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penbook

[언박싱 프로젝트] #2, throughput.



지난 언박싱 : #1, input 읽고 오기



프럼에이는 각자의 Why를 찾아가는 [언박싱 프로젝트(Unboxing Project)]로 2020년의 첫해를 맞이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네 명의 '언박서(Unboxer)'는 자신의 필요와 상상력에 따라 작은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1, input은 특수한 제약이 없는, 최소한의 공간과 조건의 투입 단계였습니다. 언박서 K, P, B, J에게는 백지와도 같은 상태에서 자신의 필요와 상상력만으로 공간을 기획하는 시간이었죠. 각자 떠올린 첫 아이디어는 반짝거리는 원석과도 같았습니다. 언박서들은 공간의 지역성과 상권부터 짚어보거나, 필드에서 활약하는 1인 크리에이터와 공유∙협업하는 공간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오픈북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가 모이는 살롱, 더 쉽고 간편한 콘텐츠의 공유서가도 언박싱 프로젝트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의 원석이 가치 있는 보석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듬는 연마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박스의 가장 안쪽에 숨어있는 보석을 꺼내기 위해, 언박서들은 필드에서 활약하는 이들과 함께 공간 기획안을 '언박싱'하는 #2, throughput의 단계에 돌입합니다. 책상 위에 놓인 공간 박스의 초안을 실제 공간으로 구현함에 있어 실질적인 조언을 줄, 5명의 멘토가 언박서를 찾아온 거죠. 



01234

마음 스튜디오, 플레이스1-3, 페이버릿 매거진, 종이잡지클럽, 디자인 m4의 작업 혹은 공간들(순서대로)


7주에 걸쳐 의견과 조언을 주고받은 5명의 멘토는 디자인, 소품, 출판, 인테리어, 서점이라는 장르에서 맹활약 중인 이들입니다. 다양한 물성으로 제품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마음 스튜디오'의 대표 '이달우', 만든이의 생각과 배경을 전하는 라이프스타일 소품 편집스토어 '플레이스1-3'의 대표 '나웅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출판하는 '페이버릿 매거진'의 공동대표 '김남우'와 '김정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아날로그 잡지 플랫폼∙커뮤니티 '종이잡지클럽'의 대표 '김민성', 사람을 위한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디자인 m4'의 대표 '윤영섭'이 프럼에이와 함께 박스를 풀었습니다. 


언박싱은 아직 어떤 공간으로 태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다각적인 장르의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들어야 공간의 가능성이 극대화될 것입니다. 멘토와의 만남, 스스로의 고민, 언박서간의 생각 교류가 맞물려 만드는 공간의 변화, #2 throughput 단계가 이어진 이유입니다. 





언박서 K의 첫 공간 박스는 프럼에이가 위치한 잘 알려지지 않은 연남동의 모습을 보여줄 하나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는 사람들(seeker)'에게 우리의 지성과 정보를 제시하는 영감의 공간이었죠. 분명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K에겐 조금 더 구체적인 컨셉과 가능성이 필요했습니다. 수익구조를 만들기 어려운 이 작은 공간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K는 공간의 핵심 역할을 더 깊게 파고든 끝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냅니다. 


적극적인 시커들이 모이는 곳엔 분명 공통 관심사가 존재할 겁니다. 그 관심사는 우리가 해온 작업과도 연결됩니다. 시커들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닌, 우리와 지향점이 같은 크리에이터인 셈이죠.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공간에선 협업의 기회와 더불어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교류하며 함께 성장할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K가 구상한 공간의 역할이자 가능성이고, 그곳에서 탄생하는 아이디어야말로 프럼에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 중 하나입니다. 


대화의 공간 = 소통의 고리, 새로운 행동의 출발점.


K는 다른 레퍼런스의 장점을 무조건 가져오는 대신, 이 공간이 우리와 자신에게 필요한 분명한 이유를 먼저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느슨한 연대를 통해 열린 지성의 공동체를 만드는 공간. K는 그 핵심이 바로 '대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핵심 콘텐츠인 오픈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고, 대화로써 아이디어와 영감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는 예로부터 공동체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을 떠올리게 합니다. K의 공간 정체성이 평상이란 개념에 도착할 수 있었던 생각의 과정입니다. 


K가 처음 생각한 공간의 초점은 연남을 찾은 불특정 다수였습니다. 언박싱의 끝에 다다라서는 프럼에이 내부의 필요와 소통에 집중했죠. K가 마지막으로 언박싱한 박스에는 완성된 최종 기획안 외에 한 가지가 더 들어있었습니다. 바로 공간이든 시간이든 '좋은 것을 보았을 때 함께 떠들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 즉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발견이죠. 또한 품에 가득 들어온 좋은 재료(레퍼런스)를 흡수하고, 가공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과 방법론을 체득한 시간이었습니다. K가 작지만 탁 트인 평상을 통해 프럼에이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눈높이로 언제든지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새로운 행동의 출발점이 될 대화의 공간으로 언박싱을 마무리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K의 공간 박스가 가진 핵심이자 K의 'Why'입니다. 

