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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필요 없는 곳, 을지로 방산시장

방산시장 

[Photo: ©남오일]


청년 예술가의 작업으로 조명하다

작은 대한민국, 방산시장



방산종합시장은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에 자리한 재래시장이다. 동 이름의 낯설음은 우리가 '방산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접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을지로 4∙5가와 청계천 사이의 방산시장은 청계천 쪽으로는 광장시장, 을지로 쪽은 중부시장과 마주 보고 있다. '종합포장 인쇄타운'을 표방하는 인쇄 및 포장 전문시장이지만, 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구하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며 지역 산업들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방산시장은 여전히 작은 가게들의 활발하고 유기적인 연결로 움직이고 있다. 그 원동력은 다양한 모양으로 엮인 산업군과 상인들, 그리고 그곳을 지켜오던 사람들일 것이다. 


최근 을지로라는 지역 자체의 숨겨진 모습과 개성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방산시장은 무언가 그 시선의 바깥으로 벗어난 듯하다. 하지만 5명의 청년예술가는 방산시장이라는 지역성과 특수성,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려 한다. 청년예술가로서 방산시장을 새롭게 발견하는 예술 작업을 위해 방산시장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 이유다. 이들은 기획 단계부터 꾸준히 모여 의논을 거듭하며 방산시장에서만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을 찾고자, 다른 여러 시장과 함께 방산시장을 탐방하고 상인들을 만나며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5인의 청년 예술가: 가운데를 중심으로 남오일, 김민혜, 해방해방(박현주, 이연우), 조원 (시계 방향)


이들 다섯 명은 서로의 작업과 신념의 이해가 전제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했다. 방산시장만의 매력을 찾는 과정에서 각자의 작업에서 조명할 부분도 발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방산시장에서 사라질 것들에 관한 고민도 현재 진행형이다. 


방산시장의 중심은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경함을 자극하는 것은 '을지어린이집의 폐원'이었다. 방산시장 안의 거친 산업, 그리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을지어린이집은 일과 놀이의 양면성을 더욱 드러내는 중요한 존재였다. 청년예술가들은 상업을 존중하되, 그 안의 동심을 발굴하고 연계하는 작업을 펼치게 됐다. 그렇게 '방산탐구박스'가 시작된다.



방산시장의 모든 것을 담다!

"방산탐구박스"



<방산사진관-현상소> 남오일


"일은 영원한 숙제 같아요. 이 일을 안 했으면 국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다산팩 상무 오재형


"30년째 방산시장에서 염색 일을 하고 있는데, 점점 방산시장에 관한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일신염색 사장 조성표


"아홉 식구가 11평에서 함께 살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딸의 이름에서 '은주'를 따오고, '정'을 나눈다고 해서 '은주정'이랍니다."

은주정 식당 사장 김진숙


'방산사진관'에서 상인들이 사진 촬영 전 함께 나눈 대화들이다. 방산사진관은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로 돈 대신 '시장에서의 삶과 에피소드'를 받는다. 사진과 삶을 교환하며 방산시장을 터전 삼은 사람을 탐구하고, 이들의 역할을 존중하며, 숨겨진 가치를 기록하는 운영 방식이다. 이미 사진관에 차곡차곡 쌓인 다양한 이야기의 수도 제법 된다. 


사진관의 주인인 '남오일'은 따뜻한 시선으로 구석을 밝힐 줄 아는 작가다. 우리 시대의 평범하고 소외된 인물의 사진을 지속해서 찍어왔다. 그는 방산시장 내에 사진관을 접점 삼아 상인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사진을 찍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방산시장에서 51년 전통의 식당을 운영하는 영심이네 식당 '유영분' 사장님은 최근 대형면허 취득에 성공하셨다고 한다. 상인들은 먹고 살기 바쁜 현생에도 작가와 대화하는 시간, 자신을 기록한 사진을 갖기 위해 방산사진관을 찾는다. 이렇듯 소소하지만 생생한 상인의 삶과 시각적 기록물(사진)이 교환되며 지역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축적되고, 사람에게는 지역과의 소속감이 형성되며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단단해져가고 있다.  



<첩첩방산-지게꾼 프로젝트> 김민혜

방산시장의 마지막 지게꾼


방산시장 길목에는 '종합포장 인쇄타운'이라는 커다란 표지가 걸려있다. 복잡한 인쇄소 골목만큼 다양한 업종들이 포진해있으며, 산업의 연결 또한 유기적이다. 물론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방산시장 일대는 청계천 지게꾼들의 본거지였다. 공장과 식자재 상가의 일감을 지고 나르는 것은 지게꾼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시장 곳곳에 엘리베이터와 신식 건물이 생기면서 지게꾼의 자리도 사라졌다. 현재 방산시장에 남은 지게꾼은 단 한 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 곳곳에 있는 노후된 건물과 폭 좁은 골목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나를 수 있는 이는 그 지게꾼뿐이다. 


유일하게 맥을 잇는 방산시장의 마지막 지게꾼 아저씨는 40년 차 프로다. 처음 지게꾼으로 일을 시작할 때의 수당은 육십 원. 그 비싼 짜장면을 서너 그릇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지금은 한 번에 80kg 무게를 지고 네 층의 계단을 오르내려도 기본요금이 5천 원, 즉 짜장면 한 그릇 값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지게꾼으로 왕성히 활동하신다. 지게꾼이야말로 방산의 모든 산업과 상인을 연결하는 접점의 주민일 것이다. 방산시장 최후의 지게꾼으로서 그에게 방산시장은 무엇일까. 그 대답을 '김민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작가의 '첩첩방산'은 지게꾼의 지게에 쌓인 수많은 짐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그동안 영상을 통해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담고, 이를 기반으로 퍼포먼스를 구성해왔다. 그가 접하는 환경과 작업에서 자신이 결과물을 만들거나, 참여자가 직접 창작하기도 했다. 작가는 얇은 몸체 위로 산더미 같이 쌓인 짐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작은 지게 하나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연결, 그리고 방산시장의 흔적들을 지게꾼에게 듣는 이야기로 담고자 한다. 


