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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구, why를 묻다] 도시 공간의 틈 사이, 역사를 붙잡다

 

 

 

#우리가 역사를 습득하는 방식

 

'불국사', '석굴암.'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이름들. 내가 살던 도시에서 가까운 타 도시의 명소이자 학창 시절 현장학습 장소로 자주 언급되던 곳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지만, 머릿속에는 다른 건 다 빼고 여섯 글자만이 남았다. 아이들에게 현장학습은 그저 놀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의미는 금세 잊혔고, 곱씹어 볼 시간도 없이 스치듯 희미한 잔상으로 남았다.

 

불국사

 

그럴 때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단 한 번이라도 의문을 품거나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쏟아 내는 정보를 받아들이기에만 바빴고, 주체적인 탐구의 필요성은 못 느꼈다. 현장학습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아, 뭔가 시험에 나올 만큼 중요한 건 맞는데, 앉아서 책 보는 대신에 이렇게 돌아다니니깐 좋네' 딱 이 정도였던 것 같다. 돌아와선 현장에서 봤던 것은 까맣게 잊고, 교과서를 보며 처음부터 다시 설명을 읽고 외웠다. 성인이 된 이후 역사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와 중요도가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현재와는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고 있으며, 미래엔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

 

 

# 현재의 도시공간은 과거의 연속 선상에 있다

 

이렇게 현장학습과 역사의 의미를 언급한 이유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의 장소를 설명할 연결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장학습 장소는 주로 수업 시간에 배우는 특정 역사적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광화문, 경복궁, 창덕궁 등은 조선 시대나 일제 강점기와 결부된다. 훼손된 유적지는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복원된다. 그동안 틈 사이로 짧게나마 존재했던 역사는 미처 알기도 전에 묻혀 버린다. 그렇게 흘러간 역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배운 적도, 들은 적도 별로 없는 사라진 시간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현존하는 도시공간과 연결해 볼 순 없을까?

 

 

평소 해방 이후부터 1970년 경제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전후 10년의 역사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서 생활 반경 안에 존재하는 도시의 조직(공간)과 연관성을 찾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 결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방치되어 있거나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곳들을 여럿 발견했다. 특히 6.25 전쟁 이후 휴전 상태의 한반도에 흐르던 긴장감과 그와 관련된 군사정권의 권력과 이면을 보여주는 흔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지금의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먼 과거로 보이지만, 사실 현재의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이러한 흔적은 왜 생겼으며, 아직 그것들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음을 던지고 또 던져 본다.

 

 

# 여의도 공원의 장소적 의미

 

나에게 여의도 공원은 한강공원과 함께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중성을 느끼게 했던 곳이다. 상경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어딜 가나 사람으로 넘쳐나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의도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나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서울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기분에 취해 한동안 그곳에 멍하니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여의도 공원의 또 다른 숨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은 이제 내게 그저 사는 도시가 아닌, 어린 시절 현장학습을 떠났던 장소 같은 도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 여의도에는 무슨 비밀이 있었을까?

 

 

지도상의 여의도 공원은 마치 길을 잘 닦아 놓은 듯 쭉 뻗어 있다. 종종 선형으로 조성된 공원이 있기는 하지만 흔한 형태는 아니다. 섬을 감싸고 반으로 자르듯 만들어진 여의도 공원은 여태 우리가 보던 공원과는 다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저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던 이 섬은 한때 특정 조직의 권력을 상징하는 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1974년 6월 5일, 여의도

[Photo: 서울스토리]

 

여의도는 한강에 홍수가 나면 잠기는 섬이었지만, 서울과의 접근성 때문에 일제 강점기부터 비행장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여의도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 공군의 비행단이 존재했으며, 최전방 기지로 운영되기도 했다. 잦은 침수로 인해 결국 비행장도, 공군기지도 이전하였지만 제방 공사로 침수 문제가 해결되며 기존 비행기 활주로는 '5.16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지게 된다. 당시 위성사진을 보면 해당 구역이 까맣게 칠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는 당시 여의도 광장이 여전히 군사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장에서 5.16 광장으로 바뀐 여의도 광장은 군사정권의 선전을 위한 대광장으로 사용되거나 제5 공화국 당시 3S 정책*과 더불어 '국풍 81*'같은 각종 국내, 국제 행사를 개최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이용되었다.

 

*3S 정책: 스크린(Screen: 영화), 스포츠(Sport), 섹스(Sex)에 의한 우민 정책. 주로 독재정권이 많이 사용하는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국풍 81: 전두환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앞두고 군사 정권에 대한 학원가의 저항을 약화하고자 기획했던 대규모 문화예술축제.

 

1981년 여의도 광장의 모습

[Photo: 울시사진아카이브]

 

국풍 81 행사 당시 모습

[Photo: 경기도멀티미디어]

 

1981년 국군의 날 행진 모습

[Photo: e영상역사관]

 

현재 여의도 공원은 녹음으로 가득하고 호수도 조성되어 있지만, 광장으로 사용될 당시만 해도 위의 사진 속 풍경처럼 거대한 아스팔트가 펼쳐져 있었다. 굉장히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목적으로 공간이 형성되고 사용되는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여의도 공원의 변화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왜 그럴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혹여나 지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섰다.

