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서울] 상처를 꿰매고 마음을 잇는 봉제 장인들 


N개의 서울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시도’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지역소식] 상처를 꿰매고 마음을 잇는 봉제 장인들 (금천구)

'지그재그 봉제클럽' + '지그재그 봉제수다방'


인터넷에 ‘구로공단’을 검색하면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가 나온다. 가리봉역은 어느샌가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되었고, 벌집촌과 낮은 봉제공장들이 떠난 곳에는 높고 번지르르한 건물과 IT업체들이 들어섰다. 많은 이들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봉제공장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금천 곳곳에는 역사와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봉제공장들이 존재한다.    


지난 6월, ‘2019 우리마을 문화통장’ 사업을 위해 지역의 목소리를 듣는 ‘콜로키움 금천’에서 이 구역의 진정한 봉제 장인을 만났다. 1982년부터 금천에서 봉제 일을 해왔다는 ‘강명자’, ‘권영자’ 선생님은 40여 년 경력의 봉제 장인이자, 80년대 구로동맹 파업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다. 금천문화재단은 이들과 함께 두 가지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지그재그’. 봉제 장인들이 살아온 굴곡진 삶이 봉제 기법인 지그재그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독산동은 간판만 봐서는 봉제공장임을 알 수 없는 곳이 많다. 열린책방 봉제공장(좌), 아트스페이스 봉제공장(우)


금천구는 지역의 대표 자원이라 할 수 있는 봉제를 통해 지역 예술가・구민・유관기관과 네트워크를 맺으며 사업 내용을 발전시키고 관계를 견고히 다지고 있다. 또한, 금천을 대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함과 동시에 문화 다양성과 도시재생 분야까지 담을 수 있는 사업으로 확장 중이다. 봉제 장인들은 단발성이 아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위해, 그간 하고 싶었던 작품과 아이디어를 화수분처럼 쏟아냈다. 예술가나 기획자를 섭외하려던 계획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이미 두 사람이 기획자이자 예술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 : 지그재그 봉제클럽>    

이렇게 탄생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봉제 장인들이 네 차례에 걸쳐 봉제기술을 매개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지그재그 봉제클럽>이다. 8월 23일에는 금천 행복한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면 생리대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9월 20일에는 지역의 마을활동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10월에는 더 많은 주민을 만나기 위해 참여자를 공개 모집했다. 봉제클럽에 이미 참가했던 봉제 장인과 마을활동가들이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원활한 교육 진행을 돕는 사람)로 참여했다.


봉제클럽에 참여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지난 10월 14일, 금천 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에서 세 번째 <지그재그 봉제클럽>이 열렸다. ‘묵은 때 벗기기’를 주제로 인견타올을 만들며 지우고 싶은 기억이나 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인견타올을 만드는 시간인 줄로만 알고 찾은 몇몇 참여자들은 낯선 진행방식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인생 선배이자 동네 이웃 어른 같은 봉제 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고개를 숙이고 작업에 열중하며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


작업하는 시간 동안, 함께 둘러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지고 오랜 친구처럼 재미난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천과 천을 연결하는 봉제기술이 어느새 사람과 사람 사이도 끈끈하게 붙여준 셈이다. 이렇듯 뜨거운 반응을 얻은 <지그재그 봉제클럽>은 10월 21일 월요일에 ‘장롱 속 추억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또 한 번 진행되었다.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있지만 더는 입지 않는 옷을 활용하여 가방을 만들고, 그 옷에 얽힌 추억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지그재그 봉제클럽>에 함께한 이들


이처럼 <지그재그 봉제클럽>은 바쁜 일상에 치여 제때 치료하지 못한 마음속 상처를 꿰매는 치유의 시간이다. 점점 추워지는 요즘, 사람과 온기가 그리운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쉼터로 자리 잡은 <지그재그 봉제클럽>을 더욱 자세히 알고싶다면 금천문화재단 홈페이지를 찾아보자. 


 <두 번째 프로젝트 : 지그재그 봉제수다방>    

<지그재그 봉제클럽>에 이어 장인들이 준비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봉제 장인들의 굴곡진 삶을 봉제 기법을 활용한 예술작품으로 구현하는 <지그재그 봉제수다방>이다. 강명자, 권영자 선생님의 봉제공장 동료, 노동 운동에 동참했던 동지 등 총 6인이 공장 안의 작은 수다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작품을 만든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봉제장인들


짧게는 십여 년, 길게는 수십 년간 함께 일했지만 바쁜 생활로 인해 속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던 봉제 장인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생겨 행복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알파벳을 몰라 라벨을 거꾸로 붙인 이야기로 시작해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맏딸로서 동생들을 먹여 살렸지만 그 고생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 느낀 서운함, 지난 세월 너무 고생한 탓에 사는 날 중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까지. 가장 큰 위로는 ‘공감’이라는 말을 입증하듯,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를 안기는 모습이었다. 


봉제수다방 속 장인들


매일같이 공장에서 떡과 음료를 나눠 먹은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봉제 장인들의 양손에는 간식이 가득했다. 덕분에 <지그재그 봉제수다방>은 언제나 인정 넘치는 먹거리로 배곯을 틈이 없다. 각자의 삶을 담은 작품을 위해 개인적으로 작업하겠다 했지만, 마치 겨울철 김장을 품앗이하듯 서로의 집에 모여 작품에 손과 아이디어를 보태는 모습에서 따스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으레 그렇듯 언제나 즐거운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었다. 서로 속상한 일들도 몇 번 있었지만 그 순간도 잠시, 함께 힘을 내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렇게 현실화한 아이디어는 하나의 멋진 옷으로 탄생했다. 생명력을 가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여섯 명 경력을 합치면 245년이야!”   


이렇게 외친 덕에 전시 제목도 <지그재그 내 인생 245년 숙련공 미싱사들의 삶>이 되었다. 245년의 세월을 담은 봉제 장인들의 작품은 12월 2일부터 5일까지 금나래아트홀에서 관객을 만난다. 삶의 한순간, 한순간이 정성스레 담긴 작품에는 금천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장인들의 따스한 마음과 그 속에 느껴지는 그들의 단단한 생의 아름다움이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방문해보자. 봉제 장인들이 곱게 꿰맨 작품에 관심과 응원의 시선을 더할수록, 금천의 미래에 더욱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 두툼하고 튼튼한 실로 잇따라 꿰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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