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문화적 잠재력을 깨우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이다.”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인간은 창의적 활동과 성찰을 할 수 있는 독보적인 동물이다. 모든 인간이 이 특권을 제대로 누렸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의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개인적인 가치를 찾아가며, 창의성을 계발하는 과정은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보는 눈을 만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교육 콘텐츠를 어디서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학교에서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치지만, 공교육 교과과정의 작은 일부로 취급되기에 심도 있는 접근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문화예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관과 아카데미, 박물관 및 미술관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미술관은 학습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좋은 작품과 연계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러운 교육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미술관 속 작품 앞에 모인 학습자들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감상을 떠올리고,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창의력과 공감력을 기르게 된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자. “과연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예술가로 남게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지적, 정서적, 사회적인 영역에서 골고루 발달한 예술가로 성장한다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강할까. 인간이 가진 문화적 잠재력을 일깨워 개인의 질적인 삶을, 그리고 나아가 살기 좋은 문화예술 사회로의 성장을 꿈꾸는 미술관들이 오늘의 주제다.



A. 테이트 모던(Tate Modern) : 예술가와 사회를 만나는 시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이와 학생에게 친절하다. 테이트 모던을 찾는 학생들이 예술 작품을 비판적으로 감상하는 식견과 자신감을 갖춰 성장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방문객과 소통하고, 이들의 의견을 분석하는 연구팀까지 따로 둘 정도다. 작품을 슬쩍 보고 지나가는 무의미한 프로그램 대신, 내실 있는 작품 체험으로 관객을 예술의 맨 안쪽까지 끌어들이겠다는 야심 찬 목표 때문이다.


"창의력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노는 과정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접하다 보면,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감력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다."


- 안나 커틀러(Anna Cutler), 테이트미술관그룹 교육국장  


  [Photo: © Tate]


수준별, 연령별로 진행하는 방과 후 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워크숍 중 'Artist-led workshops for schools(학교를 위한 예술가 주도의 워크숍)’는 실제 필드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가 수업을 이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매년 다르게 선정되는 4명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토대로 주제, 재료, 과정, 기법, 생각 등 창작의 전면을 가르친다. 학생은 교사나 전문가 대신 테이트 모던 소속의 창작가와 직접 토론하고 질문하면서 현대적인 예술 기법, 새로운 관점의 사고와 함께 상호작용의 경험까지 획득한다. 신진 작가와 인지도 있는 작가를 함께 뽑아 학생들에게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작가 또한 워크숍의 커리큘럼을 직접 짜고 창의 교육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한다. 


테이트 모던이 시도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쟁점과 가치 중심의 문화예술교육도 살펴볼 만하다. 최근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난민 문제 역시 공감 체험을 기반으로 한 교육으로 해결한다. 아이들이 강에 종이배를 띄우며 난민의 여정을 느끼고, ‘속마음 부스’에 난민 학생과 일반 학생이 등을 맞대고 앉아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교육 프로그램은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어색하기 그지없던 학생들이 프로그램 종료 후 껴안으며 공감하는 모습은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문화시민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B. 클리블랜드 미술관 : 테크놀로지 교육



 “미술관은 교육적 기관이어야 한다.”

-프레데릭 알렌 휘팅(Frederic Allen Whiting), 클리블랜드 미술관 초대 관장   


클리블랜드 미술관(The Cleveland Museum of Art)은 하이테크, 스크린프리(Screen-free) 활동을 전개하는 아트렌즈(ArtLens) 스튜디오와 연계해 테크놀로지가 있는 프로그램과 미술관을 꾸렸다. 관객이 놀이와 몸동작으로 작품 일부가 되는 인터랙티브형 첨단 기술 위주로 작품을 전개하는 아트렌즈 스튜디오 덕분에 그 혁신성을 인정받아 글래미어워드(GLAMi Awards)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사물 및 위치 인식 센서와 카메라, C++ 프로그램, 실시간 그래픽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3D 인터랙티브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개의 미술관이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접근 차단봉과 같은 물리적 걸림돌은 이곳에서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벽에 붙은 작품 설명까지 과감히 제거했는데, 이는 관객이 캡션 읽기에 사용하는 시간 대신 작품을 더 오래 보게 함으로써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예술은 가까이 다가가고 만질 수 있는 것이며, 단순히 외워서 알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다.


