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었고, 철도는 디자인을 입었다 


시대가 바뀌었고, 철도는 디자인을 입었다


지난 6월 28일은 제125주년 '철도의 날'이었다. 그동안 철도의 날은 9월 18일로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이 개통한 날을 기념해왔다. 하지만, 일제 잔재 논란 속에 지난해부터 철도 담당 부서가 정부에 처음 생긴  1894년 6월 28일을 기준으로 바꿔 기념하고 있다. 한 세기가 흐르는 동안 세상도 변하고 철도도 변했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지축을 뒤흔들고 달리던 증기기관차는 전기로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가 되었다. 마분지로 만든 딱지표는 스마트폰 앱 승차권으로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철도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을 여는 이들을 위해 달리는 첫 전철. 하루에 한두 명의 승객을 실으려고 약속대로 모든 역에 정차하는 무궁화호. 석탄을 싣고 강원도 오지를 오가는 화물열차. 국민의 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적인 부분이 강조돼서일까, 차갑고 투박한 철(鐵)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철도는 그동안 디자인 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철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디자인의 바람이다. 더 편리하고, 더 보기 좋고, 더 통일된 이미지를 전하는 최근의 철도 디자인을 알아본다.


① 자연 친화적 Station Design, 인간 중심의 Detail 

우선 서울에서 동해바다까지 KTX로 2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강릉선의 주요 역을 살펴보자. 가장 최근에 지어져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잘 표현된 역들이다. 새로 건설된 역은 만종, 횡성, 둔내 등 모두 6개. 강릉선은 평창동계올림픽의 핵심 교통수단인 만큼 우리나라를 찾는 세계인들이 강원도의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지역의 자연환경과 동계올림픽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특히,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평창역과 진부역, 강릉역은 철도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지역주민과 전문가 등이 참여해 디자인을 결정하는 ‘이용자 참여 설계’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렇게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축물이 됐다. 참고로 강릉선 KTX는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에서 ‘올림픽 유산’으로 선정했다.

만종역

서울에서 KTX를 타고 강원도로 들어가는 첫 역이다. 역사 컨셉은 주변 지역과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망원경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콘코스는 만종 코스모스 축제를 아트 글라스로 표현했다. 연결통로는 원주의 시목인 은행나무 잎을 벽면에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 콘코스 : 공원의 중앙 광장을 말한다. 역이나 공항 등의 중앙에 있는 통로를 겸한 광장을 말하기도 한다.


 횡성역

지역 명물인 ‘소’를 컨셉으로 뿔과 눈을 형상화했다. 콘코스는 소가 가진 유순함을 내부 곡면 형태로 표현했다. 연결통로는 횡성군 군화인 ‘함박꽃’과 함께 ‘군조’, ‘백로’, ‘군목’, ‘느티나무’를 벽면에 나타냈다. 또한, 천장은 투명강화유리 재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동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어 여름밤에 역사에서 반짝거리는 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둔내역

인근 청태산 자연휴양림의 나뭇잎과 단아한 한옥 지붕을 표현한 역사가 독특하다. 콘코스는 청태산의 푸른 이미지와 민들레로 자연을 표현하였으며 연결통로는 둔내의 청정자연을 모티브로 선사시대 토기 등을 벽면에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 평창역

역사는 평창군 노성산성의 성벽과 산등성이를 표현했고, 콘코스는 질주하는 KTX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연결통로는 평창군 군화인 ‘철쭉’, 지역특산물 ‘메밀꽃’, 스키경기 이미지를 벽면에 표현하여 평창만의 특색 있는 모습들을 담아냈다. 

연결통로는 평창군 군화인 '철쭉', 지역특산물 '메밀꽃', 스키경기 이미지를 벽면에 표현하여 평창만의 특색 있는 모습들을 담아냈다. 


▼ 진부역

진부역은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식과 설상경기 대부분 종목이 열리는 올림픽의 중심역임을 보여준다. 스키점프와 전나무(스키점프대의 곡선과 오대산 전나무를 표현)의 특징을 반영해 디자인했다.

콘코스는 눈 결정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적용하여 눈이 많은 특성을 표현했다. 연결통로는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송어 축제 등 지역 특색을 표현했다. 


▼ 강릉역

강릉선 역 중에서 가장 독특한 외형이다. 원형 돔 같기도 하나 강릉 해돋이의 해와 경포호 가시연 줄기를 표현했다. 유일하게 승강장이 지하에 있다. 

콘코스는 강릉단오제 오방색을 아트 글라스로 표현했다. 연결통로는 강릉 대표 소나무, 호랑이, 초충도를 동계올림픽 경기종목과 연결해 표현했다. 이처럼 강릉선 6개 역은 지역의 자연, 문화, 인프라의 특성을 고려한 독창성과 통일성의 조화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냈다. 특히 자연 소재인 나무를 사용해 역사의 품격을 높이고 편안함과 따뜻함을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용자 편의를 더했다. 


