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흐름 앞에 선 세계 3대 영화제 


변화의 흐름 앞에 선 세계 3대 영화제




[Photo : © https://www.berlinale.de]



영화제 상영 배치야말로 영화 마케팅 전략의 최우선 요소라고 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영화제야말로 당신의 영화가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는 곳이고, 

잠재적인 언론의 취재와 흥미를 가진 배급업자가 있는 곳이면서 또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단편영화가 망하는 모든 이유를 알고 있다> 로버타 마리 먼로 저



혹자는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흥행과 동시에 ‘극장 시대가 종말 할 것’이라고 말한다. 복합쇼핑공간 안에 있는 극장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보다 집에서 편한 자세로 고화질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말처럼 최근 극장에 가는 대신 집에서 편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영화 감상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강세는 극장가 풍경뿐만 아니라 영화 시장을 이끌어온 주요 영화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32년 베네치아에서 최초의 영화제가 시작된 이후로 전 세계의 크고 작은 영화제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영화를 선정하고 이를 세상에 가장 먼저 공개했다. 특히 3대 영화제인 베를린, 칸, 베니스 영화제는 극장에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이 이를 감상하는 문화의 발판을 만들었다. 또한 한발 더 나아가 영화제는 개최 지역의 대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영화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지역색, 미술, 음악, 춤 등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각자 고유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 영화제는 최근 스트리밍 서비스의 강세에 어떤 모습으로 대처하고 있을까? 70~8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3대 영화제는 처음 어떤 모습으로 시작했고, 최근 영화감상 트렌드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목록>

A. 베를린국제영화제 (Berlinale)

B. 칸국제영화제 (Canne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C. 베니스국제영화제 (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 베를린국제영화제(Berlinale)


[Photo : © https://www.facebook.com/berlinale]



■ 개최 장소: 베를린, 독일

■ 제69회 개최 일시: 2019년 2월 7일 ~ 17일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는 1951년 3대 영화제 중 가장 최근에 시작했다. 매해 여름에 개최되었지만 1978년부터는 매년 2월,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 지역을 중심으로 약 10개의 주변 상영관에서 열리고 있다. 베를린영화제가 처음 시작된 목적은 동독과 서독의 문화 교류를 통한 통일이었다. 때문에 다른 영화제에 비해 서구권 영화와 독일 동구권 영화를 비교적 자유롭게 소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독일의 정치 상황이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그 당시 동독의 정치적, 이념적 사상과 영화제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수상작은 주로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경우가 많았지만, 통일 이후에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 외에도 제3세계 영화, 예술영화, 실험적인 영화 등을 보다 폭넓게 상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약 400여 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그리고 베를린영화제는 상영작뿐 아니라 '유러피언 필름 마켓(European Film Market, EFM)'으로도 유명하다. 전 세계 영화제작자, 배급사, 판매회사, 바이어, 투자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영화 마켓 중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베를린 영화제 레드카펫 현장

[Photo : © https://www.berlinale.de]



베를린영화제 최고의 상은 베를린을 상징하는 곰 모양의 트로피를 수여하는 '황금곰상(Goldener Bär)'이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주목받는 작품 중 최고로 선정된 영화가 이 트로피를 거머쥔다. 이념 간 대립이 강했던 도시에서 시작된 영화제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들이 거주하기로 유명한 베를린이 개최지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제에서는 여전히 사회 비판적인 영화들이 수상에 강세를 보인다. 그래서 베를린영화제를 주제로 한 기사에는 ‘파격적인 시상’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2018년에는 루마니아 출신 신예 감독 '애디너 핀틸리(Adina Pintilie)'의 <터치 미 낫 (Touch Me Not)>이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은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혹평을 받았지만, 베를린영화제 최고의 상을 차지했고, 이는 영화제 역사에서도 꽤 파격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애디너 핀틸리 감독과 영화 <터치 미 낫> 관계자

[Photo : © https://www.berlinale.de]



또, 베를린영화제는 할리우드 영화와 배우들의 명성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는 1980년대 영화제가 심한 자금난을 겪을 당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8년에 개최된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역시, 같은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2020년 차기 집행위원장이 취임하면 영화제의 개성이 또 한 번 바뀔는지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B. 칸국제영화제(Canne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Photo : © https://www.facebook.com/festivaldecannes/]



■ 개최 장소: 칸, 프랑스 

■ 제72회 개최 일시: 2019년 5월 14일 ~ 25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문화의 상징이 된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는 영화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기획됐으며, 20세기 최고의 영화제로 꼽힌다. 처음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색이 강한 베니스영화제에 대항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파격적인 영화보다는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유럽영화와 할리우드영화가 공존하는 영화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칸의 아름다움과 최고의 영화가 어우러져 취재진과 관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주요장면

[Photo : © https://www.youtube.com/user/TVFestivaldeCannes]


이 영화제에서 수상할 수 있는 최고의 상은 칸을 상징하는 종려나무의 잎이 그려진 '황금종려상(Palme d'Or)'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감독들이 칸에 초청받고 싶어 한다.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영예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해 영화제 기간 동안 약 21만 명의 방문객과 4천여명의 취재진이 찾는 영화제인 만큼 작품을 홍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필름마켓은 없다. 이 때문에 칸의 심사위원들은 입김이 매우 세다. 출품 조건 또한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하며, 심사위원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여 매해 어떤 영화를 소개할지 정한다. 