 

 

# 과거의 거대한 역사의 흔적들이 현재도 남아 있을까?

 

비행장의 흔적은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공원이라고 하기엔 그늘 하나 없이 넓게 펼쳐진 콘크리트, 하늘 높이 우뚝 솟은 태극기 하나, 그 옆에 세워진 공군 창군 60주년 기념탑. 굳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때마침 그와 연관된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1945년 11월 23일, 환국하는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을 태운 군용기 한 대가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했다. 현재 여의도 공원에는 그들이 탑승한 군용기와 동일한 기종의 C-47가 설치되어있고, 콘크리트 바닥에는 '70년 동안의 비행'이라고 적혀 있다. 이 전시를 보고 여의도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면, 이곳의 변화 과정이 좀 더 잘 보인다.

 

 

비행장이었다가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행사를 거대하게 치렀던 광장. 현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분위기가 온통 에워싸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 지형적인 땅의 형태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걷는 내내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는 잔디밭과 수풀, 나무, 군데군데 놓인 조형물들이다. 나름대로 특정 콘셉트로 조성해두었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워두면 자연스럽게 녹지가 형성될 텐데, 마치 뭔가를 감추려 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 대규모 축제를 벌였던 국풍 81이 떠올랐다. 공원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졌다.

 

 

 

# 여의도 환승센터의 비밀, 지하 벙커

 

쫓기듯 달려 나온 여의도 공원 밖에는 거대한 버스 환승센터가 있었다. 마포대교를 건너 이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면 마치 거대한 광장을 거닐 듯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오곤 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마다 콘크리트만의 묵직함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얼른 버스를 타고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원 안에서도, 환승센터에서도, 여전히 그 기분이 이어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맞은편에 위치한 유리 구조물에 시선이 닿았다. 과연, 이것의 정체는 뭘까?

 

 

다름 아닌 이곳은, 2005년 버스 환승센터 공사를 하던 도중 발견된 지하 벙커다. 발견 당시 서울시는 이 공간이 형성된 목적과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러 기관에 문의하였지만,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2013년에는 미래유산으로 지정, 2015년에는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공간에서는 발견 당시 벙커의 모습을 보여주며 역사의 전개와 시대 상황을 바탕으로 추정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지하 벙커 발견 당시 사진

[Photo: 서울시립미술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여의도는 한때 비행장이었고, 군국의 날 대규모 행사가 열린 곳이었다. 휴전 상태긴 했어도 북한과의 관계에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던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그곳에 벙커가 조성된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현재 지하벙커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인 '세마(SeMA) 벙커'라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존재의 의미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긴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전쟁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는데 그 상황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도시 서울에서도 생활과 밀접한 곳곳에 군부대가 있지만, 그 영향력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2002년 6월 29일에 발생했던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 그 당시 연평도에 살던 주민들은 위기를 느꼈겠지만,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던 우리에게는 같은 대한민국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 현세대에게 지하 벙커는 어떤 공간으로 다가올까?

 

 

지하 벙커의 존재를 알면 알수록 발견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었던 2015년에 이곳에 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문 당시 벙커에서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전시보다는 벙커라는 공간 자체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입구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벙커와 관련된 전시가 아닌 이상 작품이 설치된 상태에서 공간 자체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어둡고 컴컴한 지하로 내려가는 기나긴 계단과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이곳이 지하 벙커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세마 벙커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해당 전시는 현실과 허구의 시간이 동시에 공존하는 '조형적 상상의 공간'을 예술작품과 음악, 퍼포먼스, 조명 디자인을 통한 연출로 보여준다고 했다. 아쉽게도 퍼포먼스 공연은 이미 막을 내린 상태였고, 작품 감상 시간이 주어졌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작품들이 되려 공간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방해요소로 느껴졌다. 상상되지 않는 무감각 속에서 벗어나려 애쓰다 보니 어느새 출구로 나와버린 나를 발견했다. 원래 벙커에 존재하는 출구는 총 3개이고, 넓은 공간과 함께 VIP실도 있으며, 이 두 공간이 연결되는 통로 같은 것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보이지 않았다. 물음표만 던지다가 툭 하고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뒤를 돌아 내가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안이 보이지 않도록 시선을 가로막는 벽, 비상구 화살표. 이것 역시 벙커 특유의 구조일까? 출구로 향했던 길이 벙커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버렸다. 파란 조명으로 물든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 벙커가 생기던 그 시절을 상상해보기 딱 적당한 순간이라 느껴져 눈을 감았다.

 

전쟁이 끝나고 기나긴 휴식기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돌던 한반도. 북한 무장공비들이 단숨에 청와대를 기습했던 사건으로 그 불안감은 절정을 이뤘고,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내부의 적과도 싸워야 했던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되, 서울의 깊숙한 이면에 존재하게 했다.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이 공간을 사용하게 될 주인공이 나였더라면 어땠을까?

 

지하 벙커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시간은 채 오분이 걸리지 않는다. 벙커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모습은 역사의 축에서 벗어난 틈 사이에서 흩어지고 잊히고 사라져 묻혀 버린 역사같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역사를 품은 도시 공간이 미처 빛을 발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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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하면 좋을 사이트

서울시립미술관 - SeMA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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