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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찾은 전통시장의 혁신


전통시장의 기능과 역할


사전적 의미에서 전통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사회적ㆍ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조성되고,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상호신뢰에 기초하여 주로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를 의미한다. 전통시장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흔한 곳이다. 전통시장은 전 세계를 막론하고 상업과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또한, 많은 물건을 파는 만큼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중심지와 같은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직접적인 역할은 아니지만,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이 집결되는 곳으로서 그 지역의 사회와 환경을 반영하기도 한다.

해외 전통시장의 모습


전통시장의 현황과 개선방안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의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고, 정보화에 주는 '빠름'과 '편안함'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전통시장은 점차 비효율적인 곳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전통시장은 중심지에서도 멀어졌으며 찾는 사람들도,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감소했다. 이에 따라 최근에 전통시장은 "상업기반시설이 오래되고 낡아 개수, 보수 또는 정비가 필요하거나 유통기능이 취약하여 경영 개선 및 상거래의 현대화 촉진이 필요한 장소"라는 정의가 추가되는 등 공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장소라고 인식되고 있다.

전통시장의 지원사업 예산과 매출액

[Photo: 조선일보]


이러한 정의는 현재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당장 한국에서만 전통시장의 수는 2006년 1,610곳에서 2017년 1,450곳으로 줄었고, 가장 큰 전통 시장 중 하나인 남대문시장의 점포는 2008년 1만 1,000개에서 2017년 5,493개로 대폭 감소하였다. 정부는 전통시장의 쇠락을 방지하기 위해 지원사업의 예산을 2006년 1,473억에서 3,609억으로 늘렸지만, 연간 매출액은 2006년 24.9조에서 21.8조 원으로 약 3조의 막대한 액수가 감소하였다. 이는, 현재 상황으로 보았을 때, 전통시장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인 상업 및 유통 기능이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한 원인은 분명하다. 바로 대형할인매장,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는 기업형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증가다. 이들은 상품의 품종도 다양하며, 상품의 값도 저렴하고, 품질관리와 유통과정도 더 체계적이다. 전통시장과는 달리, 사회의 변화에도 빠른 적응력을 보인다. 이 점을 극복할 수 없다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전자가 구현해낼 수 없는 다른 장점을 부각해 손님을 유치해야 한다. 즉, 직접적인 물품을 거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과 문화, 인간과의 상호작용, 심지어는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까지 함께 거래하는 것이 바로 그 대안이 된 것이다.

서울시의 전통시장 재생 계획

[Photo : 서울시]


이러한 변화는 해외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와 주변 국가들을 가게 되었을 때, 전통시장은 기존의 생산물을 사고파는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관광지의 역할과 지역사회문화의 중심지의 역할까지도 수행하고 있는 점을 발견했다. 물론 한국의 주요 전통시장들도 발전을 꾀하며 주변 시설을 개선하고 문화 프로그램과 같은 제도들을 도입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해외의 사례들만큼 공고히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이 차이의 중심에는 바로 '공간에 대한 인식' 이 달랐다는 것이다. 전자는 유형적인 내, 외부 공간과 무형적인 프로그램 기획 방안이 다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이 두 요소가 혼합되어 시스템 자체를 혁신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전통시장을 변화시키고 있을까.



오래된 전통에 현대적인 색을 입히다 - 바르셀로나 산타 카타리나 시장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타리나 시장(Mercado Santa Caterina)'은 바로 공간적 혁신을 통해 크게 성장한 재래시장의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다. 1848년에 문을 연 이 시장은 스페인 내전 시기 이후에 중요한 식량자원의 공급처 역할을 하는 등 오랜 역사가 있지만, 20세기 중후반부에 이르게 되면서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이에 바르셀로나시는 건축사무소인 EMBT에 건축 디자인을 의뢰하였고, 2005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사 전 산타 카타리나 시장의 외부

[Photo : Ajuntamentbarcelona]

공사 후 산타 카타리나 시장의 외부

[Photo : 바르셀로나닷컴]


이 시장에서 가장 상징적인 부재는 바로 형형색색의 불투명과 반투명 세라믹 타일로 이루어진 지붕이다. 지붕의 색은 67가지의 색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시장에서 판매하는 농산물과 수산물 등의 색을 상징하고 있다. 지붕은 그리고 비대칭적 구조로 지어져 시장의 역동성을 더해주고 있다. 기존의 오래된 외벽을 허무는 대신, 기틀을 잡고 있는 카탈루냐의 전통시장 형식을 일정 유지하면서 현대 건축을 혼합한 것이다. 외부에 비해 건물 내부는 변화가 뚜렷해 보이지 않지만, 점포 수를 줄이고 주차장과 식당과 같은 시설을 설치하는 등 효율적이면서도 쾌적한 공간을 조성하였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몇 개의 점포에서는 이메일로도 식품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산타 카타리나 시장의 내부

[Photo : barcelonaturisme]


지붕의 새로운 변신은 재건축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본래 이 시장은 외벽이 시장의 본 건물을 감싸는 폐쇄적인 구조였고, 단색의 삼각형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붕에 곡선이 주는 입체감을 더하고, 다양한 색채를 배치하면서 침체하여 있었던 바르셀로나의 구도심에 활력과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현대적인 색채는 재건축된 지붕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향상된 자연채광으로 인해 한층 더 신선하게 보이는 상품들, 쾌적한 음식점과 아케이드, 그리고 디지털화된 시스템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이들이 혼합하며 넓은 의미에서의 '현대적인 색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혼합된 색채가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중심지를 형성하여 시장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 전통을 재디자인 (Re-design) 하다 – 뉴욕 첼시 마켓


