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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이 전통을 만났을 때


전 세계에 걸쳐 전통건축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었다. 왕들이나 귀족들이 살던 궁궐부터 서민들이 사는 일반적인 주거 형태까지, 전통건축은 그만큼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하다. 전통건축을 보면, 그 지역의 기후부터 지역민들의 무의식적 관념과 문화까지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지역에 따라 전통건축은 오랜 시간 동안 독자적으로 발전해왔지만, 제국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서양의 건축사조가 주류의 흐름에 편성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건축가들의 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이 전 세계에 걸쳐 영향을 주게 되면서 지역과 상관없이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지게 되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시의 건물


그러나 현대사회로 접어들게 되면서, 전통건축의 지속가능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전통건축은 지역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던 인간들의 산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가공되지 않은 주위의 재료들을 이용하여 환경친화적인 면이 많다. 또한, 선대의 사람들과 현대인들을 이어줄 수 있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의 형태도 변한 현대사회에서 맹목적으로 전통건축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적응과정에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이때, 전통건축의 요소와 현대건축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건축물을 구상한다면, 실용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원론적인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과정이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과거에서 지속가능성은 환경적인 차원에서만 고려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지속가능성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존재하고, 세계 전역에 존재하는 혼합 건축물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에서도, 해외에서도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내 사례


원형을 재해석하여 과거와 현재를 잇다 - 가온재


한옥은 한국의 건축사와 토속 건축을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한국 건축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와집은 한옥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자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한옥의 표본이다. 뒤에는 산, 앞에는 물을 두는 배산임수의 원칙부터 시작해서, 공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내부구조까지. 한옥의 여러 요소는 하나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또한, 한옥은 대체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하고, 처마와 같이 한국의 기후를 반영한 외부구조가 있다는 점에서도 자연환경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촌 한옥마을

[Photo : 서울한옥포털]


한옥의 다양한 장점 중에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앞세우고, 여기에 현대건축이 주는 다양한 공간감을 가미한 예시가 바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가온재'이다. 이 주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한옥의 내부, 외부구조를 현대적인 맥락에 맞게 재해석을 한 것이다. 기존 한옥에 있는 '안마당'은 자연을 포용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곳으로 변형되었다. 또한 '루' 밑의 필로티 구조를 확장하고 경사진 지대를 고려함으로써 자연 순응적 면모를 보여주면서 공간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확보하였다. 비록 천연 재료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다각형 지붕과 벽의 타원형 패턴은 각각 전통가옥의 처마와 돌담을 형태적으로 재현하며 기억 '스키마(Schema)'를 불러일으킨다.

가온재의 전경

[Photo : CNN (Jong Oh Kim)]


가온재는 한옥의 '원형(Archetype)'이 가지는 요소들을 현대적 차원에서 건축에 반영한 동시에, 한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현대건축만의 입체적이고 동적인 면모를 융합함으로써 혼합 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기존 한옥과는 달리, 가옥을 외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맞추면서도 내부에 또 다른 자연환경을 설계하여 더 넓은 범위에서 자연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토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지하와 지상의 공간을 확립하여 공간의 이용 가능성을 확장하였다. 다시 말해, 가온재는 기존 한옥보다 더 견고한 구조를 통해 한옥에 담긴 기본적인 사상을 이해하면서도 현대적인 측면을 오랫동안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이는 우리가 한옥의 장점이 현대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보존하고 공유하다 - 윈드하우스


한반도 최남단의 섬인 제주도는 그 위치로 인해 독특한 자연경관과 특징적인 기후를 가지고 있다. 많은 바람과 비, 고온 다습한 기온은 자연히 전통가옥도 다른 곳과는 다른 형태를 띠도록 영향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낮은 구조, 화강암을 이용한 가옥의 벽과 돌담은 강풍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제주도는 예전부터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三多島)'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제주도의 독특한 역사를 반영하는 별명이기도 하다. 

제주도 초가

[Photo : 제주특별자치도 공식 홈페이지]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윈드하우스'는 이러한 제주도의 특징들을 함축적인 건축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여행자들의 주말 숙소 역할을 하는 이 건축물은 전통가옥의 낮은 구조와 돌담을 반영하여 비바람을 막으면서도 사생활 보호를 할 수 있도록 조경을 조성하였다. 주변과 대비되는 중앙의 색다른 건축물은, 여성의 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이 건축물의 외벽을 구성하는 금빛 강판은 제주도 숲의 단풍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삼다도라는 별칭의 의미와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윈드하우스의 전경

[Photo : CNN (sun nam goong)]


윈드하우스는 제주도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자연적, 인문적 환경을 독특한 물리적 형태로 구현함으로써 이들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제주도는 오래전부터 관광지로서 인기가 높았지만, 제주도의 초가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이유로 특유의 모습을 유지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은 서로 매우 긴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이 제주도 사람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자 문화의 토대가 된 것이다. 이를 건축예술로 승화시키고, 현대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를 독창성 있게 보존하는 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드하우스는 지속할 수 있다.  

