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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선을 넘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


인터넷이 일상생활을 비롯한 거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도 대거 등장했다. 21세기를 열었던 뉴미디어 아트와 넷 아트, 디지털 아트, 인터넷 아트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예술 작품들은 인터넷에 대해 사람들이 가졌던 열망과 기대를 표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삶의 일부가 되자 뉴미디어 예술 작품들도 서서히 변화해갔다.


뉴미디어 예술 작품들이 온라인상에서 전시됐다면, 포스트 인터넷 예술 작품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든다. 독일 출생의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마리사 올슨(Marisa Olson, 1977~)'은 인터넷을 둘러싼 이러한 변화를 '포스트 인터넷(Post Internet)'이라고 이름 붙였다. '포스트'라고 해서 인터넷 시대가 끝났다거나,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이 등장했다는 뜻은 아니다. 예전에는 온라인상에서만 유통되던 것들이 오프라인 전시장에 놓인다는 의미에 가깝다. 인터넷에서 만들어낸 이미지가 미술관에 전시되고, 전시된 작품은 다시 인터넷상에 올라간다. 이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작업을 '포스트 인터넷 아트(Post Internet Art)'라고 한다.



포스트 인터넷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국 출생의 '아티 비르칸트(Artie Vierkant, 1986~)'가 있다. 그는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얻은 디지털 이미지들을 프린트하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로 구현해낸다. 이를 미술관에 전시하고 사진을 찍어 디지털 파일로 변환한 뒤, 다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다.

아티 비르칸트, '이미지 오브젝트(Image Objects)', 2015, UV print on aluminum composite panel, 65x65in

[Photo :  아티 비르칸트 홈페이지]


이 같은 작업 방식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과 만질 수 없는 비물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예술이 오프라인 전시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재의 시대 상황을 보여준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인터넷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진부해진 상황에서 나온 예술이다. 처음에 인터넷이 나왔을 때에는 신기하고 새롭다고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3D 프린팅 기술도 마찬가지다. 지금에 와서는 이 기술이 그렇게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처음 나왔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에 3D 프린팅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가령 오스트리아 출생의 '올리버 라릭(Oliver Laric, 1981~)'은 2009년 3D 프린팅을 이용해 '도상(Icon-Utrecht)'을 제작했다. 그는 네덜란드에 있는 위트레흐트 성당의 파괴된 중세 도상을 3D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3D 프린팅으로 출력하여 인터넷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과정을 표현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실재란 무엇인지, 또 가상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올리버 라릭, '도상(Icon-Utrecht)', 2009, Polyurethane sculpture


올리버 라릭은 이처럼 3D 프린팅을 이용한 작업 외에도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을 선보였다. '버전들 (Versions)'이라는 작품이 그 예다. 2008년도 이란의 한 통신사는 미사일 사진을 배포했는데, 그 사진은 합성된 가짜 사진이었다. 네티즌들은 이를 인터넷 밈으로 이용하면서 패러디하고, 작가는 네티즌들의 사진을 재합성했다. 포스트 인터넷 상황에서는 관객들이 미술관에서 만나는 예술 작품이 인터넷상에서 편집된 버전들과 다르지 않다. 누구나 편집된 사진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으며, 현실 공간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올리버 라릭, '버전들 Versions(Missile Variations)', 2010, Airbrushed paint on aluminum composite board, 25×45cm

동시대 미술에서 포스트 인터넷 아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이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슈타이얼은 주로 인터넷상의 디지털 이미지를 기반으로 영상 작업을 한다. 슈타이얼은 디지털 이미지가 아날로그 이미지와 달리 태생적으로 순환하는 흐름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에서는 이미지들이 순환됨으로써 원본성이 사라지고, 이미지가 생성과 순환을 반복한다. 슈타이얼의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은 이미지의 생성과 순환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 중 하나다. 태양의 공장은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소개된 이후, 2016년 '제11회 광주비엔날레'를 포함하여 전 세계 주요 전시에 소개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포스트 인터넷 상황 속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는 새로운 사회적 맥락을 구성한다.


히토 슈타이얼,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 2015


포스트 인터넷 아트를 주제로 한 전시는 2014년 중국 베이징의 울렌스 현대미술 센터(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에서 '아트 포스트-인터넷(Art Post-Internet)'이란 제목으로 열린 적이 있다. 얼핏 보면 기존의 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설치된 작품들이 인터넷 이미지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보통의 전시들이 도록을 오프라인에서 종이책의 형태로 판매하는 것과 달리, 이 전시의 도록은 인터넷에 접속해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아트 포스트-인터넷(Art Post-Internet)에 전시된 '카트야 노비츠코바(Katja Novitsckova)'의
'근사치 Approximation XIII', 2014, Digital print on aluminum cut-out

이 전시에 참여한 '카트야 노비츠코바(Katja Novitsckova)'는 인터넷에서 찾은 동물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알루미늄 조각에 디지털 프린트를 한다. 동물의 이미지는 카메라 렌즈와 관객의 눈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면서 작품이 설치된 오프라인 공간과 동물의 서식지가 연결 고리를 갖게 된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신체와 자연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오프라인 미술관에 전시된 모습을 보면 창의적이어야 할 예술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인터넷상의 작업들이 회화, 조각, 사진, 영상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트 인터넷'은 오프라인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기보다는 인터넷이 삶의 조건이 된 상황에서의 변화에 가깝다.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인 '진 맥휴(Gene McHugh)'는 '포스트 인터넷(Post Internet)'에서 "인터넷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진부해졌다"고 진단했는데, 이렇게 인터넷이 진부해진 상황에서 자신의 영역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단순한 유행으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오랫동안 담을 쌓고 지냈던 뉴미디어아트와 현대미술이 조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도메니코 콰란타(Domenico Quaranta), 미술비평가·큐레이터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인터넷상의 예술을 미술관 안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인터넷의 개념을 확장하니 다양한 장르와의 호환성도 높아졌다. 물론, '포스트'라는 접두사가 붙으면서 아직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혼란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층위를 포함하지 못하는 용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현대미술과 조우하려는 시도를 목격한다면 포스트 인터넷 아트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제 인터넷 없는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터넷은 하나의 도구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사회 구조나 문화의 작동 방식까지 변화시킨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는 인터넷이 삶의 조건이 된 현실을 배경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작품 전면에 배치한다. 이제 미술 전시는 원본과 복제본을 오가며 인터넷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포스트 인터넷 아트의 확장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