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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Lucky한가?

영등포아트홀 대규모 공연장 무대에 전시가 펼쳐졌다. 오페라나 콘서트가 열릴 법한 공간은 평소와 완전히 다르다. 소품 대신 작품이 놓이고, 배우 대신 관객이 무대에 선다. 어둠이 깔린 객석을 지나 무대로 오르면 묘한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이룬 다섯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피아노에서는 엇나간 음악이 흘러나오고, 스크린에서는 언뜻 봐선 의미를 알 수 없는 실험적인 영상이 재생된다. 무대 한쪽에는 소파와 안마 의자가, 무대 중앙에는 어딘가로 이어지는 의문의 통로가 있다. 이 기묘한 꿈 같은 전시는 <럭키 영등포>다.


<럭키 영등포>는 서울문화재단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인 「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다. 김준형, 박훈민, 서찬석, 유장우, 한승훈이 참여해 감각, 개념, Work(작업/생업), 서울, 생존의 키워드를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 기획은 우리는 행운아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협업에 앞서 다섯 작가의 공통점과 생각의 교집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물음이었다. 예술가로서 지속적인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행운아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과연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들의 전시는 명제가 아닌 질문으로 남는다. 때로는 답보다 질문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는다. 

어떤 형태로든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생존하고 있는, 

감각개념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Work라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는 우리는 Lucky 한가?


- <럭키 영등포> 전시 서문 중

 

<럭키 영등포> 포스터



이들은 자신을 전시의 기획자이자 작가, 질문자이자 관객으로 칭한다.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관객이 되는 모든 과정이 곧 하나의 프로젝트다. 작품의 개성이 너무 뚜렷해 언뜻 보면 완전히 따로 작업한 것 같다가도, 무대에서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숨 쉬는 전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럭키 영등포>에는 결과물뿐 아니라 다섯 예술가가 함께하는 과정 자체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협업을 위한 협업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다섯 명의 작가가 한데 모여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협업을 해야 했고, 각자가 가진 질문의 주체를 단수가 아닌 복수로 확장해야만 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 우리는 다르지만 또 닮았다.


(서로의) 마음을 들어온 우리는 과정 또한 의미를 가진다는 걸 알았다.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 즉 우리가 감각하고 개념화하는 모든 순간이 우리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행위다.


- <럭키 영등포> 전시 서문 중


 

<럭키 영등포> 전시장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는 한계가 있다. 작가마다 잘하는 것이 다른데, 틀에 맞추려고 하면 제목만 바뀌고 다 비슷한 그저 그런 작품이 나온다. <럭키 영등포>는 말 그대로 협업을 위한 협업을 했다. 공통분모를 가져가면서도 각자 자신 있는 부분을 살렸기 때문에 질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함께 차곡차곡 쌓아간 것들이 작가의 개성을 입은 각각의 작품으로 나왔다.


- 서찬석



무조건 주제에 맞춰 하나의 작품을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친해지고 각자의 작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받았다. 그런 과정 자체가 협업이었다. 작가마다 표현하는 영역이 다르지 않나. 맛으로 표현하면 어떤 작가의 작품은 쓴맛이 강하고, 또 다른 작가의 작품은 신맛이 난다. 단맛이 나는 작품도 있고. 그런 맛을 보며 내 작품의 어떤 부분을 내보이면 더 잘 드러나고, 잘 섞이는지 생각한다. 한 가지 맛이 아니라 다양한 맛이 예상치 못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을 만드는 거다.


- 박훈민 


참여 작가들이 함께 고민을 나눈 시간은 작품에 쌓이고, 이들의 고민과 질문은 전시를 통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며, 작가와 관객은 같은 관객의 입장으로 무대에 서서 질문을 자신의 세계로 확장해 나간다. <럭키 영등포>의 참여 작가와 작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동시대 청년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을 통해 더 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앞에 잠자리가 뒤숭숭한 예술가들을 위하여

김준형, <아차 싶은 휴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가들의 피곤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휴식 시간은 적고, 일은 많고. 과연 우리는 잘 쉬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김준형, <아차 싶은 휴식>, 2020, 안마의자, 해먹, 3인용 소파, 가변 설치, 300x300(cm)


김준형 작가는 우리에게 온전한 휴식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 역시도 자신의 공간에 휴식을 위한 편안한 의자 등을 두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적으로 쉬려고 노력하는 것도 일처럼 느껴졌다. 현실이라는 전쟁터에서 쉼은 환상에 가깝다. 그의 작품은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휴식 공간이지만, 어쩐지 제대로 쉬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높은 천장,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 번쩍이는 빛, 뚫려있는 프레임과 주변의 빈 공간 등은 휴식을 방해한다. 전시 한복판에 노출된 곳에서는 인지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새하얀 안마의자, 해먹, 소파는 이곳에서의 휴식이 찰나의 환상이라는 걸 알려준다. 