 

언박서 P가 처음 잡은 방향은 프럼에이의 여유 공간을 외부 인력과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1인 크리에이터, 문화 PD 등과 만나 우리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자는 의도였죠. 공유 공간에서 프럼에이의 구성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때로는 인터뷰를 하거나 손님을 맞이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기획안을 거쳐 갔습니다. 하지만 여러 레퍼런스에서 가져온 두루뭉술한 생각의 집합만으로는 공간의 목적을 설득하기 어려웠습니다.


P는 우선 기획안의 문제점부터 다시 짚어보았습니다. 외부 인력과의 협업은 분명 필요하지만 양쪽 모두에게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휴식 공간과 업무 공간이 양립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객관적으로 아무리 좋은 기획이라고 해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지 않거나, 기존에 해온 작업과 개연성이 충분하지 않다면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입니다. 


선순환의 공간 = 콘텐츠와 네트워크의 유기적 연결이 만드는 무한 동력.


P는 아이디어를 조금씩 덜어내며 우선순위를 가려내고 공간의 지향점을 하나로 집중합니다. 우리는 외부 인력과의 협업이 잦습니다. 많은 시간을 그들과 이야기하는 데에 쓰죠. 편안하고 여유로운 '라운' 같은 공간에서 미팅과 인터뷰를 진행하면 어떨까요. 환경 변수가 많은 외부의 카페나 회의실보다 더 활발하고 내밀한 대화가 이루어질 겁니다. 이전에 우리가 기획했던 인터뷰 프로젝트의 리뉴얼 콘텐츠를 만들어, 각 분야의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아카이브하는 문화예술의 허브가 될 수도 있겠죠. P의 공간 박스가 만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와 공유 가치를 만드는 '인터뷰 라운지'가 된 배경입니다. 


P의 언박싱은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텅 빈 1층 공간에 홀로 앉아, 어떤 콘텐츠로 채울지 고민하고 구석구석을 줄자로 재며 머릿속 이미지를 스케치로 구현하는 정밀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여러 안 중 실질적으로 필요한 '하나'의 가치를 찾아 나머지를 덜어내는 방법을 배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P가 처음 생각한 공간의 주체는 외부 인력, 그리고 그들의 콘텐츠 소스였습니다. 박스의 겹을 풀어갈수록 마지막은 프럼에이가 가진 콘텐츠의 정체성을 물리적으로 표현한 공간이 되었죠. 이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부딪침과 움직임이 만드는 양질의 콘텐츠,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활력 넘치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P의 언박싱이 종료됩니다. 

 

언박서 B는 프럼에이의 가치를 보여줄 쇼룸으로 첫 공간 박스를 구상했습니다. 오픈북 콘텐츠를 중심으로 멤버십을 꾸리고, 다양한 정보와 굿즈, 컬렉션을 만나는 공간이었죠. B는 조건이 비슷한 공간의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쇼룸을 기획합니다. 그러나 곧 가장 중요한 '나만의 why'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보여주려 했으나 차별화된 방법을 찾지 못한 겁니다. 서가, 굿즈, 멤버십 등은 다른 곳에에서도 충분히 만나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B는 공간을 채우는 방법보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탐색했습니다. 프럼에이의 쇼룸도 좋지만,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죠. B는 프럼에이의 구성원 이전에 오픈북의 외부 에디터로 활동했었습니다. 에디터들이 만나 콘텐츠를 이야기하고, 친분을 쌓고, 글을 쓸 공간이 부재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리적인 교류 장소도 없지만, 에디터끼리 소통할 수 있는 모바일이나 온라인 채널도 없었죠. B는 이 지점에서부터 컨셉과 아이템을 재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에디터가 꿈꾸는 에디터룸, 생각과 대화의 연료로 가득한 작가들의 살롱.


한 가지 목적과 컨셉에 집중하라는 멘토링과 함께, 전직 에디터가 꿈꾸는 현직 에디터를 위한 공간이 점점 뚜렷해졌습니다. 마실거리, 음향기기, 컴퓨터 등 생각과 대화의 연료가 가득한 공간에서 서로 얼굴도 모르던 오픈북 에디터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시너지를 내는 공간. 에디터들은 이곳을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좋은 환경에서 만드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줄 겁니다. 그 모습은 선명한 빛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워크램프'가 가득한 공간을 닮았습니다. 워크램프는 B의 중요한 컨셉 이미지로 굳어집니다. 


