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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를 내려놓은 예술작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어지러운 시선이 밤하늘을 오간다. 그의 시선은 별빛과 달빛 사이를 지나 구름 사이에 머문다. 구름에서 멈출 만도 한데, 이내 시선은 다시 어지럽게 흔들린다. 그러다 하늘에 걸쳐 있는 듯한 교회의 첨탑 끝에 시선이 닿는다. 그가 다시 커다란 흰 별로 시선을 옮기자, 관람객도 그를 따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안으로 들어간다. 평면의 하늘이 아니다. 눈앞에서 변형되는 이미지다. 반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 나인블럭 김포점 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 중인 <반 고흐 인사이드 2> 전시에서 미디어 아트로 다시 태어났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은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가 요양원에 머물던 1899년에 그려졌다. 별이 반짝이는 밤의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황량하게 느껴지는데, 특히 커다란 샛별이 그림 왼쪽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73.7×92.1cm

[Photo: MoMA]


그런데 디지털로 다시 태어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풍경도 원본 작품 못지않게 관객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커다란 샛별밖에 없는 시골 풍경을 보았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고흐의 말이 그림에 덧입혀져 남색 하늘의 빛나는 별이 한층 강렬해 보인다. 전시장 벽면에서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솟아나고 구름은 바닥에서 소용돌이친다. 작가가 남긴 유일무이한 원본을 감상하는 전시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이 '미디어아트 전시'를 찾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Video: 9block]



먼저 미디어아트 전시에서는 기존 원본을 감상하는 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호작용성'과 '몰입'을 체험할 수 있다. '상호작용성'은 관람자가 창작의 일부가 되어 작품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미술 작품은 관객에게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하지만, 미디어아트에서는 관람자가 작품 창조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또한 관람객은 작품과 상호작용을 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미디어아트를 다른 전통예술과 구분 짓는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관객에게 생생한 '몰입' 효과를 준다는 점인데, 미디어아트에서 '몰입'이란 관람객 자신이 가상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 즉 물리적인 입력과 출력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을 말한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반 전시에서는 이미 완성된 작품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은 작가의 기법이나 방식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지털 전시에서는 작품의 드로잉 단계에서부터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여 보여준다. 전시장에 배치된 태블릿PC를 배경 사진에 갖다 대면 가상의 붓이 나타나 그림을 완성하는 식으로 말이다. 뉴미디어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인 '피터 바이벨(Peter Weibel, 1944~)'은 뉴미디어 아트가 전통 예술과 다른 점을 '움직이는 이미지'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움직이는 이미지는 단순히 동영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 가능한 이미지'를 뜻한다. 관람객이 태블릿 PC를 들어 움직이면 이에 따라 가상의 붓이 나타나 그림을 그리는 동영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그림이 변형되는 것을 말한다.


<반 고흐 인사이드 2> 전시 전경.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예배당(L'église d'Auvers-sur-Oise)'이 그려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그림 속 실제 장소를 3D 영상으로 추적하는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그림 속 교회가 실제 있는 것만 같은 경험을 준다. 전통 회화를 실제 사실처럼 극대화하여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관객이 그 이미지를 정말 현실에 있는 것처럼 체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한 작품은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생생한 실제 환경과 실시간 소통으로 마치 작품 속의 환경이 실제 존재하는 듯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 Mona Lisa>가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모나리자를 분석한다 해도 비슷하게는 그릴 수 있지만, 똑같이 그릴 수는 없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마크 핸슨(Mark B.N. Hansen)' 교수는 디지털 이미지는 아날로그 이미지와 달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산 과정을 포함한다고 본다. 이처럼 미디어아트 작품은 처음 작품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완성되기까지 작품의 생산 과정을 보여주며 관람객이 작품과 교감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디어아트 작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열린 결론'을 들 수 있다. 전통 예술 작품에서는 관객이 완성된 예술작품을 단지 감상만 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머문다. 반면, 미디어아트 작품에서는 관람객들이 예술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가운데 개입할 수 있다. 즉, 결말이 닫힌 완성품이 아니라, 관객에 의해 얼마든지 열린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아트에서는 종종 예술가들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두곤 하는데, 이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관객이 개입하여 채울 수 있도록 한다.


<반 고흐 인사이드 2> 전시 전경.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열린 결론을 가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로 활동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예술 작품에는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술 작품에 아우라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가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미술관에 찾아갔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술 복제시대가 되자 예술 작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화하였다. 이제는 인터넷에 '반 고흐'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고, 미디어아트로도 쉽게 반 고흐 그림을 접할 수 있다. 아우라의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아우라의 붕괴가 곧 예술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벤야민은 기본적으로 '아우라의 붕괴'를 예술사에서의 진보로 판단한다. 즉, 예술이 현대 대중사회에 맞게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갔다고 본 것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복제기술이 가져온 가장 큰 특징은 '접근 가능성'이다. 벤야민은 복제된 것으로나마 예술 작품을 수용할 수 있게 된 점을 예술사에서 큰 발전으로 강조한다. 


앞서 살펴본 미디어아트의 특징을 <반 고흐 인사이드 2> 전시에 적용해서 살펴보면, 이번 전시에서는 반 고흐의 그림 대부분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60여 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고흐의 일대기와 작품을 영화처럼 보여주는 미디어 홀의 작품은 이 전시의 백미다. 또한, 그동안 평면에만 머물렀던 예술 작품을 기술과 결합시켜 3D 형태로 구현하고, 2D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를 관람객이 채우도록 유도한다.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Photo: 9block]


반 고흐 회화를 차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은 기존의 전통 회화 작품에 대한 접근 용이성을 높이면서도 관람객들이 작품과 더욱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아트를 경험하는 관람객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원본의 아우라가 붕괴하여 관람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는 성공적인 시도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시된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다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즐겁게 관람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흐의 그림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는 고흐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든 적든, 몰입을 경험하며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그의 그림이 아름답다는 것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미술관에 가면 그림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 순서를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전시의 마지막에 배치된 미디어 홀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는 순간 자신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참고하면 좋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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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하면 좋을 도서 

「뉴미디어의 언어」, 레브 마노비치, 생각의 나무

「뉴미디어 아트」, 마이클 러시, 시공아트

「뉴미디어 이론」, 이재현, 커뮤니케이션북스

「뉴 미디어 시대의 예술」, 오은경, 연세대학교출판부

「컨트롤된 카오스」, 노르베르트 볼츠, 문예출판사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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