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서울] 7가지 풍경으로 만난 동작의 예술가들 


N개의 서울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시도’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지역소식] 7가지 풍경으로 만난 동작의 예술가들 (동작구)

<예술가의 작업실: 누군가의 일상>


모든 예술가는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지만 도통 기회를 잡기 힘든, 궁금증이 이는 미지의 세계. 은밀하고도 사적인 그 공간은 예술가가 작업을 위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다. 그들의 내면이 가장 많이 드러난 작업실은 예술의 무수한 발자취가 쌓여있다. 우리는 작업실을 통해 예술가가 살아온 생의 일부를 가늠한다.  


박영택, 『예술가의 작업실』, 휴먼아트(2012)


"나는 작업실에서 한 작가가 생을 걸고 물질을 대하는 어떤 흔적을 보았다."

- 박영택, 미술 평론가


이러한 작업실을 꾸준히 탐구한 한 미술 평론가가 그 기록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미술 평론가 겸 경기대 교수 '박영택'의 저서 『예술가의 작업실』은 열두 예술가가 살고 있는 '창조의 방'을 부지런히 찾아다닌 결과물이다. 저자가 금호미술관의 큐레이터 시절부터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 작업실 속 내밀한 이야기와 예술가의 세계를 생생하게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공간의 단순한 나열과 묘사 대신, 작가의 혼이 담긴 작업실에서 각각의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을 담아내어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작업실> 포스터


이 책이 개인의 시선으로 작업실을 드러냈다면, 동작문화재단의 <예술가의 작업실: 누군가의 일상>은 지역사회의 시선으로 작업실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지난 6월에 시작된 <예술가의 작업실>은 주민이 예술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예술 체험 프로그램이다. 일곱 명의 예술가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동작에 터를 잡았지만, 주민에게 예술로 위로와 행복을 전하고픈 마음을 한데 모아 진솔하게 다가갔다.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일반인, 그리고 예술가와 지역의 대화를 만든 <예술가의 작업실>은 각 주체가 함께 교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자리였다. 신대방부터 사당까지, 동작구 곳곳에 위치한 일곱 작업실은 서로의 삶에 가져올 영감과 에너지로 가득했다. 


동작구 곳곳의 일곱 작업실 MAP



1. “극단 향연”의 작업실  @동작구 사당동 1016-12

검게 비어있는 작업실, 극단 향연의 공간을 찾은 주민들



극단 '향연'은 사당동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터를 잡은 연극 집단이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연극인의 창작활동을 장려하는 '이수심포지움'으로 교류해왔고, 올해부터는 극단 자체의 창작활동에 무게를 두며 창작욕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의 작업실은 '빈 공간'으로 존재한다. 예술가가 그리는 모든 공간으로 탈바꿈 할 수 있으며, 모든 캐릭터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노래할 수 있다. 창작에 집중하기 위해 사방을 검게 칠한 그들의 작업실은 무한한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틔운다. 


이곳에서는 향연의 창작극인 <세 길이 만난 막다른 골목>을 관람하는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열렸다. 주민들은 원하는 좌석에 앉아 무대와의 거리감 없이 생생한 현장에 몰입했다. 무대가 막을 내리자, 주민들은 예술가에게 연극과 작업에 대한 질문을 자유롭게 던지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뒤이어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작품 <유리동물원>을 주민이 직접 낭독하는 자리가 열렸다. 처음 도전하는 낭독극인만큼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세 길이 만난 막다른 골목>에 등장하는 '톰(Tom)'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작품이기에 금세 역할에 몰입하며 극의 끝을 웃음으로 맺었다.  



2. “푸른 영상”의 작업실  @동작구 신대방2동 343-5 3층

 푸른 영상의 작업실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공유 극장 '푸른 극장'이 있다.



1991년, 카메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이들이 뭉쳤다. 다큐멘터리 제작 그룹 '푸른 영상'은 카메라로 사람을 만나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진실성을 담아, 다양한 사회문제와 이웃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으로 역사와 사회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왔다. 오래된 신대방동 골목을 비추는 작업실의 바랜 창가에는 예술을 실현하기 위해 이들이 고군분투한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복도에 걸린 흑백 사진을 따라 푸른 영상이 만나온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다 보면, 넓게 펼쳐진 바다처럼 푸른 작업실의 입구에 다다른다.     