현실과 씨름하는 청년예술인들에게 휴식이란 이런 풍경과 같다. 휴식 없이 몸도 마음도 너덜대며 정신없이 달리다 아차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작가에게 휴식은 아차 싶은 휴식이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쉬면 다행이다. 작가는 일과 고민에 파묻혀 잠을 설치는 작가들에게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어처구니없는 휴식을 권한다. <아차 싶은 휴식>은 따뜻함과 냉소를 오가며 청년예술인들이 마주하는 예술가의 생존 문제를 드러내고, 찰나의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불안이 쌓아 올린 몽상의 사운드

박훈민, <불안과 몽상>


작가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의 공통점은 불안이라고 생각했다. 작업이 너무 좋아서 하지만, 동시에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 그런 무의식 속의 깊은 불안을 꿈꾸는 듯한 몽상적인 사운드로 풀어냈다.

 

<Discrete, Indiscrete>와 <Broken Law> 라이브 퍼포먼스 장면


박훈민은 음악과 기술을 결합한 실험적인 현대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작곡가다. 그의 전작으로는 분리와 연결의 균형점을 소리로 찾아가는 <Discrete, Indiscrete> (2018), 법칙을 부수는 감각을 통해 이상을 형상화하는 <Broken Law> (2018), 도시의 소음을 다른 파형의 소리와 합쳐 새로운 소리로 만드는 오디오 비주얼 작업 <Noise of City> (2020)가 있다. 이번 <럭키 영등포>에서는 고전적인 피아노 음악에 불협화음을 내는 소리와 도시 소음을 섞어 불안과 몽상이 뒤섞인 음악을 선보였다.


박훈민, <불안과 몽상>, 2020, Stereophonic Audio, 7min 26sec


박훈민은 예술가들이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히며 느끼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갔다. 연주자 없이 덩그러니 무대 위에 놓인 피아노 옆 스피커에서는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씩 뒤틀린 음악이 흘러나온다. 주선율인 피아노 소리에 엇박의 피아노 건반 소리, 페달이 삐걱거리는 소리,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과 목소리, 합성된 노이즈가 쌓이며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포근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흔히 예술가를 몽상가라고 부르지만, 작업이 곧 생업인 작가에게는 낭만보다 불안이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불안과 몽상>은 작가들이 발붙이고 사는 현실의 일상적인 소음에 안정적이고 풍부한 화성의 피아노 음악, 이를 흔들어놓는 불안을 반영한 미묘한 불협화음과 노이즈를 더해 현대 청년예술인들의 불안을 포착하고, 몽환적인 사운드로 그 불안과 우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서찬석, <contemporary BABEL>, <fake table>


작가들과 함께하며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리고 실제로 회의에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가 작품이 되었다.


서찬석, <인간 존에 관하여>, 2020, full HD single channel video, 5min 34sec


서찬석 작가는 인간의 심리와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통찰하며 회화, 설치, 영상을 넘나드는 개성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럭키 영등포>에서 두 가지 영상 작업을 보여준 그는 2020년 2월 보안여관에서 열렸던 개인전에서도 <인간 존에 관하여>라는 영상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식인 악어를 죽이고 영웅이 된 주인공 존(John)이 피폐해지다, 결국 자신을 이용했던 마을 사람들의 방관 속에서 죽어가는 이야기는 모호한 선과 악의 경계를 드러낸다.

 

(좌) 서찬석, <contemporary BABEL>, 2020, 캔버스 프레임, 2400x1350mm, single channel video, 11min 32sec

(우) 서찬석, <fake table>, 2020, 캔버스 프레임, 2400x1350mm, single channel video, 15min 32sec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문제의식을 흥미롭게 드러낸다. <contemporary BABEL>은 종말 이후 세계에서 황폐한 구조물을 쌓아 정원을 만드는 클라우드 가든(Cloud Garden)이라는 게임 플레이 영상이다. 위태롭게 쌓이는 구조물은 예술과 생존을 오가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의 삶과 같다. 하늘 높이 솟는 탑은 예산지원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만들어지고 아카이빙되는 무의미한 프로젝트의 바벨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이로 뻗어 나가는 뿌리와 줄기는 위태롭게 쌓여가는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고, 바벨탑에도 꽃과 열매는 피어난다. 그 모습은 청년예술인의 삶과 닮았다.


<fake table>은 프로젝트 동안 작가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직접 녹음해 만든 작품이다. 자동 자막 생성 프로그램에 무작위로 겹친 녹음 파일을 돌려 얻은 자막을 새롭게 찍은 영상 위에 덧입혔다. 뒤섞인 대화는 말이 안 되는 문장으로 남고, 자막으로 처리된 탄성과 웃음만이 분명하게 남는다. 협업 프로젝트의 대화는 그렇게 뒤섞여 흩어지는 것 같지만, 예술가의 시선이 더해지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되어 관객을 만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

유장우, <기합가>


원하지 않아도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했어야만 했던 게 뭘까.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강요하는 것, 그 강제성을 함축한 것이 바로 억지로 내질렀던 기합이라고 생각했다.


