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다 


서점,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은 고루한 아이템이었다. 책 읽는 사람은 박식해 보였지만 쿨해 보이지는 않았고, 대중매체 속 책을 좋아하는 캐릭터는 뿔테 안경을 낀 모범생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책이 라이프스타일의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홍대의 핫한 카페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킨포크>나 <씨리얼>과 같은 잡지를 소품처럼 비치하고, 인스타그램에서는 ‘#북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로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계정이 인기를 얻는다. ‘You are what you read’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선택한다.


모노클 숍

[Photo : 모노클 홈페이지]

책이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등장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몇몇 서점이 개인의 취향을 반영해 공간과 서가를 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자신이 관심 있는 책을 직접 골라 책방에 들이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서점에서 벌인다. 커피와 맥주를 팔고, 전시를 진행하며, 작가와 만나는 공간이 된 서점은 어느새 복합문화공간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책 판매로만 수익을 내기 어려웠던 서점들은 카페나 갤러리의 기능을 겸하는 서점의 복합문화공간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독립출판을 읽거나 독립서점에 방문하는 일이 ‘힙’한 행위로 떠오르고 책과 관련한 라이프스타일이 인기를 얻자 서점은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 양상을 보인다. 대형서점들은 책을 판매하는 장소보다는 책을 편히 읽고 갈 수 있는 장소로 공간을 리모델링하면서 편의시설과 공연 시설을 서점과 한 공간에 두었다. 큰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안에 서점이 주요한 포지션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전혀 다른 업종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책공간이 만들어졌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책을 파는 사람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지금, 서점들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고 있을까. 국내외에서 책을 중심으로 이벤트를 만들어 나가며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주목할만한 서점 네 곳을 소개한다.



A.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恵文社 一乗寺店)


교토의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은 서점과 갤러리, 잡화점이 함께 있는 편집 서점이다.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손꼽히는 서점이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0곳 중 한 곳으로 소개했다. 홍대 앞 동네서점인 땡스북스는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을 롤모델 삼아 오픈했다고 알려져 있다.


[Photo :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 홈페이지]


2004년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 점장으로 취임했고, 현재는 서점 세이코샤(誠光社)의 점주인 호리베 아쓰시(堀部篤史)*는 자신의 저서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요즘 ‘내가 할 일은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를 잡지처럼 편집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책이 중심에 설 수 있다면 어떤 일에 도전하더라도 게이분샤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은 서점과 대관 갤러리 앙페르(Enfer),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한 생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스트셀러보다는 이치조지 점만의 히트 상품으로 무장한 서점에서는 손으로 제본한 도서를 유리 서가에 전시하는 ‘서재 갤러리’를 꾸미는 등 다양한 서가 구성 방식을 시도했다. 책과 관련한 전시를 진행하거나 물품을 판매했던 앙페르는 호리베 아쓰시가 점장으로 있을 당시 책과 매출 사이의 경계에 머물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생활관에서는 ‘가게’라는 공간을 빌려 책의 세계관을 표현했는데, 일례로 『교토의 빵집』이라는 책이 발간되자 그 책에 나오는 빵을 모아 책과 함께 생활관에서 판매했다.


[Photo :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 홈페이지]


서점과 갤러리, 잡화점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 중세는 늘 책이 있었다. 책보다 잡화가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우선순위가 전도될 때 서점의 매력은 사라지고 손님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펼치는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토에 방문한다면 꼭 한 번 들르고 싶은 서점으로 꼽힌다.


*호리베 아쓰시는 2015년 게이분샤를 나와 자신의 서점 세이코샤를 오픈했다.


게이분샤 이치조지점

주소 : 京都市左京区一乗寺払殿町10

영업시간 : 10:00~21:00 (연중무휴, 설날 제외)

홈페이지 : http://www.keibunsha-store.com/


B. 츠타야 서점(Tsutaya Books)


[Photo : 츠타야 T-site 홈페이지]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합니다.”


