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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재개관, 삼일로 창고 극장이 지나온 길 그리고 나아갈 길

닫혔던 창고의 문이 다시 열리다

삼일로 창고 극장이 지나온 길 그리고 나아갈 길


지난 2018년 6월 22일 삼일로 창고극장이 오픈 이후 7번째 재개관을 했다. 참 오랫동안 익숙하게 오가며 걸었던 명동 끝자락의 언덕배기에 위치한 작은 건물. 이번 재개관을 맞아 붉은색 벽돌로 새 단장을 한 삼일로 창고극장이 과연 어떤 곳이었길래 7번이나 폐관과 개관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이번 글에서는 삼일로 창고극장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의미, 재개관 기념공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삼일로 창고극장 티져영상


출처: 남산예술센터 공식 유튜브


삼일로 창고극장과 명동 연극 전성시대

지금은 쇼핑의 메카로 알려져 있는 명동, 하지만 1970년~1980년대만 하더라도 명동은 대학로 연극 붐이 일기 전 연극인들의 소극장 운동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일로 창고극장이 있었다. 


2018년 6월 7번째 재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 외관


[Photo : 남산예술센터 x 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삼일로 창고극장은 1975년 전신인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 대표가 옛 삼일고가도로 남단 주택지대인 삼일로 성모병원 뒤 2층 가정집을 구입하여 한국 최초의 창고형 극장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명동에 ‘카페 떼아뜨르’ 라는 곳이 있었지만 카페 영업과 공연을 겸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극장의 형식을 갖춘 민간 소극장은 삼일로 창고극장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삼일로 창고극장의 2008년 당시 외관


[Photo : 삼일로 창고극장 네이버카페]


165㎡ (약 50평) 남짓한 100석 규모의 이 극장은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극장과 함께 연극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구심지 역할을 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에 연극인들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연극인과 관객 모두에게 문화해방구를 만들어냈다. 배우 추성웅을 널리 알리며 모노 드라마의 붐을 일으켰던 ‘빠알간 피터의 고백’, 연출가 오태석의 ‘고도를 기다리며’ 그리고 ‘티타임의 정사’, ‘유리동물원’ 과 같은 당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연극들이 바로 이곳에서 초연무대를 올렸다. 이 뿐 아니라 한국 연극계의 대들보 같은 박정자, 전무송, 윤여정, 유인촌, 윤석화 등 수 많은 배우들이 이 곳에서 데뷔 또는 활동무대를 가졌다. 작품과 더불어 초기 아레나 스테이지의 모습을 갖추어 관객이 사방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 유형은 향후 극장 무대 미학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일로 창고극장에는 이러한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픈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극장은 재정난으로 폐관했다. 이듬해 새 이름으로 다시 오픈하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3번이나 이름을 바꾸고 폐관과 개관을 거듭하며 44년 동안 근근히 명맥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연극계 혹은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삼일로 창고극장 연혁]

- 1958년 현 건물 준공

- 1975년 05월 방태수씨가 ‘에저또 창고극장’으로 개관

- 1976년 04월 유석진씨가 인수하여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재개관

- 1983년 05월 추송웅씨가 인수하여 ‘떼아뜨르 추 삼일로’로 재개관

- 1986년 08월 윤여성씨가 인수하여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재 재관

- 1990년 ‘삼일로 창고극장’ 폐관, 이후 기존 건물 김치공장, 인쇄소 등으로 사용됨

- 1998년 김대현씨가 인수하여 ‘명동 창고극장’으로 재개관(대표 김대현)

- 2004년 정대경씨가 인수하여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재개관(대표 정대경)

- 2018년 서울문화재단이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재개관


쇠퇴와 몰락

1980년대 대학로 소극장들이 생기면서 연극의 명동시대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대학로 연극시대가 열리며 예술인들의 성지였던 명동은 도시재개발과 함께 상업지역으로 변모하기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삼일로 창고극장 역시 연극의 중심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상업화 바람으로 명동에서 하나 둘 소극장이 사라지면서 삼일로 창고극장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몇 차례 연극인들의 후원 모금과 기업지원금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2011년에는 태광그룹의 후원을 받기도 하고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회성 링거주사 형태의 지원만으로 삼일로 창고극장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3년 10월부터는 기업의 지원마저 끊겼고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서울시로부터의 지원금은 1원도 없었다. 연극을 하나 올리면 수 천 만원의 적자를 지게 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극장을 존속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 극장주는 결국 2015년 10월 폐관하기로 결정했다. 