<방산놀이기구> 조원

조원 작가를 포함한 모두의 영감, 을지어린이집


'조원'은 레진∙목재∙섬유∙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다. 이성과 판타지, 빛과 색, 거침과 순수, 기성세대와 현세대 등 대척점을 이루는 개념이 그의 작업 원천이다. 조소 전공자로서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이 주를 이루는 그에게 방산시장의 산업과 환경은 더욱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위에 언급했듯, 방산시장은 거친 지역 환경 속에서도 어린이집의 동심을 발견하는 등 반대의 대척점이 있는 장소다. 그리고 그 대척점은 유기적인 실타래로 연결되어있다. 


방산시장을 조립하다!


방산시장에는 박스, 공작(쇠를 깎아 수리함), 인쇄, 제빵, 인테리어 등 수많은 산업에 가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동심이 숨겨져 있다. 조원은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유연한 시선과 방식으로 그 동심을 찾아 드러내는 작업을 고민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시장 내 물질들은 모두 방산시장의 '특산품'이다. 그는 시장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물건을 조합한 키트로 누구나 조립할 수 있는 입체물을 제안한다. 레이저 컷으로 구성한 박스 안에 도안이 들어 있는 키트는 받는 이들이 직접 방산시장의 특산물을 만들며 구성하는 하나의 '완성품'이자 '놀이기구'이다. 작은 방산 놀이기구를 통해 커다란 방산시장을 바라보는 즐거운 상상인 셈이다. 




<HOW TO PLAY BANGSAN> 해방해방(박현주, 이연우)

나나인찌, 스쿠이, 고인찌 등 뜻을 유추하기 어려운 '방산어'를 포착하는 해방해방


'해방해방(이연우, 박현주)'의 뮤즈는 을지어린이집의 아이들이다. "어린이들에게 방산시장은 어떤 놀이터였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방산에서 노는 방법을 제안하는 키트 제작'이라는 대답으로 도착했다. 


방산시장에서 놀아보자! 


키트의 첫 부품은 '방산 사전'이다. 방산시장을 조금만 둘러봐도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낯선 단어가 사방에 가득하다. 방산 사전은 이러한 '방산어'를 풀이해주는 일종의 안내서다. 또한, 방산시장은 다른 곳과 달리 특이점과 차이점을 부여하는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 해방해방은 여러 장소들에 상상력을 더한 화보를 제작해, 방산시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놀이 키트의 구성품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굿즈와 스티커 등 방산시장의 개성을 담은 제작물을 더해 지역과 노는 방식의 새로움을 제안한다. 

 

해방해방의 활동 기반은 인쇄 매체다. 지역이 가진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공유하며 주목받지 못하고 숨겨진 부분의 매력을 '인쇄'로서 발견하는 이들이다. 현재 이들의 고민은 방산시장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상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지점이다. 깊은 고민의 성과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수록 방산시장을 둘러싼 우리의 경험도 확대될 것이다. 






청년예술가 5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방산탐구박스라는 주제 아래 상인과 폭넓은 만남을 이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각자의 예술가적인 시선과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외부인은 알 수 없는 방산시장 구석구석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하며 단단한 지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방산), 

[탐구], 

<새로움>

!



청년예술가들은 방산시장 방산탐구박스를 진행하며 예상하지 않았던 기대, 시장 상인들과의 작업, 우리니까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들, 그리고 방산시장의 변화들이 있다고 말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장소나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방산시장을 존중하고 지금 그대로의 가치들을 담는 것. 이들은 방산시장 안에서 사라져가는 것들과 직업에 대해서 작업하고 기록하는 부분의 방산을 만난 것이지, 고치고 변화시켜야 할 지역은 아니라는 명확한 의식을 바탕으로 여러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을지로의 수많은 힙한 장소들 사이로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방산시장. 이곳을 조명해보고 싶었기에 5명의 청년예술가, 방산시장의 산업과 상인들, 중구문화재단이 함께 만들어낼 "방산탐구박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본래 오프라인 전시였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언택트 시대가 되어 랜선팝업전시, 텀블벅 펀딩 등의 여러 채널로 다채롭게 변경되었다. 방산탐구박스의 키트는 텀블벅 펀딩으로 모금된 금액에 따라 100여 개를 제작할 예정이다. 12월부터 진행될 오프라인과 랜선팝업 형태의 전시를 통해, 도시인들이 방산시장의 새로운 재조명에 함께하길 기대한다. 



방산탐구박스 11-12월 일정


관련 SNS 채널

- 랜선팝업전시장 @art.bangsan *11월 말 계정 활동 시작

- 방산사진관-현상소 @bangsan.filmlab


∙텀블벅 펀딩 OPEN: 11/27(금)-12/6(일)

∙오프라인 전시 OPEN: 12/2(수)-12/4(금)

∙랜선팝업전시 OPEN(인스타그램): 12월 초 예정



Local to Seoul 

서울문화재단의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서울 각각의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정체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발견한 '로컬'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서울 X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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