미국 뉴욕에 위치한 '첼시 마켓 (Chelsea Market)'의 역사는 전통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짧지만, 그 공간 자체의 역사는 매우 길다. 1890년대에 지어진 건물은 원래 오레오 쿠키를 제조하던 공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과자 업체가 높은 세금으로 인해 자리를 뜨게 되면서 범죄의 소굴로 잠시 변하게 된다. 1990년대에 한 사업자가 건물을 인수하였고, 건물 내부를 보존한 상태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시장의 모습을 안착하였다.

 첼시 마켓의 전신인 '나비스코(Nabisco)' 과자 공장의 모습

[Photo : Smithsoninan]

첼시 마켓의 외부

[Photo : Wikipedia, photo by Beyond My Ken]


내부 공간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시장 특유의 '빈티지(Vintage)'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에 이용된 송수관은 현재 폭포로 디자인되었고, 부서진 아치 모양의 벽은 독특한 모양새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 구조물은 현대 디자인 원리인 심미성과 실용성이 가미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조형물로 재탄생 되었다. 건축 디자인도 훌륭하지만, 품질이 훌륭하면서도 싼값에 다양한 식자재와 음식을 파는 점포와 식당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통시장 본연의 기능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 시장의 특징이다. 또한, 이 시장은 건물주의 권유로 전체 건물 중 1층에만 설립되었는데,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자칫 진부해질 수 있다는 점을 막기 위해서이다.


첼시 마켓의 내부

[Photo : Theculturetrip, photo by Alex Segre]


시장의 건물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건물이지만, 동시에 시장 설립의 씨앗이 된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공간'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건물주였던 설립자는 이 낯설었을 법한 새로운 공간에 있는 잔존물들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하였고, 시장의 본질적인 기능이 어떻게 공간을 통해 더 활성화될 수 있는지 생각하며 혁신을 추구한 것이다. 비록 건물주는 바뀌었지만, 공간의 디자인에 깊게 관여하며 지역주민들의 선호까지 분석하는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뉴욕 첼시 마켓은 설립 연도가 짧은 만큼 역사가 긴 전통시장보다는 더욱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통이라는 것도 본래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것으로 시작된 것처럼, 이 시장도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전통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미래 전통시장의 가능성을 실험하다 – 로테르담 마크트할


네덜란드에 로테르담의 '마크트할(Markthal)'은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거주공간과 사무실이 함께 있는 거대한 주상 복합 시설이다. 건물은 2004년 도심의 서비스 향상을 위해 입주자의 증가를 원했던 로테르담 지자체의 계획 아래에 유명건축 사무소인 MVRDV에 의해 설립되었고, 2014년에 완공되어 문을 열게 되었다.

마크트할이 생기기 전의 모습

[Photo : Tohetherintransit]

공사 후 마크트할의 모습

[Photo : mvrdv]


침체기를 겪었던 위의 두 시장과는 달리 마크트할은 외관부터 내부 시설까지 철저하게 계획되어 있으며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최적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우선 건물 자체는 채광과 열의 이동, 환기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중앙에서 에너지와 물 사용을 관리한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시장의 벽은 산타 카타리나 시장의 지붕처럼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져 있고, 직접적으로 농산물들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어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아케이드의 넓은 거리와 주차공간, 배달 준비와 같이 소음이 나는 작업을 위한 지하 공간 등은 시장의 쾌적함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치형 건물의 양 측면에 위치한 거주공간들은 시장에서 오는 소음과 냄새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 삼중 유리가 설치되었다.

마크트할의 내부

[Photo : mvrdv]


마크트할이 미래지향적으로 지어지게 된 계기는 로테르담 지자체의 뜻도 있지만, 사실은 로테르담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로테르담은 2차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시의 약 80%가 파괴되었고,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폐허 속에서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건축물들이 세워졌고,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의 도시 중에서도 가장 미래적인 모습으로 재탄생 되었다. 마크트할은 로테르담의 독특한 건축물 중에서도 잘 알려진 '큐브 하우스(Cube House), '블라크(Blaak)역', '펜슬 타워(Pencil Building)'가 모여 있는 블라크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역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마크트할은 유구한 역사가 축적되지 않아도, 후대의 장점을 수용하여 오히려 지속가능한 전통시장이 성립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예시들은 지역만의 특색이 담겨있는 만큼 한국의 모든 전통시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공간과 건축, 그리고 상품과 가치의 거래는 모두 연관성이 있고, 이들의 적절한 혼합이 성공적인 시장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통시장의 시설 개선은 해왔지만, 건축이 통일되지 않아 지역과는 상관없이 천편일률적인 아케이드의 모습들이 많았다. 무작정 시장의 건축을 변경하는 것은 오히려 대형할인마트 규제방안처럼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실행에 옮기기 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의 요소들을 분석하고, 시장이 존재하는 공간이 변형됨으로써 어떻게 주변 요소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면,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은 다시 불기 시작할 것이다.




▶ 참고하면 좋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