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축제와 같다면 : 북유럽 정치 축제가 들려주는 이야기 


정치가 축제와 같다면: 북유럽 정치 축제가 들려주는 이야기



기성세대는 물론 가깝게는 30대 청년들까지도 토론식 의사결정은 결코 익숙한 문화가 아니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을 꼽아본다면 학교에서 그런 방식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음의 결과는 사회생활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대부분 직장에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 하자고 회의실에 모이면 잘 아는 사람 혹은 경험이 제일 많은 사람이(대부분 직급이 높다) 이야기하고 나머지 배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 말을 받아 적기 바쁘다. 토론의 핵심인 설득과 바람직한 결론 도출이라는 알맹이는 온데간데 없다.



<토론>이라는 책을 쓴 성균관대 백미숙 교수는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중요 척도로 토론 문화를 꼽는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리스 민주주의가 아고라에서의 활발한 토론 문화로부터 발전했다는 점과 근대 민주주의가 태동한 영국과 미국 역시 토론문화가 발전했다는 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이해가 간다. 토론 문화가 자리잡고 있지 않으니 여당과 야당의 힘겨루기가 있을 뿐 합의와 협의는 찾기 힘들다. 특히 입법과정을 살펴보면 치열한 토론 끝에 서로 타협하여 합치된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하나 양보할 테니 저기서 너희가 하나 양보해라 이런 식의 거래만 있을 뿐이다. 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당이 생기기라도 하면 제대로 된 절차 없이 날치기로 법안이 통과되기도 한다.


2018년 요즘의 우리나라에서는 협치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말 그대로 협동하여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토론이 되지 않으니 협치가 쉽지 않다. 타협과 설득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힘겨루기의 지속이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살펴보면 ‘협치 종식’ 혹은 ‘협치 실종’과 같이 협박조의 말들만 오간다. 그나마 최근 협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실무회의가 첫 가동되었다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전해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그저 부러운 축제가 하나 있다. 바로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정치 축제이다. 대표적으로는 스웨덴의 ‘알메달렌 위크’ 그리고 덴마크의 ‘폴케뫼데(우리말로 민중회의)'를 꼽을 수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축제의 성격과 지향점은 비슷하다.


정치 축제란?



스웨덴의 ‘알메달렌 위크’ 


정치 축제의 원조는 스웨덴의 알메달렌 위크이다. 알메달렌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제주도와 같은 휴양섬 고틀란드에 위치한 공원 이름이다. 1968년 당시 스웨덴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가 고틀란드 섬에 방문했다가 알메달렌 공원에서 주민들과 정치적 토론을 나누고 연설을 한 것이 언론에 소개가 되어 화제가 됐는데, 이후 해마다 스웨덴 총리는 이 공원에서 정책 연설회를 가지는 것이 연례 행사가 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정부 정책 설명회로 규모가 커졌고 1975년부터 정당이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1991년부터 의회 의석을 차지하는 모든 정당이 참여했다. 그리고 1994년부터는 시민단체, 노조, 기업, 학계 등이 모두 참가하는 초대형 규모의 박람회로 성장하였다. 2017년 공식 집계에 따르면 1,890여개의 단체가 참가했고 약 4만명의 참가자가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는 8개의 정당이 각 하루씩 돌아가며 이벤트를 맡아 진행하기 때문에 알메달렌 위크라고 불리게 되었다.


 1982년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의 연설 사진


 알메달렌 위크에서 거리 토론을 하고 있는 정치인 


▼ 정치축제는 자신들의 관심사를 다른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사진출처 : almedalsveckan.info]


알메달렌 위크를 주최하는 것은 정당들이지만 박람회는 절대 정책 홍보와 표심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모든 프로그램들과 지향점은 시민들과의 소통에 맞추어져 있다. 가장 큰 행사는 정책 연설회 이지만, 박람회에 방문한 시민들은 그러한 수동적인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서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정책과제와 현안들에 대한 의제 발표 등을 들은 뒤 그 자리에서 자유롭게 질문하기도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뿐만 아니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정당의 정책 설명회에 가서도 자유롭게 토론한다. 같은 자리에서 어떨 때는 정치인과 시민이 토론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시민과 시민이 토론하기도 한다. 논쟁을 열심히 한다 한들 대개는 답을 찾기 힘든 문제들의 연속이지만, 이러한 과정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답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덴마크의 ‘폴케뫼데'