<강릉선의 안내 사인디자인(Sign Design)을 살펴보자> 

강릉역 안내표지의 컨셉은 자연이다. 숲과 나무가 대표하는 역사의 특성과 조화를 위해 다크 브라운과 흰색을 사용했다. 눈에 잘 띄도록 시인성도 고려했다.

▼ 강릉역 예시

▼ 만종역 예시

사인디자인은 승차표시만 아니라 화장실, 수유방, 고객지원실 등에 통일성 있게 적용했다. 

▼ 강릉역 예시

강릉선 화장실은 여느 특급호텔 부럽지 않다. 단순히 호화롭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쾌적하고 깔끔한 인상을 선사한다. 

▼ 둔내역 예시

무엇보다 이용객을 위한 편의성과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 디자인적으로 돋보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입구에 모니터가 있다. 현재 이용 상황을 알려줘 대기 시간을 가늠할 수 있어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 만종역 예시

특히, 강릉역 화장실은 입구에 점자 안내판을 설치했다. 입구 쪽에 위치한 장애인 화장실은 버튼식 손잡이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 이용 만족도를 높였다. 

▼ 강릉역 시설물 예시

이런 기능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의 디자인 철학이 높은 평가를 받아 작년 말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제20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② 공항 벤치마킹? 고객을 위해 변신할 뿐!

평창동계올림픽, 강릉선 개통과 관련 있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도 살펴보자. 제2여객터미널에 있는 KTX 안내 부스도 깔끔한 디자인으로 손꼽힌다. 공항과 디자인 컨셉을 맞춘 듯 유선형으로 흰색의 비행접시 같은 미래의 이미지를 준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올림픽 손님을 경기장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KTX가 제2여객터미널에서 강릉까지 운행하며 선보였다. 아쉽게도 평창동계패럴림픽 이후에는 인천공항을 오가는 KTX는 더 운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위해 이달 7월 9일부터 29일까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대회가 열리는 광주송정역까지 한시적으로 철도를 운행한다. 

여기서 QUIZ!

역에 가면 누구나 찾아보는 것이 있다. 무엇일까? 바로 열차의 출발과 도착 상황을 안내하는 표시기다. 타려고 하는 열차의 시간과 몇 번 승강장인지 누구나 확인하게 된다. 주요 역의 열차 안내 표시기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 정확하게는 역 안내전광판이다. 

▼ 용산역 안내전광판

코레일은 열차 승강장의 안내 표지판도 디지털로 바꿔 이용객이 빠르고 편하게 열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공항의 비행기 출발·도착 표시기처럼 보인다. 2017년부터 용산역을 시작으로 디자인이 개선된 LCD형 안내전광판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 안내전광판은 검정 바탕화면에 글자 위주의 단순한 디자인, 열차 출발과 도착 정보가 순차적으로 보여져 가독성도 떨어졌다. 

▼ 기존 안내전광판

개선된 안내전광판은 열차 정보가 한 화면에 보이고 경유역 정보도 추가돼 고객이 좀 더 편하게 열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열차를 이용할 때 출발·도착 시간과 목적지를 먼저 확인하는 고객 행동 분석을 토대로 시간과 목적지 순으로 정보배열을 변경하는 등 이용자 친화적으로 개선했다. 디자인도 밝고 산뜻한 투톤 파스텔 배경을 적용하고 열차 종류별 이미지를 추가하는 등 디자인을 개선해 시인성과 가독성을 높였다. 

▼ 강릉역

노후화된 점자형 안내전광판을 LCD 또는 LED형 안내전광판으로 바꿔 고객 중심의 디자인 개선으로 이용 만족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열차 승차권 자동발매기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새로 도입되고 있는 자동발매기는 기존의 은행 CD기 형태가 아닌 타워형이다. 화면도 태블릿형이다. 코레일이 자체 개발한 신형 승차권 자동발매기는 태블릿PC, 프린터, 결제 단말기 등을 하나로 묶은 일체형 제품. 

▼ 서울역 태블릿형 승차권 자동판매기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사용자 높이에 맞게 화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해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자동발매기에 비해 크기를 혁신적으로 줄인 슬림형 스탠드 타입이라 공간 활용에도 이점이 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도 사용자 중심으로  개선했다. 화면이 작아졌지만 제공하는 서비스는 더 늘었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화면에서 지도를 보며 직접 출발역과 도착역을 선택할 수 있다. 음성안내 기능으로 노약자 등 교통약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결제수단도 해외 카드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 보편화에 따라 다양화했다. 

▼ 서울역 승차권 자동판매기

이런 혁신성을 인정받아 신형 승차권 자동발매기는 특허청으로부터 디자인 등록을 받았다. 승차권 자동발매기의 형태와 모양 등을 보호받고, 지식재산권도 인정받게 됐다. 신형 승차권 자동발매기는 강릉선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역으로 확대 설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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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고객의 수고와 시간을 줄여주는 것, 디자인의 출발점

기차역을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모이고 연계가 활성화되면서 ‘환승’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얼마나 편하고 빠르게 환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대기오염, 도로 정체, 사회적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해서 대중교통 이용을 국가 차원 그리고 사회 공익 차원에서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자가용 중심의 문화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을 막는 이유 중 하나는 ‘환승’의 불편함일 것이다. 이른바 ‘집에서 집으로(door to door)‘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번잡한 환승이란 절차 때문에 새벽잠을 줄여가면서까지 굳이 차를 끌고 나오는 것이리라.

