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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구, why를 묻다] 지나온 길을 기억하는 동네 브랜딩

 

 

 

  

 

# 동네의 환경, 생각보다 중요하다

 

딱 5년 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고향을 벗어나 무작정 서울로 왔다. 때마침 6개월 단기 인턴직에 합격했다. 그 정도면 서울살이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월세를 내기에 단기 고용이라는 형태는 너무 불안했다. 집을 살펴볼 충분한 시간도 없었고, 선택권도 없었다. 상경한 이들이 그나마 월세가 저렴하다고 하는 신림동에 첫발을 디뎠다. 인턴으로 근무할 회사와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직장과 월세. 누가 봐도 서울 생활의 시작을 말하는 듯 보였다.

 

클럽, 마사지 샵, 노래방이 있는 건물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서울 생활에 적응이 될 무렵 동네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마주했던 풍경만으로도 얼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길 하나만 건너면 먹자골목이 있는 번화가였고 유동인구도 많았다. 그 때문에 거리의 불빛은 새벽녘이 되도록 꺼지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도 한밤중에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탓에 자주 뒤척였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 이래서 사는 동네가 중요하구나. 왜 다들 살기 좋은 환경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지 알 것 같아.'

 

자취방 건물이 있던 골목은 술집과 식당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래방, 술집, 식당, 고시텔, 모텔, 오피스텔, 원룸이 뒤섞여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신림동이 월세가 저렴하다는 건 옛말이었다. 신림동이라고 해도 다 같은 신림동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경한 이들의 첫 정착지가 대부분 신림동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직접 보러 오지 않는 이상 온라인의  한정된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과 소음 속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1년이 지나있었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났다.

 

신림동과 그리 멀지 않은 봉천동으로 이사를 했다.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전 집보다 평수도 넓고, 가격도 더 저렴한 방이 많았다. 온라인 검색보다 실제로 동네를 찾아가면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새로 이사한 동네는 이전과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다.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궁금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여행하듯 돌아다니곤 했다. 동네를 탐험하는 동안 애정이 생겨서 그런 걸까? 2년마다 반복되는 이사를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때 새삼 또 느꼈다.

 

'아, 역시 이래서 동네의 환경이 중요한 거구나.'

 

이사한 동네는 주택 밀집 지역으로 상업지구와 주거지구가 분리된 곳이다

 

 

 

 

# 샤로수길에 찾아온 변화

 

이 동네의 흥미로운 장소 중 하나는 샤로수길이었다. 지금은 핫플레이스가 되었지만,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유명인들이 찾아오고 방송에 몇 번 노출이 되면서 입소문이 났고, 그 덕에 변화 속도는 빨라졌다. 김밥집이 사라지고 편의점이 생겼을 때는 직감적으로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김밥집이 사라진 곳에 들어선 편의점

 

 

샤로수길은 소용돌이치듯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대기업 브랜드 상점들이 길 초입에 자리 잡았다. 구청에서는 이때다 싶었는지 거대한 입간판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가게가 바뀌는 속도가 빨라졌고, 상가 권리금과 임대료가 올랐다. 그런 상황에서도 몇몇 오래된 가게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오히려 새로 생긴 가게들이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고, 또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기업 브랜드 매장이 있는 샤로수길 입구

 

가장 큰 변화가 있는 샤로수길 초입.

샤로수길 형성 초기부터 있던 '봉천예술관'과 가장 최근에 개점한 '리춘시장'이 같은 건물에 있다. 

 


샤로수길의 건물은 대부분 4층에서 5층 정도다. 이전에는 주로 1층을 상가로, 나머지 층은 거주지로 이용했으나,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건물 전체를 가게로 운영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샤로수길의 상권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상황과 맞물려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구청에서 진행하는 동네 브랜딩이다.

 

 

 

#동네 브랜딩,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동네의 이미지나 분위기는 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향후 정책의 방향성과 시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지역은 동네 브랜딩 방향에 꽤 많은 신경을 쓰는데, 사례를 살펴보면 해당 지역의 역사를 강조하는 브랜딩이 대부분이다. 역사라는 것은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이고, 사건의 중요성에 따라 그 무게감도 다르다. 그런데 각 동네의 역사 브랜딩은 특정 시대에만 머물거나 전통, 유구한 역사와 같이 막연하고 고정된 개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샤로수길이 위치한 봉천동의 역사 브랜딩 사례다.

 

 

서울대학교와 관련된 "관악, 민주주의 길 투어", 고려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를 빌려와 시작한 브랜딩 문구 "강감찬 도시 관악",

그리고 최근에 뜨기 시작한 샤로수 길 입간판이 있는 거리의 모습

이 중에서 철거민의 역사를 나타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봉천동이 속한 관악구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 시흥군이었다. 1963년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 때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가 1973년에 신설된 관악구로 편입되었다. 당시 봉천동은 허허벌판이었다. 그런 이유로 60년대에는 도심 불량주택 철거 정책에 따른 이주 정착지가 조성되었고, 1965년에는 수재민 이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혜화동에서 이전해오고,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동네의 분위기가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80년대와 90년대 봉천동은 달동네로 알려졌지만, 재개발이 시작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모습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90년대에 본격적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봉천동의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봉천동의 1966년 모습(위)과 2010년 모습(아래) 