또한 조직위원회가 영화 감상 문화에 있어 보수적인 시선을 고수하기로도 유명하다. 이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Orozco)' 감독의 영화 <로마(Rome)>가 2018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았지만,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칸영화제에는 초청되지 못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프랑스 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칸영화제는 결국 화제작을 놓쳐버린 셈이 되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Photo : © https://www.festival-cannes.com]



이렇듯 까다롭기로 유명한 칸영화제의 경쟁 부문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예 감독의 이름이나 장르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감독 주간’, ‘비평가 주간’등의 섹션에서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발견된다. 2018년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Hirokazu Kore-eda)' 감독의 <어느 가족 (Shoplifters)>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2019년 초, 예술영화관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가버나움(Capernaum)>이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했다.



C. 베니스국제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 황금사자상


[Photo : © https://www.labiennale.org/en/cinema/2019]


■ 개최 장소: 베니스 리도섬, 이탈리아

■ 제76회 개최 일시: 2019년 8월 28일 ~ 9월 7일



베니스국제영화제(이하, 베니스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다. 1932년 최초로 시작한 영화제이지만 무솔리니 정권을 지나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1950년이다. 하지만 1968년 파리에서 시작해 전 유럽으로 번진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 운동 '68혁명' 당시, 젊은 영화인의 ‘반란’에 큰 영향을 받아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간중간 역사가 비는 느낌이 든다. 그 사이 베니스영화제는 변화를 모색했고, 진보적이며 영화의 본질을 잘 살린 영화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는 베니스영화제가 세계적인 물결을 이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현장

[Photo : © https://www.labiennale.org/en/cinema/2019]



베니스영화제는 아카데미 그리고 넷플릭스와 다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를테면 바로 전 영화제의 개막작은 '데미언 셔젤(Damien Chazelle)' 감독의 <퍼스트맨(FIRST MAN)>이었으며,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 감독의 <더 페이버릿 (The Favourite)>도 심사위원대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렇듯 베니스영화제는 타 영화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며, 영화 업계에 부는 새바람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가 논란이 되는 영화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상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런 주목과 관심이야말로 영화의 본령에 가깝고 영화제의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씨네 21



칸영화제의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Thierry Frémaux)'가 만든 영화 <뤼미에르!(Lumière! L’aventure commence)>는 영화의 창시자 뤼미에르 형제가 이미지를 살아 움직이게 하기 위해, 그리고 영화 안에 사람들의 인생을 담기 위해 부은 애정 어린 노력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흑백 영화 속 명확하게 보이는 희로애락을 보며 관객은 절대 가볍지 않은 웃음을 짓게 된다.


영화는 이런 것이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살아 숨 쉬는 대상이다. 한 사람을 대하듯 자세히,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그 진가가 보인다. 또,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여러 번 볼 때마다 새롭고, 관객끼리 서로 대화할 때 몰랐던 이야기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기존 영화 문화를 형성해온 전통과 나름의 체계 또한 존중되어야 관객과 함께 생산자, 공급자 모두에게 건강한 영화 시장이 완성될 것이다. 그 시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기성 영화들이 재조명될 수 있다.


이제 애플과 디즈니 등 더 많은 기업이 스트리밍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은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바뀔 것이다. 물론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노트북에 영화를 담아 보는 방식도 좋지만, 인생을 바쳐 영화를 연구해온 이들의 열정이 맞물린 성대한 축제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영화제의 갈등과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영화제는 '집 안의 극장'을 표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맞서 '스크린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의 역사와 위신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과 플랫폼의 변화를 인정해 시상 영화의 범위를 넓힐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대중은 그들이 어떻게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영화제는 모든 감독에게 예술성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최고의 장이며, 알고리즘과 예술성을 둘 다 겸비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그러한 발판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란은 변해가는 영화 시장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진통이자 절차일 수 있다. 더 좋은 영화를 세상에 알리고 탐구할 장을 마련하자는 비전을 앞세운다면, 더 빨리 해결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시대는 변해도 변함없이 양질의 영화를 위한 영화제의 본질과 가치가 지켜지길, 관객들은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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