덴마크의 ‘폴케뫼데’(우리말로 민중 회의)는 보다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의 모습을 지향한다. 주요 정당들이 주도하여 개최하는 알메달렌 위크와 달리 폴케뫼데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 축제는 보른홀름이라는 덴마크의 작은 섬에서 열리는데, 사실 이 섬은 폴케뫼데가 열리기 전까지는 그저 작은 섬에 불과했다. 보른홀름 지방자치단체가 섬을 홍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던 중 알메달렌 위크를 모델로 삼아 새로운 형태의 축제를 기획했고, 다양한 정치 토론의 장이 열리면 일반 시민들이 정치인과 대화하고 싶어서라도 섬을 많이 찾게 될 것이라 예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상은 적중했다. 


 폴케뫼데에서 정책연설을 듣고 있는 시민들


▼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토론회


 [사진출처: folkemoedet.dk]


이 축제에서는 노숙자부터 총리까지 한데 모여 정치에 대해 토론한다. 길거리를 지나다 총리가 보이면 갑자기 불러 세우고 이것 저것 물어본 뒤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잔디밭에서, 마을 회관에서, 식당에서, 심지어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 위에서도 토론은 이어진다. 때로는 집권당과 야당의 대표가 모여 한 주제를 가지고 난장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토론의 사회자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번갈아 가며 질문한 뒤 대척점이 생기면 그 부분을 파고들어 집중 토론에 들어간다. 하지만 토론에 참여한 그 누구도 상대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서로 함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는 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이 4일 내내 이어진다. 폴케뫼데의 기본 바탕은 굉장히 간단하다. 바로 토론과 대화로 더 나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해마다 10만명의 사람들이 참가하는데, 오로지 정치를 주제로 하는 토론과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특히 사람들은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데 있어 누가 더 많이 동의 하는지 혹은 미동의 하는지에 초점이 있지 않으며 그 과정 자체를 미래를 위한 소통의 장이라고 인식한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국정 현안과 정책에 대한 타협점과 합의점이 자연스레 도출되며 이는 또한 국가 정치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다. 국민과 정치인들의 상호 신뢰가 기반이 되어주니 정치는 그들에게 과제가 아닌 축제가 되어준다.



정치 축제는 왜 특별한가?


정치 축제는 크게 3가지의 효과가 있다. 

첫 번째, 정치인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책은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이익이 아니라 결국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책은 껍질에 불과하다. 때문에 정치 축제는 정치인들에게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할지 가늠하게끔 해주는 좋은 통로가 된다. 


두 번째, 전문가들의 경우 정치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은 정치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정치인들이 보통 당면한 과제를 처리하는데 주력한다면 각계의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사회의 변화를 앞서 예측하고 이를 경고함과 동시에 문제의 당위성에 대해 각계각층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치 축제는 전문가들이 사회의 지각변동을 느끼기 가장 최적의 장소이다. 참여한 시민들이 어떤 분야의 정책 토론 가운데 가장 갈등이 많이 나타나는지, 어떤 분야의 토론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지를 잘 살펴보면 그것이 곧 살아있는 여론조사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 시민들은 지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정치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될수록 시민을 위한 정책과 법안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목소리를 반영하려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정치 축제는 이러한 소통 창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아무리 정치인과 국민간의 대화가 격식없이 진행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회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치 축제에서는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모든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자신들의 생각을 교환한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식견을 쌓게 된다. 살아있는 정치 교육의 현장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효과들이 하나로 뭉쳐 시너지 효과를 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협치가 가능해진다. 토론과대화의 과정을 통해 서로 합의하고 협상하며 공동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모두의 문제를 정치인들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를 모두 함께 고민한다.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실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히 그 안에서 이득을 선점하려는 욕심쟁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상호에 대한 신뢰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정당이나 단체의 사익이 아닌 국가 전체의 국익을 위한다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웨덴과 덴마크 사람들은 이러한 정치 문화를 만들어왔고 가진 것에 대해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 폴케뫼데에서 노사정 대표가 모여 토론하는 모습

