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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OULive] 귀를 기울이면



귀를 기울이면


 김지경(튠웍스 대표)  에디터 지은경  사진 조성현,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내 직업은 어쿠스틱 컨설턴트, 혹은 어쿠스틱 디자이너다. 공연장을 설계하거나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 때 소리가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 즉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소음을 차단하고 실내공간에서 적당한 울림을 만들기 위해 흡음과 반사를 설계하는 직업이다.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소음 진동 과목을 특히 좋아했던 나는 대학 때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으로 소리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지하에 연습실을 얻었는데, 방산시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재료를 구입해 흡음과 차음 장치를 설치해보았다. 음향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내 직업을 소개하면, 대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을 하고 나면, 대개 이런 반응으로 이어진다. '아, 그런 직업도 있군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인데다 2017년 영국 『인디펜던트(Independent)』지에도 가장 희한한 직업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희귀하다. 하지만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회적으로도 소리의 중요성이 점점 증대됨에 따라 음향설계사의 역할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공연장뿐 아니라 교회, 사무실과 호텔 등에서도 음향설계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어쿠스틱 디자인이 적용된 곳과 아닌 곳의 차이를 말하자면, 예를 들어 회의실로 쓰이는 공간은 소리의 울림이 3초가 넘으면 명확한 의사전달이 어려워진다. 또 공연장이나 연극 무대의 소리는 멀리 있는 관객에게도 빠짐없이 잘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침투하는 작은 소리까지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이와 같은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그 효용성을 잃게 된다. 전용 공간에서 열리지 않는 콘서트나 공연 등에 음향 컨설팅이 필수 요소로 작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기 이전, 높은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이전의 서울은 어떤 소리들로 채워졌을까?  우리는 서울의 옛 모습은 자주 상상하지만 어떤 소리를 가진 장소였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소리가 채우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한 도시가 가진 소리가 어떠한지, 또 내가 머무는 장소들의 소리는 어떠한 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나는 서울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소리들을 발견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기계적인 소리나 인위적인 소리에서 벗어난, 고요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고요함과 적막 속에서 비로소 들리는 서울의 진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곳을 소개한다.   






약현 성당


서소문 성지를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한 약현성당. 이곳으로 오르는 길에서는 남대문의 자태도 감상할 수 있다. 명동성당보다도 6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은 1892년, 서소문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세워졌다. 성당을 오르는 길목이 온통 나무들에 둘러싸인 까닭일까, 아니면 100년이 넘는 시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까. 이곳에 들어서면 외딴섬에 들어선 듯 고즈넉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내 나무 위로 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작은 성당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짧은 명상을 한 듯 마음에 고요한 평화가 깃든다. 


A. 중구 청파로 447-1

T. 02-362-1891




팔각정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느끼고 싶을 때, 그 파란 하늘 아래 놓인 서울을 바라보고 싶을 때, 팔각정을 찾는다. 북악스카이웨이의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오르는 길은 서서히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360도로 서울을 감상할 수 있는 데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보니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마치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평창동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을 선사한다. 


A. 종로구 북악산로 267 북악팔각정

T. 02-725-6681




안산둘레길


서대문구에 위치한 고도 295m의 안산은 정말이지 놀라운 산이다. 다양한 생명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자 인왕산과 백악산을 마주하는 나지막한 산으로, 산의 곳곳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는 산책길을 선물한다. 안산을 조금만 깊이 들어서면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나게 된다. 평소에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나무여서일까, 이 나무들 사이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들뜬다. 안산둘레길은 서울의 거대한 소음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차단되는 곳이다. 소음이 사그라들면 이내 새소리와 바람소리, 등산객들의 소곤거림이 귓가에 슬며시 찾아온다.




종묘


조선 왕조의 사당 역할을 했던 종묘. 경복궁이나 창경궁에만 드나들었지, 종묘에 들어가 본 서울 시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란스러운 종로 거리와 고작 담 하나 정도의 경계만 두었을 뿐인데, 종묘의 마당 한가운데 서 있노라면 전혀 다른 시공간에 놓여 있는 듯한 근사한 기분이 들곤 한다. 현실의 소리와 풍경이 단번에 휘발되고, 그 어떤 서울의 소음도 종묘의 정전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식하는 장소만이 가진 어떤 근원적인 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A. 종로구 종로 157

T. 02-765-0195




남산 야외식물원


서울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도시 한복판에 남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남산 야외식물원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서있어 코너를 돌 때마다 다른 풍경이 쉼 없이 펼쳐진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먼 곳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저 아래 보이는 서울은 여전히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남산 은 한낮의 꿈을 꾸듯 조용하고 한적하다. 예전에는 남산에서 참 많은 행사가 열렸었다. 야외 음악당도 있었고 남산골 한옥마을과 국립극장 등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던 곳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자리를 옮겨 갔지만 결과적으로는 남산 야외식물원의 고요함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야외식물원의 벤치에 앉아 빰에 와닿는 바람과 제각기 다른 새소리를 느껴본다. 두 눈에는 화려하고 복잡한 이태원이 들어오지만 귓가는 한없이 고요한 에너지로 채워진다.  


A. 용산구 소월로 323

T. 02-798-3771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리에 관대하다. 그 이유는 시각적인 자극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는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고. 층간 소음에 민감하면서도 막상 아파트를 구매할 때는 소음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는다. 면적과 마감재료만 부지런히 따질 뿐.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정숙하고 고요하게 있을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소리가 중요한 이유는 소리는 곧 사생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소리를 적당히 차단할 수 있어야 하고, 내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야 한다. 이 기본적인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일종의 사생활 침해나 다름없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소리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을 존중하는 풍토가 생기면 좋겠고, 자신이 원하는 소리에 집중해보면서 스스로 고요해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소리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다. 업무 효율과 학업 성취도, 체력과 건강 회복 효과 등 다방면에 걸쳐 소리의 기능과 역할이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많은 소리를 놓치고 살아간다. 이제는, 귀를 기울여보자. 낯선 소리가 귀를 메우고 나면 어느새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색의 풍경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Local to Seoul 

서울문화재단의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서울 각각의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정체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발견한 '로컬'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서울 X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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