7번째 재개관 그리고 재개관 작품공연

그러던 2017년 서울시는 삼일로 창고극장이 지니는 연극사적인 가치를 다시 이어보고자 재개관 준비를 하게 된다. 서울시는 건물주로부터 삼일로 창고극장을 월세로 10년간 장기 임차하여 2년마다 재계약하는 형식으로 합의를 마쳤다. 운영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이 삼일로 창고극장을 위임받아 이들이 운영하는 남산예술센터와 통합하여 하기로 했다. 오픈 준비는 건물주가 극장 전반의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필요한 시설물 인테리어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삼일로 창고극장 내 문구



향후 극장은 서울시가 예산과 행정을 지원하고 극장 실제 프로그래밍은 30~40대 연극인들로 이루어진 운영위원회가 맡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1기 운영위원회는 총 6명의 위원들로 ▲박지선 도트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당연직) ▲이경성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전윤환 혜화동1번지 극장장 ▲정진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 등으로 구성되어 현재 운영을 시작했으며 이 중 우연 극장장의 기획에 따라 재개관 작품은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오마주한 ‘빨간 피터들’로 정하게 되었다.


4인의 예술가가 만드는 모노 드라마 ‘빨간 피터들’

‘빠알간 피터의 고백’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을 원작으로 한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 원숭이가 아프리카 황금해안에서 사냥 탐험대의 총을 맞고 생포된다. 원숭이는 빠져나갈 구멍이 아무데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인간 세계에 적응하기로 결심하여 인간의 말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다. 이 원숭이는 차츰 본성을 잃어가나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된 것도 아닌 ‘인간화’된 원숭이로 변한다. 밀림에서 잡혀와 서커스의 스타가 된 빨간 원숭이가 학술원 회원 앞에서 그가 ‘인간화’되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하고 좌절을 맛보았는지 보고한다. 그리고 문명사회와 인간세계에 대한 환멸을 쏟아낸다.


연극 ‘빠알간 피터의 고백’의 배우 추송웅의 모습



탤런트 추상미의 아버지로 알려진 배우 추송웅은 당시 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모노드라마로 각색한 ‘빠알간 피터의 고백’을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은 1977년 초연 이후 4개월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하였으며 8년간 총 482회에 거쳐 15만2천여 명의 관객이 찾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신정권의 몰락 이후 폭력의 시대를 침묵으로 견뎌야 했던 시민들은 ‘빨간 원숭이’가 고매한 인간들을 향해 내뱉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원숭이를 우스꽝스러운 독재자로 혹은 어리석은 자기 자신으로 접목시키며 울화를 풀었다. ‘빠알간 피터의 고백’은 점차 시민과 지식인, 대학생들에게는 얼음장에 뚫린 숨구멍 같은 연극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삼일로 창고극장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작품 ‘빠알간 피터의 고백’ 은 2018년 극장 재개관에 맞추어 4인의 예술가가 이야기하는 ‘빨간 피터들’ 로 다시 관객을 찾았다. 


 삼일로 창고극장에 세워진 재개관 공연 ‘빨간 피터들’ 안내배너



‘빨간 피터들’ 은 ‘빠알간 피터의 고백’의 원숭이 이야기를 4명의 연출가/안무가(신유청, 김수희, 김보람, 적극)가 4명의 배우/퍼포머(하준호, 강말금, 김보람, 최용진)과 함께 펼치는 네 편의 모노드라마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오늘 우리 시대 배우(퍼포머)의 존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무대에서 풀어나간다. 어떤 이는 몸으로, 어떤 이는 낭독(텍스트)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풀어나가는데 연극을 단순히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송웅이 연기했던 그 원숭이를 재해석하고 무대 위로 끄집어 낸다는 점에서 재개관 작품으로 의미가 있고 매력적인 시도였지 않았나 싶다.