푸른 영상의 공간은 다큐를 제작하는 작업실과 공유 극장, 공유 주방으로 구성되어있다. 작업실 곳곳을 둘러본 주민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미디어 세 가지를 도표화하는 '나의 미디어 연대기 그리기'를 시작했다. 각자 기록한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지난 시절과 추억을 회상했다. 이어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철권가족>을 관람한 후, 주민과 감독이 함께 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행사의 끝에 다다라, 모두가 작업실 한 켠의 공유 부엌에서 음식을 나누며 행사에 대한 소감과 지역 문화예술에 관한 발전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특히 푸른 영상은 극장과 주방의 마땅한 활용법을 찾지 못하던 차에, <예술가의 작업실>을 통해 이곳들을 지역과 연결하는 진전을 이뤘다. 



3. “N12LL”의 작업실  @동작구 대방동 401-21

모두가 니팅에 몰두한 이 순간, 기계 부딪치는 소리만이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N12LL(엔원투엘엘)'은 기계 니트 디자이너 '임주연'과 핸드위버 '정현진'이 공동 운영하는 텍스타일 스튜디오다. 같은 시기에 런던에서 공부했던 그녀들의 공통점을 살려, 런던의 우편번호에서 브랜드 이름을 따왔다. 조용한 동네에서 작업에 집중할 공간이 필요해 이곳 저곳을 배회한 끝에 지금의 대방동에 작업실을 꾸리게 되었다. N12LL의 작업실은 폐쇄된 구조로 온전히 작업에 몰두하기 좋지만, 제품을 판매하고 관련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으로도 문을 활짝 열어두어 주변 주민과 만나는 소통의 틈을 비워두었다. 


N12LL을 찾은 참가자들은 핸드 위빙과 기계 니팅에 직접 도전했다. 이전에 사용해 본 적 없기도 하거니와, 기계의 생소한 생김새에 지레 겁을 먹은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한 땀 한 땀 실을 짤수록 자신감이 붙는 모습이었다. 참여자들이 몰두해서 실을 짜는 동안 작업실에는 기계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왠지 평화롭기까지 한순간, 이들의 골몰한 얼굴에는 잡념이 눈 녹듯이 사라진 듯했다. 이외에도 면 로프를 활용한 냄비 받침, 실을 엮은 폼폼을 만들며 각자의 개성을 뽐냈다. 



4. “손사이 작업실”의 작업실  @동작구 노량진동 148-50

흙과 나무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재료로 둘러싸인 손사이 작업실



학원가가 밀집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노량진.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견뎌내는 청년의 외로운 아우성이 가득 찬 동네. 이 치열한 동네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모녀 예술가가 작업실을 열었다. '손사이 작업실'은 도예가 '김명숙'과 라탄 공예가 '임서현'이 꾸린 공동 작업실이다.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이들의 공간은 주변 주민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인테리어에 흙과 나무처럼 자연의 재료를 써서인지, 혹은 두 손의 온기로 이루어지는 작업 때문인지, 유독 따뜻하고 포근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많은 이에게 행복과 성취감을 전하고 싶다는 두 예술가를 꼭 닮은 작업실의 풍경이다. 


주민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공방에서는 도예를, 카페에서는 라탄 공예에 도전했다. 도예 그룹은 흙을 문지르고 펴기를 반복하며 저마다의 손자국이 묻은 원형 접시를 빚었다. 라탄 그룹은 길고 가느다랗게 가공된 등나무를 차근차근 엮어 라탄 컵받침을 만들었다. 자연에서 온 재료를 만지고 냄새 맡으면서 원 없이 여유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직접 만든 작업물이 완성되었을 때, 주민들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가슴을 꽉 채우는 듯 행복으로 가득했다. 