유장우, <기합가>, 2020, 3 channel video, sound, 각각 FHD Video, 5min


유장우 작가는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을 만든다. 2019년 개인전 <소진되는 몸짓>에서는 개인의 움직임이 사회적 맥락과 경제적 목적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2020년 개인전 <구분할 수 있는, 분간할 수 없는>에서는 끝없는 경쟁과 목표를 향한 규범화된 집중을 강요당하는 구조를 비판했다.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고> (2020)는 군대 사격 예비 훈련에서 사격의 정확도가 아닌 오직 가혹행위를 피하고자 총구 위의 바둑돌에 집중해야 했던 작가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개인에게 가해진 군대라는 구조의 폭력은 바둑돌의 불안정한 흔들림에 그대로 투영된다. 


(좌) 유장우, <집중의 프로토콜>, 2020, 캔버스, 스크린천, 스피커, 진동스피커, 앰프, 빔프로젝션, 4개채널 각각 FHD video 05:00, 1개 채널 FHD video, 8min

(우) 유장우,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고>, 2020, 각각 FHD video, 2min 30sec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이어진다. <기합가>는 한국 사회에서 작가이자 남성으로 살며 강요당했던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몸짓과 기합 소리에 담은 작품이다. 퍼포머는 영등포 지역의 공장 지대와 쇼핑센터 등을 배회하며 살풀이를 하듯 기합을 내지른다. 나이트비전 모드로 촬영한 관찰자 시점의 영상은 생존을 위한 분투와 그들을 향한 사회적 제약을 가시화한다. 


작가는 <기합가>를 만들기 전 <애교(愛校)가>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회적 규범을 주입하는 학교를 향한 사랑을 담아 큰소리로 노래했던 기억 역시 그에게는 어쩔 수 없었던, 사회의 틀에 맞춰 생존하려는 사투였다. 최종적으로는 기합이 소재로 선택되었지만, 그 과정을 함께 나눴던 다른 참여 작가들은 만들어지지 않은 <애교가> 역시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깊은 무의식 속 나라는 존재

한승훈, <나를 불안한 사랑하는>


불안한 이유는 나의 무의식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체험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 잊을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한승훈, <나를 불안한 사랑하는>, 2020, 수조, 받침대, 단채널 영상, 90x45x45(cm), 4min


한승훈 작가는 글을 써왔지만, 회화나 설치 등을 작업한 적은 전무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첫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예술가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경험이 없으니 처음에는 협업을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함께 작업을 완성했고, 다른 에술인의 섬세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 작가는 청년예술인들과 대화하며 작품이란 뭘까?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끝없이 던졌다. 그렇게 찾은 답이 <나를 불안한 사랑하는>이라는 첫 작품의 탄생이다. 


그 역시 청년예술인들의 불안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명확하지 않은 삶과 목적 없는 행위는 불안을 야기한다. <나를 불안한 사랑하는>은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통해 그 불안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다. 무대 중앙에 놓인 통로를 따라 점점 더 어두운 뒤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도록 전시를 설계하여, 그러한 경험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길이 꺾인 곳마다 설치된 영상은 각각 나의 외면, 다른 사람이 바라본 나의 내면, 내가 바라본 나의 내면을 의미한다. 한 겹씩 벗겨 나가며 무의식 속 자신을 만나는 과정은 관객에게 여러 생각거리, 그리고 여운을 던진다.






<럭키 영등포>는 청년예술인의 고민과 삶, 예술을 가감 없이 가득 채운 무대를 선보인다. 개인의 고민은 모두의 질문이 되고, 우리는 행운아인가? 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진지한 물음은 여러 층위에서 우리의 삶에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하나의 근사한 목표나 결과물의 형태를 정해놓고 시작하기보다는, 협업의 어려움과 작업 과정의 고민을 오히려 작품에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방법으로 훨씬 더 큰 공감을 끌어낸다. 개인의 개성과 장점을 살린 작품은 무대 위에 선 관객에게 상상력으로 채워진 꿈을 꾸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관객과 만나지는 못했지만, <럭키 영등포>는 삶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조금 더 높여준 행운 같은 전시다.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생존하고 있는 당신은 과연 Lucky한가?





<럭키 영등포>는 서울문화재단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 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 일환으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 은 청년예술인들이 자신의 예술활동을 지속할 뿐만 아니라, 

서울 내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지역 문화기관의 협력 과정을 지원합니다. 



Local to Seoul 

서울문화재단의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서울 각각의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정체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발견한 '로컬'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서울 X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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