태생적 문제다. 애초에 우리나라가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 개발을 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단기적 목적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철도 노선을 정하다 보니 기차역, 지하철역의 입지가 실제 이용객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이름은 같은 지하철인데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환승 거리가 약 400m로 5분가량 걸리는 경우까지 있다. 짐을 들고 있다고, 아님 40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라고 가정해 보자. 다른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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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역사가 들어서고 신규 노선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은 큰 기차역에 더욱 심한 편. 서울역과 용산역은 이 문제를 나름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는지 살펴보자. 서울역은 지하철 4개 노선과 전국의 주요 도시로 떠나는 KTX와 새마을, 무궁화 그리고 인천공항을 바로 연결하는 공항철도와 버스환승센터까지. 모두 서울역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 환승은 필연처럼 보인다. 해결책이 필요하다. 코레일은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서 맞이방을 통하지 않고 바로 지하철로 갈아탈 수 있는 환승 게이트를 설치했다.

▼ 서울역 지하철 환승 게이트

서울역 열차 4번 승강장에서 지하철 1·4호선으로 이어지는 직통 환승 통로다. 기존보다 170m가량 단축되며, 시간으로는 약 2분 30초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와서 게이트를 나가지 않고 바로 열차를 타러 갈 수 있게 됐다. 전에는 열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서울역 맞이방을 통과해서 지하 서울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특히, 서울역 환승 게이트는 자동발매기, 정산기, 환급기 등을 갖춰 일반 전철역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객 반응이 긍정적이자, 기차역과 지하철 직통 환승 통로를 용산역, 영등포역에도 만들었다. 이와 함께 코레일은 지하철에서 기차, 공항철도 환승객을 위해 '로고 라이트(Logo-Light)'를 설치했다. 

로고 라이트는 서울역에서 열차와 전철을 갈아탈 때 바닥의 LED 안내표지만 보고도 쉽게 환승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LED 불빛으로 이미지나 문구를 보여주는 장치로 복잡한 환승통로에서 360도 방향을 알려줘 정확한 환승안내가 가능하다. 서울역 로고라이트는 지하철 1·4호선, 공항철도, KTX 등 갈아타는 열차 종류, 방향, 거리 정보가 표시된다. 기존의 벽면 안내표지보다 시인성과 내구성이 높고 연간 유지비용도 낮다고 한다. 

이와 함께 여행객이 짐을 편하게 옮길 수 있도록 컨베이어벨트를 서울역 지하철 1·4호선과 환승 통로 사이 네 곳에 설치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승의 불편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의도. 이제 용산역을 살펴보자. 비슷한 상황이다. 용산역은 KTX 호남선과 경부선 등 일반 철도부터 ITX-청춘, 경의중앙선까지 여러 노선이 있다.

특히, 이들 노선과 상업시설까지 맞이방을 함께 이용하고 있어 혼잡하다. 처음 역을 찾는 사람들이 헤매거나 당황하기 쉬운 구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로고 라이트를 설치했다. 하지만 로고라 이트 만으로 열차, 전철을 타는 곳을 쉽게 알려주기엔 부족했다. 더욱이 역사의 천장이 높아 안내 표지의 설치가 쉽지 않은 한계도 있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코레일 디자인센터는 역사의 큰 기둥에 주목했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안내 방법을 찾았다.

바로 기둥을 활용한 초대형 안내판을 설치한 것. 열차 타는 곳 게이트 앞 기둥에 이용하는 열차의 픽토그램과 국문, 화살표 안내표지의 대형 랩핑 작업을 했다. 맞이방 어디에서도 쉽게 타는 곳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시인성, 가독성, 주목성을 고려해 명도차가 큰 흰색 바탕, 검은색 글자를 사용한 초대형 안내표지다. 반대편 전철 타는 곳 게이트에 마찬가지로 ‘전철 타는 곳’이라 적은 안내표지를 랩핑했다. 열차와 전철 타는 곳을 구분해 원하는 열차를 잘못 타는 일이 없도록 했고, 고객 이동 동선도 정리했다.


사회 곳곳에서 디자인을 강조하고 주목하고 있다. 공공 디자인도 그중 하나다. 공공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 철도에서 디자인이 주목받은 건 한국철도 역사에 비해서는 일천하다. 하지만 사람과 물자를 연결하며 세상을 이어주는 철도 본연의 가치와 세상의 변화와 인간의 생각을 담는 디자인의 가치는 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철도와 디자인의 만남은 필연이고 세상으로, 대륙으로, 미래로 달리는 한국철도의 진화와 맞닿아 있다. 디자인으로 한국철도의 새로운 비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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