츠타야는 고객 가치와 라이프스타일 제안에 중점을 두고 도서와 CD, DVD를 판매하고 빌려주는 서점이다. 책과 음악, 영화를 제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로 바라보는 마스다 무네아키(츠타야를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CEO)는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서점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생각은 서가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인 장르 구분을 따르지 않는 츠타야 서점은 여행과 음식, 디자인과 건축 등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고객의 입장에 맞게 책장을 편집했다. 유럽을 여행하는 책과 함께 그곳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음반이나 DVD, 책, 그리고 여행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련된 전문가를 함께 두는 방식이다.


[Photo : 츠타야 T-site 홈페이지]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 T-site에서는 ‘안진(Anjin)’이라는 라운지 바를 운영하는데 손님들은 이곳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과월호 잡지를 자유롭게 꺼내볼 수 있다. 도쿄 후타카타마가와의 ‘츠타야 가덴’에서는 가전제품과 책을 결합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또, 하코다테 츠타야에서는 연간 1천 건 정도 열리는 강좌와 워크숍을 위한 공간을 무료로 개방한다. 손님들은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츠타야 서점을 통해 경험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서점이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한 손님들은 그렇지 않은 손님에 비해 약 3배 이상 츠타야를 더 자주 방문하며, 책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최근, 츠타야는 코워킹(co-working)과 코리빙(co-living)을 지향하는 ‘츠타야 북 아파트먼트(TSUTAYA BOOK APARTMENT)’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북바이북 * 하나은행 / 까페콤마(문학동네) *하이마트

최근 한국에서도 츠타야 서점을 롤모델로 삼은 매장들이 등장했다. 롯데하이마트는 문학동네와 협업해 가전제품과 책을 함께 판매하는 ‘옴니스토어’를 오픈했고, KEB하나은행은 동네서점 북바이북과 함께 은행과 서점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손님들에게 책을 판매하기보다 손님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를 만들자 책을 사는 사람이 늘었다.”는 말처럼 츠타야 서점의 비즈니스 모델은 서점과 기업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며 서점의 복합문화공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매거진 B 37th Issue : TSUTAYA


다이칸야마 T-site

주소 : 150-0033 Tokyo, 渋谷区Sarugakucho, 17−5

영업 시간 : 7:00 ~ (익일) 2:00

홈페이지 : http://real.tsite.jp/daikanyama/english/



C.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


[Photo : 아난티 코브 홈페이지]


이터널 저니는 부산 아난티 코브 내에 위치한 서점이다. 아난티 코브는 오로지 휴식을 목표로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레스토랑, 셀렉트숍, 온천, 산책로 등을 한 곳에 모은 복합 휴양단지다. 한 매체가 이곳을 ‘휴식의 편집 매장’이라 부른것처럼, 아난티 코브 내에 있는 모든 매장은 손님에게 휴식을 판매한다. 이터널 저니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며, 아난티 코브의 정체성을 잘 구현한 공간이다.


‘영원한 항해’라는 의미는 서점 이터널 저니가 지향하는 방향성이다. 500평에 육박하는 서점에서 2만 여 권의 책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과 감성,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이터널 저니를 관리하는 이호진 수석 큐레이터는 “막연한 취향이나 관심사에 따라 헤매기 십상인 서점이 아닌,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데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하는 것이 이터널 저니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Photo : 아난티 코브 홈페이지]


휴식을 판매하는 서점에는 검색 시스템이 없다. 실용성과 편의성에 기반해 책을 분류하고 찾을 수 있는 도구를 없앤

것이다. 대신 널찍한 공간과 서가에 책을 여유롭게 꽂고, 책등이 아닌 책 표지를 전면에 보이게 배치해 서가를 흐르듯

이 지나가는 사람도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목적성을 가지고 책을 선택하기보다, 천천히 서가를

둘러보게 함으로써 그 과정을 휴식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 원서나 한정판 도서, 책 자체가 예술품이 되는 디자이너 북을 찾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공간이 있는가 하면, 부산 지역 작가나 디자이너를 위한 섹션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또, 이터널 저니만의 시각으로 다양한 오브제를 발굴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와인 기행, 심야 책

방, 아트 토크 등 서점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음악과 차

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아난티 코브라는 거대한 복합문화공간이 가지고 있는 핵심 가치를 서점 안에 잘 녹여내고, 또 서점을 또 하나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면서 이터널 저니는 머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는 장소가 되었다. 매일 수 개의 동네서점이 생

