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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작별식

텅 비어있던 조용한 무대. 

동대문 연극인이 대사를 읊자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며 고요하던 공연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12월 5일에 남예종예술실용학교 본관 아트홀에서 열린 낭독 공연 <국군의 작별식>의 현장이다. <국군의 작별식>의 주인공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그들마저 세상을 떠나자 남의 집 머슴살이로 전락한 한 가장의 남성이다. 본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부인을 만났지만, 고생길에 동행시킨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며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그와 가족의 관계를 낭독으로 담아냈다. 



<국군의 작별식> 공식 포스터



공연 현장은 연극인들의 리허설과 함께 방역 수칙 준수를 위해 소독제를 마련하고 좌석을 직접 옮기며 하나하나 세심히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분주한 분위기 속에는 오랜만에 공연을 직접 무대에 올린다는 설레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국군의 작별식>은 동대문구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이 6월부터 11월까지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하고 무대에 올린 마중물이다. 극작가 국민성, 연출 최성봉, 협력 연출 장경섭까지 함께하게 되었고, 참여하는 연극인들의 의견을 고루 담아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배우들의 낭독은 현장의 밀도를 채워나갔다



세상에는 각자의 이름으로 명패를 달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도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였고, 아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자기만의 역할을 갖고 있다. 그것에 대한 가치가 사라지는 현상을 짚으면서, 존재감 없이 살다간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위로극이 <국군의 작별식>이다. 동시에 평범함 속에서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헌정하는 따뜻한 공연이기도 하다. 



함께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연습하던 이들 덕분에 <국군의 작별식>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동대문문화재단은 지난 5월부터 미술, 영화, 댄스, 음악, 연극 5개 장르의 COP 모임을 구성하고 꾸준한 네트워킹을 통해 관련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왔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공연계가 일시 정지되어버린 상황에서 낭독 공연이 무대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벅찬 기쁨을 느끼지만, 더 큰 의미는 따로 있다. 동대문 연극인과 동대문문화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서울시 산하의 동대문 연극지부 구축이 이들의 진정한 목표다. 현재 서울시 17개 구 중 15곳에 만들어진 연극지부에서 다양한 연극인이 활동하고 있다. 동대문의 연극인들 또한 지부 창단의 발판으로 <국군의 작별식> 낭독극을 준비했다. 


<국군의 작별식>이 선택된 가장 큰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서로 간의 소통이 단절되고 있는 현시대의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서로가 의지하고, 믿고, 사랑하고, 함께가야 할 최소단위는 가족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극작가 국민성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본다. 공연의 배경에 어떤 계획과 목표가 있었는지, 극작가와 연출가, 배우를 만나 공연 전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봤다. 



공연 준비로 분주하던 현장에서 만난 최성봉 연출가는 짧지만 울림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다



Q. 동대문 연극 지부를 창립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논의해왔는가?


국민성(극작가)  현재 서울시 산하 17개 구의 15개 지부가 만들어졌으며, 동대문구의 지부 창립은 꾸준히 요구되어 왔다. 단순한 친목 도모의 모임이 아니라, 동대문 연극인들의 예술 활동로 만드는 지역문화 활성화와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 개발 등 연극 활성화를 통해 동대문구민의 일상 생활 속 문화예술 향유로 이어지는 것이 목표다. 물론 동대문문화재단 측에서 연극 지부 창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재단과 지속적으로 논의하며 지역 기반의 연극인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 


