집 ‘한정’의 이름을 딴 곳. 돈의문 마을 중 새문안 동네로 불리웠던 곳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최 측에서 2016년 공사를 시작한 후 2017년까지 매일 한 장씩 촬영하며 모은 사진들로, 보는 순간 동네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찍은 사진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진가의 따듯한 시선과 애틋한 시간의 주름을 간직한 새문안 마을의 흔적들이 어우러져 뭉클했다. 


2층에선 과외방 밀집지에서 직장인을 위한 먹자골목으로 변한 돈의문 마을의 역사와 각 음식점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좁은 골목과 낮은 집 사진을 보시며 옛 시절을 추억하는 어르신 부부의 말소리가 중간중간 들려왔다. 추억은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발전소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살던 옛 주공아파트의 놀이터, 담장 옆 개나리, 초등학교 가는 길에 있던 거대한 공영주차장 등 익숙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면, 그리고 원할 때마다 그곳에 돌아갈 수 있다면 바쁜 하루의 끝이 깜빡거릴 때쯤 순간의 평안을 느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돈의문 전시관의 전시들은 소화할 양도 많고 쉽게 읽고 지나치기엔 꼼꼼했다. 그만큼 누군가가 이 공간을 아꼈다는 것을 방증하는 자료들이었다. 이 전시관을 통해 사회의 필요악처럼 자리 잡은 젠트리피케이션 및 급진적 개발의 폐해가 알려지고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었으면 한다.


마을 구성원 모두가 이곳을 사랑할 수 있도록



[Photo : J]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카페 아지오’가 전시관이 아닌 레스토랑이었다면 어땠을까.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처럼 비좁은 골목이 이곳의 특색으로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선 유실된 옛 기억들이 알음알음 모여 마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새터전을 찾아온 예술가들의 자유한 목소리들이 추억에 덧입혀져 붐비는 서울 속 하나의 공명한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영영 사라질 뻔했던 장소에 구와 신이 어우러져 새로운 마을이 시작된 것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완성되지 않았다. 들어올 사람들, 돌아올 인연들, 마을을 새로 발견할 여행자들이 아직 많다. 마을을 나서는 길. 나와 나이 또래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카메라를 들고 들어온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 나 오늘 여기 처음 와봤어!”라고 이야기하는 발걸음이 신이 났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방문한 부모님들의 표정이 한결 맑다.


이 마을을 지키려 노력한 사람들의 손길이 아직 닿아 있기에 지난 역사가 한순간에 쉽게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발현될 돈의문 마을만의 특색이 복원재생된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머무를 새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을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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