[Photo: KBS 스페셜 방송화면]


덴마크의 정치 축제인 폴케뫼데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KBS 스페셜 <덴마크 정치축제 5일간의 기록 협치를 말하다>에서는 조금 생소한 장면이 나온다. 어떠한 정책을 두고 노사정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흔치 않는 일이거나 있더라도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은 그림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노사정 대표들의 토론장은 화기애애하기 그지없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유럽 정치 축제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 주체들 모두가 서로 싸우고 분열을 일으키기 보다 협력해서 해결책을 찾는 것을 지향한다. 물론 그러한 지향점의 바탕에는 서로가 합의한 내용에 있어서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 약속들을 지켜나간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최선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 그것이 정치 축제의 목적이자 정신이다. 


이제 우리도 토론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왜 이런 토론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 걸까? 앞서 소개한 KBS스페셜 프로그램에서는 전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원과의 대담이 등장한다. 거기서 정 의원은 우리나라의 협치가 왜 안되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풍토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수단이 무언가 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러한 수단을 사용하면 회색주의자인 것 마냥 취급 받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대화와 타협이 주저되는 풍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이곳 저곳에서 북유럽 정치 축제와 비슷한 성격을 띤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비록 어렵지만 대화와 토론으로 정치 문화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움직임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서울시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함께서울 정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서울시 정책에 대한 홍보와 함께 여러 형태의 토론을 통해 참여한 시민들에게 공론의 장을 열어준다. 최근에는 시민이 어떤 정책이든 아이디어를 하나 가지고 오면 커피로 교환해주는 ‘정책 카페’를 운영한다. 또한 2017년의 경우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의제를 시민들이 직접 토론과 투표로 선정하고 공표하는 방식을 선보임으로써 보다 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를 선보이려고 노력했다. 


▼ 함께서울 정책박람회에서 선보였던 서울정책카페 

[Photo : http://democracyseoul.org]


지자체 및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이러한 공론의 장들을 계속 열어가고 있다. 거버넌스센터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정책 컨벤션&페스티벌’이 그러한 예인데, 하나의 큰 키워드를 가지고 여러 세션으로 나누어 다양한 토론들이 진행된다. 아직 까지는 시민들 보다는 정부 관계자 및 전문가 집단의 참여가 대다수지만, 점점 시민들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행사장에서는 지자체들은 그 해의 주제와 관련된 활동들의 성공 사례를 홍보하고 그 외의 민간단체들은 각자의 부스에서 본인들이 펼치는 활동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북유럽 정치 축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 밑바탕에 있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 정치인과 시민 모두 토론과 대화가 정치의 기본이라는 인식은 물론 갈등이 있어도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놓지 않는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축제가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 문화에서 탄생한 정책과 법률은 사회 구성원들의 흔들림 없는 신뢰 안에서 지지를 받고 또한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정치 축제가 열리려면, 우선은 이러한 의식을 쌓는 연습부터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화와 타협이 상대방에게 자존심을 굽히거나 수그리는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더 큰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대화와 타협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우고 시도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럴 수만 있다면 정치 축제가 열리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 자체가 축제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From A 관련기사 


나만의 작은 축제를 찾아: 연말과 영화, 영화와 공간, 그리고 나


사람과 지역을 살리는 문화공간을 만들다. 18명의 터너상 수상자 어셈블(Assemble)


무지개빛 미니멀리즘의 시대, 분화하는 페스티벌


도시의 미래, 문화도시를 이야기하다. <2018 아시아도시문화포럼(ACCF)>


우리가 아닌 그들의 대안이 돼버린 '팟캐스트'


리테일의 골든글로브 콘퍼런스, 샵톡(Shoptalk)



▶참고자료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와 스웨덴의 민주시민교육 (머니투데이)


KBS스페셜, ‘덴마크 정치축제 5일간의 기록 협치를 말하다’ (KBS스페셜 83회, 2017.07.06.방영)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 3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