[Photo: 관악구청]

 

 

 

 

자리가 파하면 집까지 데려다줄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나에게 어디 사느냐고 꼭 묻는다... 봉천동요. 아, 거기 신림동 있는 데요? 아뇨. 신림동은 바로 옆 동네예요. 아, 거기! 그래요.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근처예요... 아하, 그쪽 잘 알아요.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하철2호선서울대입구역근처예요"라고 내가 말할 때의 표정과 마치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은 봉천동과 무관한 것처럼 말하던 어투를 쉽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중략) ... 그런데도 아버지는 왜 하필 하늘을 떠받드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일까. 거기서도 아주 높은 곳. 웬만한 물난리에는 끄덕 하지 않는 곳. 다만 어쩌다 한 번씩 물이 새는 곳. ... (중략) ... 나는 봉천동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봉천동에 산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와 내 가족의 궁핍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때로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 조경란, <나는 봉천동에 산다> 중

 

 

도서 『나는 봉천동에 산다』의 저자 조경란은 봉천동에서 나고 자란 작가다. 자전적 소설을 통해 봉천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자신의 감정, 생각들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서술한다. 봉천동에 사는 것이 부끄럽진 않지만 말하는 것은 싫었고, 그곳에 산다고 말하는 건 곧 자신의 가난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수치스럽기까지 했다는 문장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시선 속에 존재했던 봉천동의 이미지는 훨씬 더 부정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뿐만 아니라 봉천동에 살던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조경란 작가는 여전히 봉천동에 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곱지 못한 시선이 존재하지만, 변화하는 동네의 모습이 영 내키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을법한 무언가를 찾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최근 동네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관악구청 맞은편, 처음에는 봉로수길이라고 알음알음 불리던 샤로수길은 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오래된 상점 주인들은 벌써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는 터라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역세권이라는 이유로 우리 집 골목 또한 이웃들이 떠나고 일 년 내내 원룸 공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당의 등나무, 대추나무가 보기 좋았던 집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지하 깊이 구덩이가 파여 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언젠가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집을 팔고 이 동네를 떠나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불안이 가족 모두에게 생겨버렸다. ... (중략) ... 모르는 장소가 많은 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있으니. 내가 작가의 의무라고 여기는, 걷고 보고 듣고 쓰는 일이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걸까."

- 조경란

 

 

2008년 9월 1일, 행정동의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동은 통합되기도 했다. 행정명 변경과 재개발을 시작으로 봉천동의 이미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구청은 대중매체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한 샤로수길 홍보에 나섰다. 최근 들어서는 강감찬 장군을 브랜딩 대상으로 삼아 명예도로명을 만들었다. 지하철역에서 구청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콘셉트에 맞춘 조명과 각종 시설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입간판이 들어섰다.

 

도서관 앞이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강감찬 조형물과 조명

 

 

 

 

# 과거 도심 철거민들의 이주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

 

강감찬 장군 콘셉트 브랜딩,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샤로수길, 그리고 행정명 변경이라는 큰 변화로 봉천동의 풍경도 달라졌다. 하지만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 주변을 잘 살펴보면, 그곳에는 여전히 도심 철거민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면한다. 어쩌면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왜 상반된 풍경들이 존재하는 것인지. 누구 하나 물어보는 이 없다.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지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서로 충돌하고,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한다. 서울 관악구의 역사는 도심 철거민들의 이주로부터 출발했지만, 무관심 속에 과거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말았다. 동네 브랜딩은 감추고 싶은 과거를 지우고, 내세울 만한 역사 속 인물을 자랑하는 것에 치중되어있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진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겉모습만 좋아 보이려 하는 속 빈 강정처럼 느껴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선 곳과 재개발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 한 프레임에 담겨있다

 


그런데 왜 자랑스러운 구의 역사는 항상 오래된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도심 철거민들이 이주하여 쌓아 온 시간 덕분에 현재의 모습에 이를 수 있었다는 전제는 함께 설명될 수 없는 것일까? 왜 늘 자랑스러운 인물, 역사, 지리, 환경만 강조되고 그 과정에서 거쳤던 고난과 역경의 시간은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 그 과정을 통해 현재가 가능했던 건 분명한데, 그럼에도 꺼내고 싶지 않은 순간인 걸까?

 

봉천동 재개발 대상지의 모습

 

 

 

 

# 앞으로 추구해야 할 동네 브랜딩의 방향

 

부정을 통해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의 흔적을 지우는 방법이 있다. 반대로 오히려 그 역경의 시간을 인정하고, 현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두 브랜딩 방법은 전혀 다르다. 우선 동네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동네 브랜딩을 할 수 있다. 또한 주민 스스로가 그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동네 브랜딩의 힘은 주민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가장 좋게 보일 수 있는 것만 고르고 다른 것들을 버리기보다는, 동네에 쌓여온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맥락을 중요시하며, 거기서부터 진정한 동네의 가치를 찾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가치는 절대 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다. 다채로운 동네의 가치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절히 읽어내고, 그 가치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낼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진정한 동네 브랜딩이 아닐까.

 

 



 ▶ 참고하면 좋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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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하면 좋을 도서

관악,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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