[Photo: © The Cleveland Museum of Art]



Studio Play : The Cleveland Museum of Art



또한, 3세부터 100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마련하고 아동, 가족, 청소년, 성인, 노인 등 각 연령층에 적합한 맞춤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히 첨단 기술을 더한 게임 형식을 가져와 교육을 받는 학습자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췄다. 관객의 움직임과 감도에 따라 가상으로 도자기를 빚을 수 있는 ‘Pottery Wheel’, 미술관 내의 각 시대 예술작품을 연결, 확대, 회전, 복사해 새로운 콜라주를 만드는 ‘Collage Maker’, 유화, 목탄화, 수채화 등으로 그려진 유명 작가의 다양한 초상화 느낌을 본떠 나만의 초상화를 만들어보는 ‘Portrait Maker’, 모션트래킹 기술을 활용해 실제 붓과 물감을 쓰듯 손과 팔로 물감을 흩뿌리는 ‘Paint Play’ 등 문화예술교육에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친근감을 높였다. creategallery.tumblr.com에서 사람들이 만든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C. 요코하마 미술관 : 실패, 규제, 주의, 평가 없는 수업 



예술 작품에는 풀이 과정과 정답이 없다. 창작의 모든 순간에도 실패가 없고, 마찬가지로 감상에도 실패란 없다. 실패 뿐 아니라 규제, 주의, 평가가 없는 자유로운 미술 프로그램을 체험한 아이들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질적인 가치를 생각해보자. 예술이 가까이 있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깊이에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요코하마 미술관이 운영하는 '어린이 아틀리에'의 모토는 “스스로를 위해 찾고, 느끼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예술을 장애물로 느끼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예술과 친해질 수 있도록, 유아부터 초등학교 학년별로 연간 90회 이상의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한다. 보통 요코하마 시내의 보육원과 유치원, 초등학교, 특수학교들로부터 사전에 워크숍 신청을 받는데, 어떤 곳들은 3년 전에 미리 신청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워크숍에서는 미술 도구에 대한 기초적인 사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붓을 쥐고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는 순전히 아이들의 손에 맡긴다. 옷에 물감을 묻힐까봐 걱정하다가 오히려 그림을 망치지 않도록, 부모와 상의한 후 아이들을 속옷만 입혀 수업에 참여시킨다. 도화지에 물감을 칠하는 단순 수업이라도, 비가 오거나 추운 계절을 제외하곤 언제나 야외에서 진행한다. 장소와 표현의 범위가 제약되면 과정과 결과물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특별한 주제 없이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린다. 손과 발로 형광물감을 문지르며 놀이 같은 시간을 즐긴다. 학교에서는 소극적이고 은둔형인 아이들도, 실패와 평가가 없는 요코하마 미술관의 수업에서는 반짝일 수 있다.


[Photo: © Baltic.art]


문화예술과 창의력은 교사가 칠판 앞에 서서 책을 보며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의 교육적 목표를 두고 내용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학교의 방식은 문화예술교육 방식으로는 틀렸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운 환경, 상상의 한계가 없는 공간, 무엇이건 자유롭게 참여하고 생각하며 대화할 수 있는 작품 속에서 실제 교육이 이루어진다. 미술관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정답을 맞히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만들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실험, 도전, 교감,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각자의 창조성과 창의성을 다듬어나갈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을 촉진해 결국은 한 인간의 완전한 성장을 가능케 만드는 전인교육이다. 미술관에서 접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는 공교육이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서적 교육과 지적 욕구를 채워주며, 청소년과 청년 세대의 문화예술 경쟁력을 높여준다. 학생들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년층 대상의 문화예술교육 역시 노년들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삶의 문제를 유연하고 정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술관에서 적절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이들은 국내의 문화예술계는 물론, 사회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이 어떤 계층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권에 준하는 것처럼 문화를 다뤄야 합니다. 