빨간 피터들: 추ing 낯선자

(출연: 하준호, 연출: 신유청) 


[Photo : 남산예술센터 x 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빨간 피터들: K의 낭독회

(출연: 강말금, 연출: 김수희)


[Photo : 남산예술센터 x 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빨간 피터들: 러시아판소리-어느학술원에의보고

(출연: 최용진, 연출: 적극)


[Photo : 남산예술센터 x 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위 4개의 작품 중 특히 연극배우가 아닌 안무가로서 무대에 오른 김보람 안무가의 <관통시팔>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연극무대로서도 무용수로서도 서로가 낯설고 어색할 수 있는 만남이었을 텐데 김보람 안무가는 평소 무용수로는 접해보지 못했을 작은 소극장 무대에서 18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춤을 선보였다. 밴드 Queen 의 ‘보헤미안 랩소디’ 나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등 때로는 관객에게 익숙한 음악을, 다른 장면에서는 불특정한 어떤 소음을 배경음악삼아 18가지의 감정을 자신만의 몸짓으로 풀어냈다. 특히 16장에서는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라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 음성을 배경으로 후회가 가득 담긴 모습을 연출하며 관객에게 위트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빨간 피터들: 관통시팔

(출연 및 연출: 김보람)


[Photo : 남산예술센터 x 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


4명의 빨간 피터가 전한 각자의 이야기들은 삼일로 창고극장이 가진 실험적인 정신을 다시 이어서 재시작하기에 충분했다.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

재개관 작품과 더불어 1층 갤러리에서는 개관기념으로 창고극장의 모태가 된 극단 에저또의 1966년부터 1977년까지의 활동을 조명하는 아카이브 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가 오는 9월까지 진행된다. 전시에서는 명동 일대의 활동 흔적, 당시 작가들의 실험적인 운동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를 맡은 김해주 큐레이터의 "극단 에저또와 연출가 방태수 등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1960~70년대 실험연극의 형태가 무엇인지, 소극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힌트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참고하여 전시를 관람해보면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에저또의 모습과 그 당시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재개관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습니다’ 中



갤러리 전시와 함께 매표소와 연결된 지하벙커 공간에서는 1975년 창고극장 첫 개관작이었던 '새타니'의 영감을 받은 설치 및 일러스트 전시 '언더홀'도 만나볼 수 있다. 


삼일로 창고극장에서는 올해까지 총 9번의 연극을 더 올릴 예정이며 기획전시와 함께 향후 시민과 배우를 대상으로 대관도 진행하여 보다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연극인과 관객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상세한 내용은 남산예술센터 x 삼일로 창고극장 홈페이지(http://www.nsa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관 그 이후...


삼일로 창고극장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재개관하였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가 있다. 2015년 당시330만원이던 임대료는 서울시가 2017년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당시 1,300만원으로 2년 사이 약 4배 가까이 올랐다. 서울시는 2년에 한번씩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으로 10년간 장기 임차했기 때문에 임대료 상승에 따른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얼만큼 임대료가 상승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렇게 될 경우 왠만한 공연장을 하나 지어서 운영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명칭 및 운영에 관련된 이슈도 남아있다. 2015년 폐관 당시 삼일로 창고극장의 정대경 대표는 삼일로 창고극장의 이름을 그대로 다른 공간으로 옮겨 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삼일로 창고극장의 재개관을 준비하면서 명칭 사용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서로 오해를 풀고 삼일로 창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앞으로 극장 운영에 있어서 이러한 부분은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서울문화재단은 행정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운영은 운영위원회를 꾸려 연극에 대한 주요한 사항을 결정하기로 했다는데 여러 기관과 사람들이 얽히면 본래의 극장이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는 활동이 많아질 수도 있음을 경계하고 부디 이러한 의견 조율을 잘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약 44년간 숱한 어려움과 폐관 속에서도 연극의 중심지였던 명동을 지키는 최장수 소극장으로 남아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앞으로도 재정적, 운영적인 문제들을 잘 풀어내면서 예전처럼 젊은 연극인들의 실험정신, 도전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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