해외 사례


부분을 합쳐 새로운 순환구조를 만들다 - 모로코 Mohammed VI Polytechnique 대학


아프리카 대륙 북쪽에 있는 모로코는 예전부터 고온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사막의 영향으로 사막토가 전 지대에 놓여있다. 전통가옥 역시 이런 기후를 반영하듯, 주변의 토양과 암석을 사용하여 벽이 매우 두껍고 높은 형태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종종 무어인들의 영향을 받은 아라베스크 양식과 중앙에 전통 정원이 함께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토착 건축이 천편일률적인 모습인 것은 아니다. 한국도 그렇듯, 모로코도 마라케치, 카사블랑카, 라바트와 같은 도시마다 건축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로코의 토속건축


모로코 '벤게리르(Ben Guerir)' 시에 위치한 Mohammed VI Polytechnique 대학은 모로코의 각각 도시건축의 특징을 융합하여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는 형태다. 모로코 정부의 도시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녹색 도시(Green City)'로 선정된 벤게리르 시에서 이 대학은, 지식 클러스터인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모로코 전통가옥의 형태와 색을 재현하면서, 다양한 조형과 확장된 전통 정원의 배치를 통해 역동성을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사막의 자연 조경을 조성하고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는 실외구조를 만든 부분에서도 자연 친화적이다. 

Mohammed VI Polytechnique 대학의 전경

[Photo : Ricardo Bofill Taller de Arquitectura]


Mohammed VI Polytechnique 대학은 모로코에 현존하는 '도시 풍경(City Scape)'들의 상과 고유 자연환경을 융합하여 새로운 도시환경의 방향성을 이끌고 있다. 모로코는 한국과 달리 토속 건축이 도시에 흔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대학은 옛 건축에 대한 재해석보다는 보존과 확장의 의미가 더욱더 강하기도 하다. 예전부터 존재하던 토속건축 양식을 일부 차용하는 면에서는 가온재와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가옥의 원형만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각 도시풍경에 보이는 건축물들, 그리고 자연환경을 응집하여 하나의 또 다른 사회를 만들었다는 차원에서 차이를 보였고, 이것이 미래의 도시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지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경계를 없애고 공존의 장을 세우다 - 캐나다 HOOP Dance Gathering Place


북아메리카 북쪽에 위치한 캐나다는 이민의 역사가 짧은 만큼 현대식 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의 원주민들은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수천 년 동안 그 지역에 살고 있었으며, 부족마다 전통건축 양식이 존재해 왔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전통건축을 서양식 주거로 대체하게 되면서,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보호구역'이라는 곳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원주민 건축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원주민 건축이 201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도 소개되는 등 조금씩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가옥인 '티피(Tepee)'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시에 있는 '모호크 대학(Mohawk College)'에 위치한 'HOOP Dance Gathering Place'는 다양한 테마를 가진 정원과 파빌리온을 합친 종합적인 건축물이다. 각 부족의 장들과 원주민 학생들, 디자이너와 본교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이 파빌리온은 캐나다의 모든 원주민의 통합을 도모하는 목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재료와 건축 방식을 모두 원주민들의 전통건축 재료와 방식을 따랐다는 것이고, 원주민들의 상징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조형화한 것이다. 가령, 파빌리온 위의 원형 철 구조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연도와 계절을 표현하는 방식인 13개의 달과 삶의 철학이 담긴 '메디신 휠(Medicine Wheel)'을 상징하고 있다. 

HOOP Dance Gathering Place의 전경

[Photo : archidaily (Tom Arban)]


HOOP Dance Gathering Place는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원주민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수면 위로 올리고, 더 나아가 모든 민족이 통합할 수 있도록 집합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법으로써 주류 건축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파빌리온은 일반적인 건물들과는 달리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만들어진, 건물과 예술의 경계 사이에 있는 건축물이다. 따라서 많은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단절되어 있었던 사회들을 하나로 연합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장을 만들어준다는 명백한 목적이 바로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전통건축은 전 세계 공통으로 자연과 어우러진다는 점과 고유문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대건축의 접목은 이러한 지속가능성의 방향을 확장과 재해석이라는 방법으로 그 '가능성'을 더욱더 다채롭게 하고 있다. 역사, 문화, 환경, 경제, 사회 등 여러 측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만들기도 하고, 두 영역 이상을 혼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현재에 이런 건축물들이 지속가능성의 방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다면, 미래에는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구체화하여 건축가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도 설계 과정에서 건강한 사회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전통과 현대건축의 융합이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면, 지속가능성의 방식 역시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 참고하면 좋을 자료

What traditional buildings can teach architects about sustainability, CNN

Traditional architecture offers a strong foundation for green building, The Guardian

지속가능한 건축, 아시아건축연구실

[공간 디자인 - 윈드 하우스] 제주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이런가

The Green City of Benguerir

Hoop Dance Gathering Place Brook Mcil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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