5. “SPECIAL ARTS”의 작업실  @동작구 상도1동 677  

 스페셜 아트를 함께 하고 있는 김선정 대표(좌)와 황성정 작가(우)



장애 문화예술 활동의 일환으로 지역주민 참여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스페셜 아트(SPECIAL ARTS)'는 장애/비장애 작가가 고루 모인 그룹이다. 본래 스페셜 아트는 미국에서 장애 문화 예술을 뜻하는 용어다. 하지만 이들의 스페셜은 장애를 상징하지 않는다. 스페셜 아트는 소속 작가의 예술이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에서 시작되며, 예술에 대한 몰입도가 강력한 특별함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바로 그 '특별함'의 스페셜이다.     


스페셜 아트의 작업실 방문기는 곧 동작 문화재단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공지될 예정이며, 이후 작업실의 풍경과 프로그램 진행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예술가의 작업실>과는 별개로 스페셜 아트가 동작구의 사회적기업과 함께 노량진 공시생을 위한 다양한 문화체험 활동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작업실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6. “정은쌤 스튜디오”의 작업실  @동작구 사당동 272-38

이정은 대표와 함께 생애 처음으로 가야금 줄을 뜯어보는 주민들



국민에게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고픈 국악인 '이정은'. 그녀는 많은 이가 국악을 일상에서 즐기고 생활화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성역 부근에 가야금 스튜디오인 '정은쌤 스튜디오'를 차렸다. 국악의 쉬운 생활화를 위해 열린 공간을 꾸렸고, 수업료를 저렴히 책정해 일반인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작업실 입구에 나란히 늘어선 가야금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것'의 고유한 멋이 전해진다. 아담한 규모의 작업실은 누구와도 1:1로 깊이있게 소통할 수 있을 듯한 밀도감을 풍긴다. 앉아서 하는 가야금 연주의 불편함을 고려해 넓게 깔아둔 카펫과 방석에서 예술가의 섬세함과 배려도 엿보인다.


정은쌤 스튜디오를 찾은 주민들은 가야금을 직접 연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야금 연주의 기초 주법부터 한 발 한 발 배우며, 둥둥 줄을 뜯고 튕겨 간단한 연주곡을 연습했다. 가야금을 튕김과 동시에 작업실에는 은은한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손끝이 금세 달아올랐지만 이미 가야금의 매력에 빠진 주민들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서툰 솜씨였지만 각자의 풍류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7. “크리에이티브 랩 유랑(Creative Lab Urang)”의 작업실  @동작구 사당동 1010-29

이날 하루만큼은 대본을 파고들며 배우로 열연한 주민들



'크리에이티브 랩 유랑'은 공연 예술을 기반으로 누구나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을 목표 삼아 활동하는 창작 집단이다. 동시대의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자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기를 가르친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획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주민들이 예술활동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이끈다. 


본격적인 프로그램 시작 전, 유랑에 모인 참여자들은 상대방의 눈을 끝까지 마주치며 서로의 이미지를 파악하고 교감을 나누는 인사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게 무심한 현대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관찰과 관심을 갖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 표현하기', '게임으로 배우는 연기' 등 쉽고 즐겁게 연기를 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차례였던 '인물을 분석하고 새롭게 창조하기'는 캐릭터의 의상과 설정을 분석하여 직접 배우로서 연기에 몰입하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건조한 일상 속에 경직되고 숨어있던 감정을 표출하며, 프로그램이 끝을 향할 때까지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하나의 거대한 문화 시장이자 예술가 개인의 수련과 상호 지원을 위한 장소다. 동시에 예술가가 주변의 이웃과 관계를 맺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실을 보존하는 일은 예술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애를 고스란히 지키는 길이다. 작업실이 지역에서 안전하게 정착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문화가 되고, 그렇게 예술의 향기가 피어난다. 


우리는 예술가의 삶과 공간을 면밀한 관심으로 바라봐야 한다. 아티스트의 창작 환경이 갖는 사회・문화적 가치의 의미를 보전하기 위함이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예술가의 공간 가치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사람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지역문화예술 커뮤니티를 발전시킬 때, 다채로운 향기를 덧입은 문화예술 생태계는 큰 보폭의 한 발을 나아갈 것이다. 지금의 동작이 <예술가의 작업실>을 통해 지역의 예술가를 드러내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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