기고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터널 저니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터널 저니

주소 :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268-31

영업 시간 : 평일 10:00~21:00, 주말 09:00~21:00

홈페이지 : http://theananti.com/kr/cove/



D. 방콕 오픈하우스(Bangkok Open house)


[Photo : dezeen]


방콕에도 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복합문화공간이 생겼다. 센트럴 엠버시(Central Embassy) 쇼핑몰 6층에 위치한

오픈 하우스(Open house)다. 사방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에 소파가 놓여 있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오

픈 하우스의 모습은 아래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klein dytham blends books with work and play within AL_A's central embassy in bangkok from designboom on Vimeo.



[Photo : dezeen]


복합 리빙 스페이스를 지향하는 오픈 하우스에는 레스토랑과 서점, 디자인숍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등 모든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만들어진 완벽한 공간인 셈이다.


이곳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장인의 요리를 맛보고, 업무 공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끝없는 책에 파묻혀 영감을 얻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오픈 하우스가 단지 하나의 가게나 식당이 아닌, ‘거주하는’ 공간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곳을 찾는 개개인이 창의적인 영역을 공유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궁극적인 코리빙(coliving) 스페이스를 추구하는 오픈 하우스는 방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서점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오픈 하우스

주소 : Level 6, Central Embassy, 1031 Ploenchit Road, Pathumwan, Bangkok

영업 시간 : 월~목 10:00~22:00 / 금~일 10:00~24:00

홈페이지 : http://www.centralembassy.com/anchor/open-house/



서점의 본질은 '책을 파는 공간'이다


여기서는 네 곳의 서점만을 소개했지만, 아마 글을 읽다 각자 머릿속으로 떠올린 공간들이 있을 것이다.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이나 도산공원 퀸마마마켓 내의 PARRK,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서점을 하나의 문화기획사처럼 운영해 나가는 다양한 동네서점 등 서점과 복합문화공간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호리베 아쓰시의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의미한 수익이 나지는 않지만 서점의 본질인 책과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잡화 혹은 이벤트 중에서 어떤 것에 더 중점을 둘 것인가?


츠타야 서점의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를 롤모델로 삼는 책공간이 늘어났다. 서점들은 취향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해 서가를 줄이면서 다양한 편의시설을 서점 안으로 끌어들여 고객들의 체류 시간을 높였다. <매거진 B>의 츠타야 호를 진행한 박은성 디렉터는 츠타야가 ‘책의 패션화’를 심화시켰다고 말한다.


반면, 이런 유행에도 불구하고 더욱 책에 집중하는 서점도 있다. 오히려 서가를 늘리고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점의 본질이 ‘책을 파는 공간’이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책을 근간에 두지 않는 이벤트를 계속해서 진행하다 보면, 어느 날 서점이 아닌 잡화점이나 문화공간으로 변모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FromA 관련기사


동네 책방,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다.


스토리와 신뢰, 영감을 파는 해외 독립서점 세 곳

책 읽고 싶게 만드는 세계 공공도서관 5선


동네서점, 지역 문화공간으로 재도약하다


헌책방 거리에도 봄이 올까?


2017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다녀오다


서울 아트 북 페어, UNLIMITED EDITION (UE)


▶참고 자료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호리베 아쓰시 저, 민음사


퇴사 준비생의 도쿄, 이동진, 더 퀘스트


이동진 “퇴사에 필요한 건 담력 아닌 실력”

http://ch.yes24.com/Article/View/33895


해외 동향 ㅣ 일본 츠타야의 진화모델

http://retailing.co.kr/article/global.php?CN=&mode=view&art_idx=2744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 책은 곧 여행이다. 힐튼 부산과 이터널 저니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668444&memberNo=34550514&vType=VERTICAL


방콕: 책과 어우러진 식당가 ‘오픈 하우스’

https://brunch.co.kr/@zagni/155


서점의 미래는

http://esquirekorea.co.kr/taste/%EC%84%9C%EC%A0%90%EC%9D%98-%EB%AF%B8%EB%9E%98%EB%8A%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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