B의 첫 기획은 다른 곳과 별다를 바 없는 쇼룸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정보와 영감을 얻는 에디터룸이자,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갈 프럼에이만의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B에게는 너무 많은 레퍼런스를 차별점 없이 담기보다, 실질적인 이용자를 선정해 그를 만족시키는 공간 기획의 구체화를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상상한, 워크램프의 빛 같은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에디터들의 공유 공간으로 오픈북 콘텐츠가 활성화되길 바라며 자신의 언박싱을 마쳤습니다. 


언박서 J는 트렌드와 취향을 나누는 작은 공유 서가로 언박싱을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인 조건에도 부합하고, 공간을 찾는 문화 기획자들이 정보를 나누기 좋을 테죠. 다양한 일을 시도하기 좋은 기회의 공간이 될 겁니다. 하지만 타깃과 공간의 목적은 조금 불투명했습니다. J는 현실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공간을 파고들었습니다. 우선 프럼에이 내부 구성원을 타깃으로 재설정했습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쉬면서 영감도 얻는 공간을 그려갔습니다. 업무를 잊을 수 있는 휴식 공간, 내 방처럼 편하게 재충전하는 공간 말이죠. 


하지만 무조건 쉬는 것만이 재충전은 아닐 겁니다. J는 휴식 공간에서 좀 더 쉽고 즐거운 방법으로 영감을 얻는 생산성을 노렸습니다. 조금은 방대하다고 느낄 수 있는 오픈북 기사가 선별되어 있다면 부담 없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겠죠. J는 5분 내지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즐기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에서 영감을 받아, '오픈북 스낵 바(Openbook snack bar)'를 컨셉으로 삼았습니다. 긴 분량의 기사를 엽서나 떡 메모지 형태로 '스낵화'해 가볍게 즐기자는 의도가 녹아있습니다. 


스낵 컬처가 담긴 내 방, 쉬면서 배우는 영양학적 휴식 공간.


여기서 더 나아가, 공간을 찾는 외부 인력과도 정보와 영감을 나눠 함께 성장할 방법을 고심했습니다. 오픈북 스낵 바를 프럼에이와 함께하는 문화 기획자들도 즐기는 공간이 필요해진 이유입니다. 오픈북 스낵 바와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는 리뷰 보드는 관심 분야와 이슈에 따라 재조합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오픈북 스낵 바의 큐레이션을 만들어가며, 또 다른 오픈북 콘텐츠의 재료를 습득할 수도 있을 테고요. 


J가 처음 떠올린 작은 공유 서가는 7주 후 휴식하면서 정보를 나누는 영감의 공간이자, 맛깔나게 가공된 새로운 콘텐츠를 스낵 바처럼 가볍게 즐기는 유쾌한 공간으로 다듬어집니다. J에게 언박싱은 기획에 있어 가능과 불가능을 판가름하는 생각의 가이드를 익히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기억하는 멘토의 코멘트는 "기획자는 판을 짜줄 뿐, 절대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공간의 무드 연출은 사용자로부터 완성된다"라는 김남우 대표의 조언이었습니다.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단계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는 J의 방법론 발전은 언박싱이 안겨준 가장 좋은 선물일 것입니다. 






네 명의 언박서는 자신만의 첫 공간 박스를 만든 뒤 멘토들의 가감 없는 조언과 의견을 흡수하며 각자의 고민과 장애물을 하나씩 벗겨 나갔습니다. 다양한 필드의 멘토들은 이들의 기획안을 살펴보고, 경험에서 우러난 코멘트를 아끼지 않았죠. 멘토링만이 언박싱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은 아닙니다. 언박서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모난 곳을 깎아보고, 때로는 서로에게 묻고 답했습니다. 다른 언박서의 기획안에서 힌트를 얻거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언박서들이 첫 공간 박스에 채운 것은 '나만의 why'가 아닌, 공간을 채우는 주변의 사례들(how)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공간 기획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그 장점을 모두 이어 붙인 기획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곧 자신들의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프럼에이와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을 고민하며 개개인의 '방향(why)'을 점점 더 또렷이 잡는 조타수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설득하는 '전략(how)'을 세우는 법도 익혔습니다. 타인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자신만의 why'가 담긴 최종 공간 박스가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비좁은 공간이라는 조건상에서 프럼에이, 자기 자신, 그리고 공간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니즈 교집합'을 찾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아직 공간을 실제로 바꾸는 과정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생각의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으면서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습니다. 수많은 공간 박스를 벗겨낸 과정 끝에 각자의 생각 매뉴얼도 완성되었습니다. #3, output에서는 드디어 모든 박스를 벗겨낸 프럼에이의 공간이 공개됩니다. 그 모습은 어떨지, 함께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