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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공공미술과 도시의 유산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시카고는 공공미술과 건축의 도시로 유명하다. 시카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러한 도시의 배경에는 시카고를 제3의 공간*으로 만든 시카고시의 자체적인 노력이 있었다. 현시대의 새로운 문화 플랫폼을 만들려 노력한 시카고의 문화 예술 역사는 어떻게 쌓아져 왔을까.

 

*3의 공간: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직장 이외의 여가와 자유 공간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점차 확장되며, 가장 '도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시카고는 문화 예술이 융성한 도시다. 블루스, 소울, 재즈와 같은 로컬 음악이 유명하며, 길거리에서 피카소, 샤갈 등 유명작가의 공공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시카고도 처음부터 문화 예술로 주목받는 도시는 아니었다. 1980년 이전의 시카고는 범죄율이 높은 도시로 악명을 떨쳤다.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로 알려진 '알 카포네(Al Capone)'와 같은 유명한 마피아 갱이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했을 정도다. 경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정부 차원에서도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서서히 범죄율이 줄어들었고, 도시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러한 변화에 문화예술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시카고 문화 예술의 뿌리가 된 피카소와 샤갈

 

시카고 거리를 걷다 보면 유명한 조형물을 자주 볼 수 있다. 그중에는 세계적 거장인 피카소와 샤갈의 작품도 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시카고시에 선물한 <더 피카소>

[Photo: ©dandeluca]

 

시카고 시청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조형물의 이름은 <더 피카소(The Picasso)> 또는 <시카고 피카소(Chicago Picasso)>다. 피카소의 그림 <여인의 두상>이 이 작품의 기반이 되었을 거라 추측된다. 더 피카소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1967년 시카고시에 선물한 작품으로, 당시 시청 설계를 맡았던 건축설계사 '윌리엄 하트먼(William Hartmann)'이 작품 제작을 의뢰했다. 더 피카소는 시카고 최초의 공공 설치미술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시청 앞에 전시하면서 시카고는 문화예술 도시로 발전할 토양을 다지고 현대미술의 허브가 될 시작점을 만들었다. 

 

시카고 체이스타워 앞에 설치된 마르크 샤갈의 모자이크 벽화 <사계>

[Photo: Chicago sun times]

 

시카고에서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사계(Four Seasons)>라고 불리는 이 모자이크 벽화는 샤갈의 프랑스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후 시카고 '체이스 타워(Chase Tower)' 앞으로 옮겨졌다. 작품을 옮겨 온 후에도 샤갈은 직접 디자인을 수정하며 손본 끝에 1974년 작품을 완성했다. 사계절을 담은 이 작품은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삶의 모습을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표현한다.

 

이처럼 시카고는 60, 70년대를 거치며 문화 예술 도시로 나아가는 토양을 다졌다. 그 중심에는 세계적 작가 피카소와 샤갈이 있었다. 시카고는 완성된 문화적 토대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품은 도시가 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시카고시는 많은 작가들과 공공 미술 협업을 하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도시만의 고유한 색깔을 더욱 진하게 만들어 갔다.

 

 

 

 

시카고를 현대미술의 허브로 발돋움하게 한 작품들

 

1. Cloud Gate (The Bean)

'클라우트 게이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피카소와 샤갈의 색을 품은 시카고는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현대미술의 도시로 성장한다.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가 바로 그 작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공미술품 중 하나인 클라우드 게이트는 콩같이 생긴 모양 때문에 붙여진 '더빈(The Bean)'이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하다. 초대형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조형물은 거울처럼 관광객과 주변 환경 전체를 담아낸다.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는 이 작품을 통해 시카고 시민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커다란 조형물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 시카고 시민뿐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이 이를 보기 위해 찾아오면서 작품이 설치된 '밀레니엄 파크(Millennium Park)'는 시카고의 명소가 되었다. 클라우드 게이트는 도시의 매력을 한층 더 살려주는 공공 미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 Crown Fountain

'크라운 분수'에서는 다양한 시카고 시민들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는 2004년 작가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에 의해 만들어졌다. 유리 벽돌과 LED를 결합한 이 작품은 천여 명의 시카고 시민의 얼굴과 함께한다. 거대한 유리 분수에서는 시민의 얼굴이 나오며 5월에서 10월까지는 폭포가 뿜어져 나온다. 천여 개의 얼굴을 통해 시카고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다. 시카고시에서는 이 작품에 나오고 싶어하는 지원자를 신청받고, 그중에서 뽑힌 사람들의 얼굴을 특수 카메라로 영상화 한다.