문경민(연극배우)  동대문 연극 지부가 창립해 연극인들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논의점이다. 또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인 행위를 주민들이 공유함으로써 동대문의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고, 생활과 일상 속에서 연극이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일년간 많은 극장의 문이 닫혔고 공연이 취소됐다. 동대문구 연극인뿐 아니라 정말 많은 예술인에게 어려운 시기다. 특히 상대적으로 중견 연극인들은 제한된 역할과 자리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동대문 연극 지부뿐 아니라 예술인들이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Q. 동대문 연극 지부가 창립된다면 동대문이라는 지역과 예술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국민성  문경민 님의 말처럼 동대문구에서 활동할 기회가 찾아온다. 물론 지역문화를 개발하고 지역민과 소통하는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대문의 주민과 함께 섞일 수 있는 시민 연극 교실이나 청소년 연극 교실, 동대문구 연극제 등이 그 예시다. 동대문 지부가 맡아야 할 역할에 관해 동대문구∙동대문문화재단과 긴밀히 협력하며 논의 중이다. 창립 목표는 1월이다. 아직 함께하지 못하는 동대문 연극인들, 또는 경기도에 지부가 없어서 활동하지 못하는 연극인들이 동대문에 모여 활동하며 내실을 다져나갈 계획이다. 사실 <국군의 작별식>도 동대문구의 문화 발전을 위한 일환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Q. 공연을 위해 연출가가 외부에서 참여했다고 들었다. 외부인으로서 동대문 연극인들과 함께하며 느낀 소감을 듣고 싶다.


최성봉(연출가)  결국은 사람이다. 지부를 창립하려는 동대문 연극인들의 의지가 대단했다. 사실 지부 창립이 쉽지 않기에 이번 공연에서 실연이든 낭독이든 관객에게 최대한 다가가려 했다. 다가옴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동대문 연극 지부가 형성되면 응집력이 생긴다. 응집력은 모이는 인원이 더 많아지는 계기로 이어진다. 그러다보면 작품 차원에서도 대규모 공연이 이뤄지고, 사업 운영이 확장되며, 연극 저변의 확대도 꿈꾸게 된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오늘 공연한 <국군의 작별식>은 완전한 형태의 연극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비대면 공연이 많았고, 연극의 대안이 되면서도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낭독극이 늘어났다. <국군의 작별식>은 낭독극이지만 특별히 동작을 많이 추가했고, 세트만 없을 뿐 연극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배우들과 함께 준비했다. 


낭독은 표현되는 장소와 인물 간의 관계가 다소 한정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약간의 움직임으로 단면성을 없앤 입체 낭독극을 계획했다. 소품을 사용하는 등 무대에서 실연할 수 있는 부분들은 최대한 살렸다. 낭독으로 전달하는 가족의 가치와 이야기를 통해 이곳을 찾는 관객들이 잠시나마 위로받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동대문 바라본 동대문 연극인들은 마치 소풍을 나온 듯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소풍은 가기 전날 밤이 가장 설레는 법이다. 그들의 준비과정을 떠올리며 공연 전날의 모습을 상상했다. 현장에는 연극인들 특유의 에너지가 감돌았다. 이들이 밤낮없이 준비해온 것들을 관객의 가슴에 흘려보내고 소통하며 <국군의 작별식>은 막을 내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공연들. 적잖은 극장의 운영이 정지되면서 예술인과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많은 혼란을 겪어왔다. <국군의 작별식>도 숱한 장애와 거듭된 논의를 거치며 어렵게 추진되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대문문화재단은 동대문에서 활동하는 연극인들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하며 지속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동대문의 연극인들 또한 각자의 예술 활동으로 확장될 동대문의 새로운 변화들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재단이라는 단체가 연극인이라는 공동체와 함께 준비한 <국군의 작별식>은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내년 1월에 모습을 갖추고 주민들과 만날 동대문 연극지부는 동대문구에 어떤 문화예술적 작용을 불러일으킬까. 이들이 연극이라는 매개로 동대문구에서 펼쳐보일 미션과 소통 방식은 분명 동대문의 분위기를 새롭게 환기할 것이다. 동대문의 사람들이 연극을 향유하는 삶, 문화예술을 품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본다.





<국군의 작별식>은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진흥사업 <N개의 서울> 일환으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N개의 서울>은 서울을 이루는 25개 지역에서 각각의 지역만의 '동네 문화'를 발견하고, 또 새로 만들어보는 프로젝트입니다.

동네 예술가, 기획자, 동네의 공간, 동네의 사람들 등 지역 내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이들을 서로 잇고, 협력의 과정을 지원합니다.



Local to Seoul 

서울문화재단의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서울 각각의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정체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발견한 '로컬'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서울 X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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