문화는 자기 삶의 본질적인 것을 끊임없이 유지시키는 동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   


영국은 테이트 모던 뿐 아니라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s and Design, CSM),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 등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 기관과 협력해 건실한 문화예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영국도 1997년에는 저성장과 극심한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이라는 예술교육을 실행해 지식과 기술 습득 위주의 교육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정립해가는 교육으로 방향을 바꿨다.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은 영국의 학생들이 배경과 능력에 얽매이지 않고 최고 수준의 예술 경험과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누려 각자 가진 재능과 관심을 최대로 발휘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결국은 예비 사회구성원의 창의적・문화적 다양성 증진을 위한 예술교육인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와 부모, 교사, 그리고 예술 분야의 창의적 활동 전문가들이 함께 2,700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거대한 예술교육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정부의 지원으로 추진력을 얻었다. 이들은 미학, 인류학, 예술학, 철학 등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가치를 담은 문화예술교육의 콘텐츠를 배출하며 현재 예술 선진국인 영국을 만든 기반이 되었다.


반면 국내의 교육 실정은 문화예술교육이 끼어들 틈이 없이 빠듯하게 굴러간다. 어릴 적부터 대학 입시에 모든 초점을 맞춘 교육 체제는 아이들의 감수성과 창의성, 자존감 형성을 막는다.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은 취약계층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고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예술 향유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전공과 진로로 문화예술을 희망하는 학생만이 문화예술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이나 기술, 인문학과 같은 다른 영역과의 보이지 않는 경계도 넘어서야 한다. 이제 국내의 학교와 미술관에서 전개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일상에 숨어있는 문화예술의 가치와 즐거움을 알려주는 깊이 있는 체험과 진정한 교육 콘텐츠로 지속, 발전하길 바란다.    



fromA comments


역시 예술교육은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 하는건지... 미술학원에서 맞아가며 그림 그려본 기억이 나서 ㅎㅎ 

- 위킴피디아 디자이너 (김**/ 40대 남)  


지난 행사 때 문화비축기지로 연사를 모시고 가는 길에 한국 학생들은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저희가 실행하는 프로젝트들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건강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센스9 프로젝트 매니저 (최**/ 20대 남)  


미술관은 여행을 가서만 찾았는데… 아이 때는 미처 누리지 못한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이제라도 일상에서 누리면서 새로운 시각을 가져봐야겠다는 다짐이 듭니다. 지난 해 말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도 생기고, 이제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각 지역 아이들도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네요. 이번 주말은 미술관으로 놀러 가야겠습니다. 

- 유쾌한 야마 기획자 (최**/ 30대 여)  


문화예술이 어린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장난감이 되어야 하는데, 어려운 교육의 도구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경계를 잘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창의성‘과 ‘상상력’이라는 단어도 쉽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조차 너무 거창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고요. 어쨌든 국내에도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전용 공간이 생긴다면 파블로 피카소의 표현처럼 모두가 예술가인, 좀 더 유연한 세상이 되겠죠? 

- 스토리 갬성 모노폴리언 (박**/ 30대 여)  


밴쿠버 아트갤러리에 갔을 때 일요일에는 12세 이하 아이를 동반한 성인도 무료입장이 가능한 시스템을 본 기억이 나서 문화예술에 대한 일상적인 접근성을 높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아이들의 소란때문에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지만 그들에게 쉽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건 미래에 대한 일종의 투자인 것 같아 노키즈존이나 사회 인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요. 

- 새싹 미쁨 크리에이터 (김**/ 20대 여)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해 어른들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방해하는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 패셔너블 인텔리 쎄오 (강**/ 40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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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예술, 자유롭게 느끼고 놀듯이 즐겨야 창의력 자랍니다(조선일보)


파리,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다 (Arte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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