 

크라운 분수의 작가 플렌자는 "공공 공간에 있는 미술은 그 도시 안에 있지 않은 무언가를 알려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플렌자는 작품으로써 그 도시 안에 있지 않은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플렌자는 천여 명의 시민의 다양한 얼굴을 LED 화면 분수와 함께 물, 빛, 사운드, 비디오 등 다양한 감성을 자극하는 형체로 빚어냈다. 크라운 분수에서 '물'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쏟아지는 폭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시카고에 '화합'과 '공존'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크라운 분수를 찾은 시카고 시민들은 한 공간에서 역사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며, 커뮤니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클라우드 게이트와 크라운 분수가 있는 밀레니엄 파크는 시카고의 새로운 문화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건축의 도시, 시카고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로 유명하다. 시카고의 건축은 조화를 중시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건축을 통해 사회 복지 확대 및 일자리 창출 등 지속가능한 개발이 이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공립학교, 공공기관의 건물 등은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하는 공공 건축의 가치를 지향한다. 

하롤드 워싱턴 리브러리 센터(Harold Washington Library Center),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모습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카고의 건축물들은 시카고 강을 둘러싸고 있다. '마리나 시티 타워(Marina City Tower)', '시카고 워터 타워(Chicago Water Tower)'가 대표적이다. 독특한 외관으로 '옥수수 빌딩'이라고도 불리는 마리나 시티 타워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60층짜리 주상복합 쌍둥이 빌딩이다.

마리나 시티 타워의 모습

[Photo: Chicago Architecture Center]

 

마리나 시티 타워는 건축가 '골드버그 애삭스(Goldberg Assoces)'에 의해 만들어졌다. 1968년 완공 당시 시카고 내 최고 밀도의 주거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일조량과 조망권을 가져, 시카고의 고층 주거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중요 건물이다. 또한 반듯한 건물을 거부하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는 애삭스의 건축 철학이 빚은 걸작이기도 하다. 직각을 찾을 수 없는 획기적인 디자인은 강가라는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 특징이다. 이는 바람의 도시로 불리는 시카고에서 풍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한 장치기도 하다. 마리나 시티 타워는 상류층을 위한 고급 맨션이 아닌, 서민을 위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마리나 시티 타워의 설립 목적은 중상층과 서민을 위한 임대 아파트였다. 철학과 예술성을 담은 공동체를 위한 건축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미국 건축가협회 뉴욕 지부가 수여 하는 건축상을 받을 수 있었다.

 

회복과 희망의 상징인 시카고워터타워의 모습

[Photo: Britannica]

 

시카고 워터 타워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실리적인 기능을 가진 동시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타워가 가지는 역사성과 상징성도 높게 평가받는다. 1871년 일어난 시카고 대화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후, 시카고 워터 타워는 도시 재편성의 시작점이 되었다. 도시 회복의 상징이자, 시카고 시민들에게 여전히 희망의 증거로 남아있다. 

 

 

 

예술이 도시의 희망이 되다

시카고의 한 재즈바

 

시카고는 튼튼하게 쌓아온 문화적 토양을 토대로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시카고는 뮤지컬, 재즈, 건축물 등 수준 높은 문화 예술로 유명한 국제도시다. 이런 시카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871년 시카고에 대화재가 발생해 도시 전체가 불타버린 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상징적인 건축물들이 탄생하고 희망의 씨앗이 뿌려졌다.

 

예술로부터 영감을 얻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시카고의 행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카고의 예술 공동체 '파이어버드 커뮤니티 아트(FireBird Community Art)'는 시카고의 위기 극복 DNA를 잘 보여주는 지역 예술 공동체이다. 이 단체는 매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유리공예 힐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내 소외된 이웃과 소수자들, 학교폭력 피해자, 상이군인, 해외 이민자들의 상처 회복을 돕고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Photo: Firebird Community Arts]

 

'프로젝트 파이어(Project Fire)'는 이 단체의 대표적인 힐링 프로그램이다. 시카고 지역의 총기 난사 피해자 청소년들을 위한 유리 공예 치유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들은 유리 공예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며, 자존감을 회복한다. 이러한 공동체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은 커뮤니티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문화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파이어에 참여중인 학생들

[Photo: Firebird Community Arts]

 

시카고는 1871년 대화재를 겪었다. 막대한 물리적인 피해가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피해였다. 시카고 시민들은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이 모습은 사실 2020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로 국가적, 세계적 재난을 맞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은 태도와 의지가 모여 이뤄진다.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가치와 휴머니즘을 다시금 떠올리는 게 아닐까.

 

 

 

 

공공 미술은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며, 커뮤니티의 장을 연다. 시민들은 지역의 공간과 공동체를 통해 영감을 얻고 함께 연대할 용기를 얻는다. 팬데믹이 길어지고 있는 요즘, 공공미술과 공동체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몸은 멀어지지만, 오히려 소통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도 지역 공동체 네트워크를 이어가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한다. 시카고가 대화재라는 큰 위기를 겪고도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국제적인 문화 예술 도시로 성장했던 것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문화 예술의 힘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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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하면 좋을 사이트

Choose Chicago

Firebird Community Arts

GoUSA의 '일리노이주 시카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적 건축물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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